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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품들의 사계

얼음새꽃 178

by 불량품들의 사계

얼음새꽃



계절 정서 장애 같다. 어제 강일동 사는 이모한테 갔다 왔다. 이모는 나보고 갈수록 엄마랑 똑 닮아간다고 했다. 이모를 보고 와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을 먹고 산에 오르는데 사람 꼴을 볼 수 없다. ‘어떻게 새도 안 우냐’ 수십 된 소나무만 곳곳에 부러져있다. 안타깝다. 소나무를 끌고 내려가 마당에서 모닥불이라도 필까. 역도 선수 팔뚝만 한 것, 한 토막만 있어도 몇 시간 불 가에 앉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저걸 언제 들고 내려가냐. 아깝지만 참자. 올라올수록 낙엽 아래 흙이 얼어 길이 미끄러웠다.

나는 걷다가 앉다가 휴대폰으로 노래를 듣다가 천천히 걸었다.

북문 근처 도착해 낙엽 위에 누웠다. 써늘했다. 사람 소리가 났다. 이 길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길이다. 일어나서 앉았다. 머리카락은 새집이요, 얼룩덜룩 페인트 묻은 옷이 꼭 노숙자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먹을 것을 던져줄 거 같았다. 강아지 산 이가 있었으면 일어나지 않았다. 누워있던 뒤집어있던 산이랑 있을 때는 부끄럽고 창피한 것도 없었다. 겁날 것도 없었다.

바지를 툴툴 털고 일어났다.


20m쯤 걸어 산이랑 쉬던 벤치에 앉았다. 평소에는 앉아서 노래도 듣고 시간을 보내고 내려갔다. 오늘은 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갈팡질팡했다. 집으로 내려가는 길이 두 갈래다. 상당히 돌아가는 길, 나와 산이가 좋아하는 왼쪽 길로 발을 뗐다. 방이동에서 살 때 산이와 자주 이 길을 왔었다.

이 길은 백 미터가량 오르막 내리막이 없다.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길 밖으로 몸을 비켜서야 한다. 그야말로 ‘오솔길’이다. 아늑함을 맛보려고 셀 수 없이 이 길을 걸었다. 다리 짧은 산이는 이 길을 걸을 때면 꼬리를 살랑살랑 치면 정말 좋아했다. 하얀 솜뭉치가 엉덩이를 뒤뚱뒤뚱 흔들면 걸었다. 산이가 저쪽 세상으로 가고 난 이후, 한 번도 이 길을 걷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는가 보다. 이제는 왼쪽 길로 발을 떼려고 하다니.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잔설 속에 노란 꽃이 피었다. 가슴이 툭 내려앉았다. 콧속이 시큰거렸다. 눈이 아팠다.


몇 년 전 산이랑 이 길을 걸을 때 노란 꽃을 보았다. 그때가 생각났다. ‘이 눈 속에 꽃이라니’ 나는 가만히 꽃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산이는 내 옆에서 꼬리를 흔들었다. 산이를 안아 가까이 보여주었다. 우리는 추운 줄도 모르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사진을 찍었다. 혹시 복수초 아닐까. 오래전 신문에서 얼음 속에 핀 복수초를 본 적 있었다. 집에 와서 핸드폰을 뒤졌다. ‘산아, 대박’ 복수초였다. 복수초가 틀림없었다. 산이는 말똥말똥 눈알을 굴렸다.


나는 그날이 떠올라 올라오던 길로 몸을 틀었다. 아직도 그 길을 갈 수가 없었다.


복수초 꽃말이 동양에서는 ‘영원한 행복, 서양에서는 슬픈 추억’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리 딱 맞는지 산이를 생각하면 즐거우면서 슬프다. 복수초는 다른 말로 얼음새꽃이다.

내가 그날 산에서 내려와 산이랑 머리 맞대고 쓴 시다.

눈발을 걸어왔을까

일찍 온 얼음새꽃 투명하다

사라진 옷핀 하나

얼음 속에서 녹이 슨다

거들떠보지 않는데도

어느새 하찮은 것들이 소리 없이 돌아와

내 곁을 메꾸고 있다

......

일찍 온 얼음새꽃 날카로운 옷핀을 삼키고도

봄이면 뒤끝 없이 노랗다 <얼음새꽃 중 일부분>

갈 곳이 없는 것도 아니고 고아도 아닌데 왜 이리 쓸쓸할까. 산이가 있었으면 아무 생각이 없이 겨울을 보냈을 것이다. 엄마 생각도 덜 났을 것이다. 앞으로 혼자 있을 날이 국수발 같은데. 부러진 소나무 끌고 와 모닥불을 피울까. 삽으로 밭이라도 뒤집을까.

(네이버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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