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 똥 됐다 179
초밥 똥 됐다
외벽을 타고 들어온 수도관이 얼었다. 물을 끓여 수도관을 녹이고 있었다. 집주인 성길씨가 아침부터 마당에서 입김을 뿜으며 말했다.
“집이 수용되었어요.”
“집값이 저렇게 올랐는디, 어디로 갈 디 있다고.”
그는 일 차에는 빠졌는데 이 차에 수용 확정됐다고 설명했다.
성길씨는 집이 수용되면 돈을 많이 받아 좋은가 보다. 그동안 그렇게 여기서 살고 싶다고 했는데. 함박웃음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버텨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산밑이라 우리 동네는 빠졌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매일 나를 다독거려서 그런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성길씨는 그동안 나에게 집이 수용됐다고 정확하게 말을 안 하게 걸렸는지, 장황하게 말했다.
그는 수용된 것을 이제 알았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나를 속인 거처럼 돼 마음에 걸렸는지 손짓 발짓을 하며 애를 썼다.
그의 몸짓에는 LH가 성길씨를 속였고 더 나아가서는 자기가 나를 속인 거처럼 돼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홈플러스 가서 맛있는 거 사다 먹어요”
방에 들어가면 한 시간은 성길씨 말을 들어줘야 한다. 5초 망설였다. 밥 하기 싫었다. 수도에 물을 다 쏟고 양은주전자를 내 던졌다. 혹시 갔다 오는 사이 녹을 줄 몰라 욕실 수돗물을 틀어놓고 출발했다.
성길씨가 차 안에서 온수 들어오는 수도관을 잘라 새로 연결해 주겠다고 했다. 홈플러스 가는 길에 나사랑 파이프 자르는 쇠톱을 샀다.
홈플러스가 보였다. 차에서 내린 성길씨 뒤를 쫓아갔다.
나는 홈플러스 이마트를 거의 가지 않는다. 절차가 복잡해서다. 동네 슈퍼를 좋아한다.
그는 바구니를 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그는 연어 초밥 두 개, 닭튀김을 바구니에 넣었다. 막걸리 두 병, 플라스틱 맥주 한 개를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그는 나에게 필요한 것 고르라고 재촉했다. 생연어를 살까 하다가 남의 돈이라고 덥석 집는 것도 내 성질이랑 안 맞았다. 만만한 숙주나물 천 원짜리 한 개 샀다. 성길 씨 짐이 무거워 보여 봉지 하나를 들어주었다.
계산을 마친 그는 두리번거리다가 밖으로 나갔다.
그는 차를 타지 않고 차가 빠져나올 때까지 뒤를 봐주었다.
“오라이”
“오늘은 친절하셔라!”
집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어린 내가 상다리를 폈다. 성길씨 노모도 상가에 앉았다. 나는 봉지에서 음식을 꺼냈다. 각자 앞에 있는 잔에 성길씨는 막걸리를 따라주었다. 나는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들었다. 잔을 상위에 내려놓고 초밥을 입에 집어넣었다.
“내가 미안해서 밥 먹자 했어요!”
성길씨는 며칠 전 집이 빠졌나 궁금해서 LH를 갔다고 했다. 그곳에서 세 든 사람들하고 말을 하게 됐다고 했다. 집주인들이 명쾌한 답을 안 해줘 보상문제는 어떻게 된 거면, 이사는 언제 가는지, 궁금해서 직접 LH 왔다고 했단다. 그래서 나도 다 알고 있는지 떠보았는데 내가 수용당한 것도 모르고 있더라고.
“떠본 것 미안해서 오늘 맛있는 거 산 거예요.”
성길씨 말을 듣는 동안 닭튀김 두 조각, 연어 초밥 네 개 먹었다.
그는 침을 튀기면서 같은 말을 몇 번이나 재생했다.
“옆집도 보상을 많이 받아야 할 텐데, 나는 평당 칠백 만원으로 결정 났어요!”
“여동생들하고 나눈다고 헌 것은요? 어머니 모시고 살았다고 이웃집에서 도장받아 오라 해서 내가 찍어주기로 헌 거요?”
“아, 그거 변호사 사무실에서 해결했어요.”
“예?”
“양평 돌아다녔더니 땅값이 장난 아니던데. 홍천은 그나마 싼 것 같더라구요.”
‘언제 양평이며 홍천은 갔다 왔을까, 아조 시공을 초월하구만.’
그는 이미 수용당한 거 알고 일을 추진했다. 정확하게 말을 하자면 밥 사기 전부터 변호사 사서 상속세 문제를 추진했다.
“그나마 나는 혼자 몸이지만 엄마랑 이사 갈 아저씨가 걱정이네요.”
그동안 내가 했던 말들이 생각났다.
‘나만 부실이었군.’
거짓말을 왜 했을까. 내가 불안해할까 봐. 그것은 나를 생각해 주는 게 아니고 기만하는 것이다. 혹시 내가 미리 이사 가면 월세를 못 받을까. 별생각이 다 들었다. 매사 남의 말을 너무 잘 믿는 게 내가 문제였다. 상대방을 속이는 것은 그 사람들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니다. 혼자 스스로 위로하면서 초밥을 토해 내 버리고 싶었다. 한번 뱃속에 들어간 것들은 진즉 똥이 돼버렸으니 이것 또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 믿을 놈 없다지만 앞으로 고골 이 집마저 믿을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나는 수도를 틀어놓고 와서 핑계 대고 일어섰다.
“이제 안 올 거죠?”
눈치를 챈 그가 말을 했다.
화장실 수돗물은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내 얼굴이 절로 펴졌다.
얼은 수도관을 녹이기 위해 들인 내 공력을 생각했다. 상대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전달하는 몸짓과 손짓도 생각해 봤다. 성길씨 방에서 슬쩍 나온 게 미안했다. 그의 말솜씨가 부족했을 뿐인데.
한편으로 그동안 외줄을 타는 기분이었는데 홀가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