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은 무한대 180
별은 무한대
한밤중에 별을 보려고 문을 열었다. 깜짝 놀랐다. 새순 돋을 자리에 눈이라니. 눈 내리는 산밑 마당에 서 있는 내가 바닷가에 출렁거리는 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가에서 살던 그 시절 배들은 별을 보며 물길을 찾아갔다. 밤이면 돋아나는 별, 떠돌다 죽은 짐승들이 밤하늘에 찍어 놓은 발자국일까. 나는 그 발자국을 따라 밤길을 걸었다. 강아지 병아리 송아지도 별자리를 보며 자랐다. 별은 바다보다 먼저 눈을 떴다.
도시로 올라와 살면서 나는 언제나 파도 위 배였다. 도심의 물살을 가르던 배는 빌딩에 가려진 별을 볼 수 없었다. 오직 간판만 현란하게 깜박거릴 뿐이다. 나는 길치 중 상 길치다. 그래서 미로 속 같은 길을 더 헤맸다.
어느 해 봄날이었다. 홍제동 시댁에서 사는 동생과 조카를 데리러 가기로 했다. 친구랑 잠실서 차를 마시다 시간 맞춰 4시에 출발했다.
눈을 부릅떴지만, 홍제동 유진상가로 빠지는 길을 놓쳤다. 달리다가 옆으로 빠지는 길이 나오면 머뭇거렸다. 차들은 그 새를 못 참고 뒤에서 빵빵거렸다. 다시 달렸다. 그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날이 점점 어두워졌다. 어느 순간 이정표에 일산이 떴다. 도로 옆에 차를 세웠다. 동생이 난처할 것을 생각하니 머릿속 지도는 꼬이기만 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였다. 홍제동 가는 마을버스가 지나갔다.
‘오, 주님, 저를 버리지 않으셨군요.’
홍제동 마을버스 꽁무니를 따라붙었다. 마을버스는 굽이굽이 온 동네를 돌았다. 구석구석 훑었다. 나는 마을버스가 서면 따라서고 출발하면 따라 발차했다. 파리 한 마리 들어 올 틈 없이 바싹 붙었다. 차가 중간에 끼면 종 친다는 생각에 물 샐 틈 없이 철통 같은 보안태세로 달렸다. ‘달려라 하니’도 아니고 이게 뭔 짓이람. 그날 좀비처럼 따라오는 차를 보고 기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느 순간 익숙한 길들이 보였다. 연신내였다. 사돈집에 도착한 시간이 밤 9시였다. 장장 5시간 걸렸다.
바깥사돈 안사돈 현관에 나와 있었다. 동생은 ‘왜 이리 늦었어?’ 말하려다 내 눈이 쏙 들어간 것을 보고 참는 것 같았다. 그때 내비게이션이 없었다.
나는 전철을 타도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한 적 없다. 지나치든가 다른 데로 가든가 둘 중 하나다. 도보도 마찬가지다. 아이쇼핑 하려고 건물에 들어갔다가 한 바퀴 돌고 나오면 방향을 잃어버린다. 이렇게 수십 년을 살아왔다.
내비게이션을 달아도 마찬가지다. 도착지 근처에서 헤맨다. 내비게이션에게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운전할 때마다 제일 많이 듣는 잔소리다.
나에게 길 찾기란 시 쓰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누가 데려다가 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혼자 찾아가야 하는 길이다. 그래서 내가 닿고자 하는 목적지에 늦어질 수밖에 없다.
언젠가 그곳에 도착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조바심이 난다. 지금도 그렇다. 칠흑 같은 어둠 속 파도를 달래며 가야 한다는 것을, 돌덩이를 짊어지고 가다 부리는 시점도 혼자 결정해야 한다.
칡넝쿨 같은 길에 서서 뒤를 돌아본다. 아이는 초저녁별을 따라갔다. 집으로 돌아가던 둑길은 낮고 높고 평평했다. 아이는 대문 앞 멀구슬나무 가지 끝에 별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섬을 떠난 그 아이는 얼마나 많은 길을 기웃거렸던가.
기웃거리던 발등에는 물새가 있고, 언덕 위 의자가 넘어져 있었다. 골짜기를 지나면 낭떠러지가 있고, 오월이면 산을 덮은 귀룽나무꽃이 있었다. 눈물처럼 주렁주렁 달린 아카시아꽃이 있었다. 새순 같은 2. 3십 대도 있었다. 어느 것 하나 평탄한 길은 없었다. 저 수상쩍은 길을 향해 거침없이 발을 뗐었다. 그 길이 자갈밭이든 진창길이든 두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깨달았다. 나를 안내하던 별이 있는 바닷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것처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도 있다. 하지만 지금 걷고 있는 길이 되돌아가고 싶은 그 길은 아닐까.
봄밤. 나는 눈을 뒤집어쓴 채 서성거렸다. 마당에 눈이 그치면 바닷가 그곳에도 별이 송송 박히겠지. 텃밭 눈 속에 부추 끝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