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 181
공범
아침부터 못 보던 새끼강아지가 성길씨 수돗가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다.
“강아지 어디서 데려왔소? 완전 애기네.”
“술 마시다 가게 주인 아들이 못 키우겠다고 해서요.”
“아따, 동네를 언제 뜰지 모르는 판국에, 사룟값 그렇게 걱정하먼서 대책 없네.”
새끼는 수돗가를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강아지 털 색깔은 회색, 아이보리, 검정이 섞여 있었다. 다리가 휘어졌다. 잡종이다.
성길씨가 목줄과 사료를 사러 가자고 해 신장시장에 갔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성길씨를 따라 애견용품 파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윤정이 아니여?”
“언니, 얼마 만이야?”
“언제부터 여기 있었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어.”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성길씨가 덩달아 좋아하면서도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도대체 이 여자는 가는 곳마다 아는 사람이야’ 하는 눈치였다. 동생은 사료와 간식값을 받지 않았다. 윤정이는 방이동에서 살 때 우리 강아지 산이를 예뻐했던 동생이다.
나는 집에 와서 손가락 하나 반 들어갈 수 있게 강아지 목줄을 헐렁하게 매 줬다. 성길씨가 강아지 이름을 지어보라고 했다. 들은 척도 안 했다. 이름을 지으면 내가 책임져야 하는 예감 때문이었다.
강아지와 하룻밤을 같이 자고 싶어 집으로 데려왔다. 강아지는 잠을 안 자고 계속 낑낑거려 할 수 없이 문을 열어줬다. 어둠 속에서도 잽싸게 성길씨 집으로 쏙 들어갔다.
이른 아침부터 강아지는 내 발꿈치를 따라다녔다. 성길씨는 신문지에 싼 강아지 똥을 풀숲으로 던지면서 말했다.
“강아지 데려다 키우세요.”
“뭔 소리세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대답을 준비해 놓았다.
“신도시 개발 때문에 이 집에서 언제 쫓겨갈 줄 모르고요, 시내는 강아지 있으면 방 안 줘요.”
성길씨는 나한테 잘 키울 수 있다고 큰소리쳤든 게 있어 겸연쩍게 웃었다.
‘아니, 술고래 풀치도 끄덕허면 발바닥이 솥뚜껑만 한 개 끌고 와서 나에게 키우라고 지랄 업어치기 했쌌고, 지 구치소 들어가먼 내가 사료 사다주고, 느그들 뭔 유행이여? 나도 이제 오지랖 손 끊었은께 각자 알아서들 해, 꼭 없는 것들이 정은 많에 갖고.’
이렇게 속 시원히 말을 하고 싶었지만, 속으로 말했다. 집주인에게 대놓고 말할 수 없었다.
“원래 데러 온 곳에 갖다 주쑈.”
나도 이제는 냉정해졌다. 저걸 끌고 바람 따라 물 따라 비탈길을 오르며 다니고 싶지 않다.
수돗가에서 물을 핥고 있는 강아지를 호두나무 밑으로 보듬고 왔다. 강아지 앞발을 잡고 키울 수 없는 설명을 해줬다.
‘어이, 꼬맹이! 나는 주인이 아파 도저히 못 키우게 된 십 년 넘은 강아지를 키울라고 헌다. 너처럼 어린 강아지는 데꼬 갈 주인이 꼭 생길 거야. 글고 말할라먼 복잡헌디 고양이 두 마리나 밥 주고 있단다. 나를 이해해 주라.’
성길씨는 내가 방에 있는 동안 사료 포대를 문 앞에 두고 갔다. 강아지에게 사료를 주다가 퍼뜩 떠올랐다. 나에게 강아지를 맡기려고 하는 속셈 같았다. 재빨리 사료 포대를 그의 집 입구에 갖다 놓았다. ‘아이고 저 잔머리. 넘어갈 뻔했네.’
나는 그날부터 꼬맹이와 정들지 않기 작전에 들어갔다. 일단 자주 안 보고 성길씨가 사료를 주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침부터 사글사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성길씨가 노랑 가방을 들고 나왔다. 가방 속에서 강아지가 킹킹거렸다.
“강아지 데려다 줄라고요?”
처마 밑에서 서 있다가 성길씨에게 물었다.
“네, 갖다 주려고요.”
“아따, 잘했쇼! 근디 하필 비 오는 날......”
그는 내가 키워줄 거라고 기대를 했지만, 사료 포대를 자기 집에 갖다 놓은 거 보고 포기한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을 입구에 생강꽃이 활짝 피었다. 외출하려고 마을 버스정류장에 서 있었다. 식당 앞에 어디서 본듯한 강아지가 놀고 있었다.
“아니, 너는 주인집에 있던 그 꼬맹이?”
나는 폭풍 성장한 강아지 앞에 다가가 앉았다. 마침 고골 카페 여사장님이 내게로 왔다.
“아니, 저 강아지가 왜 여그 있죠? 귀신 곡헐 노릇이네.”
“저 강아지 알아? 얼마 전, 비 온 날 식당 문 앞에 강아지가 가방 안에 있었대. 그래서 이 집에서 키우게 됐어. 이름은 업둥이라고 지었어.”
“아, 환장 허겄네.”
나는 성길씨 집에서 봤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날 가방에서 꺼내어 어디로 가나 봤대. 위로 올라가다 내려왔다고 하더라고.”
강아지는 빗속에 언덕을 올라가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차, 이제는 내가 살집이 아니지’ 하면서 내려갔을까.
외출하고 돌아와 성길씨한테 강아지를 식당에서 봤다고 하였다.
“그게 아아니라 사아 사실은.”
그는 말을 더듬다가 얼버무리면서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업둥이는 수시로 집 앞에 나타났다. 업둥이는 내가 준 간식을 먹고 내려갔다. '업둥이 내일도 와.' 업둥이 뒤에서 손을 흔들어줬다.
업둥이가 집을 찾아온 게 신기했다. 성길씨가 집에 데리고 올 때도 가방 속에 있었고 식당 앞에 내려놓을 때도 가방 속에서 있었는데, 아무리 개 코라지만 말이다. 하기야 트럭에 팔려간 개들이 몇백 km를 찾아 나타난 일도 있는데 이 길은 300미터쯤 되나? 이 정도면 껌이지 뭐. 업둥아, 이 집은 눈 딱 감고 잊어라.
업둥이는 예쁜 빨강 목줄을 하고 버스종점을 주름잡고 있다. 다행히 식당 주인은 업둥이를 엄청 예뻐했다. '나 이렇게 잘살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루는 시내에서 동생들이 마을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언니,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를 앞장서서 집 앞까지 왔다 갔어, 꼭 우리를 안내한 것 같았어.” 나는 업둥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성길씨가 호두나무 아래 철제의자에 앉아 동생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날 하필 가방 쟈크가 고장 나 가방이 열려버리는 통에 그 집 앞에 두고 왔어요.”
다른 집 다 두고 하필 보신탕집 앞에 두고 오다니. 그 말이 된장이여 똥이여!
성길씨와 둘이 마트에 물 사러 가다 업둥이를 보았다. 업둥이는 상큼하게 이발을 하고 있었다.
“내가 강아지 갖다 놨다는 말 안 했죠?”
성길씨가 말했다.
“당연허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그와 공범이 되어 있었다
“ 업둥아, 너도 말 안 했지?”
업둥이를 볼 때마다 간식을 주었다. 업둥이는 언제부턴가 나에게 거리를 두었다. 어느날 식당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