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 속을 지나면 182
돌풍 속을 지나면
눈발이 날렸다. 봄에 난로라니. 꽃님이와 순둥이는 난로 앞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생각하다 이 얼마나 가난한 방인가. 난로를 껐다.
눈발이 그치자 해가 쨍쨍 떴다. 인천에 사는 혜원 동생이 부모님과 강아지를 데리고 밭일을 하러 왔다. 고양이들은 꼬미를 보고 3십6계 줄행랑을 쳤다.
혜원이와 나는 시내에 나가 상추 모종을 사 왔다. 밭에 모종을 마치고 삼겹살을 평상에서 구워 먹고 있었다. 돌풍이 불었다. 2 리터 페트병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다 밭으로 곤두박질쳤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던 까마귀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당 입구에 쓰레기봉투가 굴러다녔다. 흙으로 눌러 텃밭을 덮어놓은 검정비닐이 날아갔다. 막사 지붕이 뜯어져 날아갔다. 그늘막이 젖혀지고 지지대가 넘어졌다. 우리는 대충 먹고 상을 접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바람 속도가 약해졌다. 날아간 비닐을 잡아다 흙을 퍼 눌렀다. 앞집 아줌마 방한화가 큰길 한복판에 누워있다. 아줌마 눈에 띄게 집 입구에 두고 왔다. 바람 속을 지나다니다가 하루를 다 보냈다. 앞산 뒤로 해가 천천히 빠졌다. 혜원이 가족을 배웅하고 돌아섰다.
고양이들이 평상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들어가고 싶어?”
문을 열자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게 날아들어갔다. 고구마에 붙은 오리고기를 나비들에게 던져주었다. 감태와 빵으로 이른 저녁을 먹고 있었다.
바람은 있는 힘을 다해 울기 시작했다. 나뭇가지도 지붕도 마른 풀잎도 개도 돌도 울었다. 막사 안에 말아놓은 비닐이 미친년 치맛자락처럼 춤을 췄다.
박자 스텝 무시했다.
모자를 뒤집어쓰고 밖으로 나갔다. 비닐 위에 판자를 올려놓고 돌로 눌러 놓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플라스틱 조각이 지붕에서 날아와 마당에 떨어졌다. 스티로폼이 호두나무에 걸렸다가 떨어져 저공으로 날아다녔다. 이 와중에 길 건너 술고래 풀치 개들이 쓰레기봉지를 찢어 벌려 놓았다. 쓰레기가 앞차기 옆차기하며 날아다녔다.
‘잡어야 하는디, 잡혀야 하는디’ 나는 텃밭과 마당으로 깡통과 휴지를 잡으러 다녔다. 날아다니는 쓰레기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휴지는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남의 속도 모르고 개들은 휴지를 따라다니며 장난을 쳤다. 개들을 쫓아 버릴라, 쓰레기 잡으러 다닐라. 밤중에 이게 뭔 짓이냐, 열이 머리끝까지 오르는 동안 쓰레기들은 봉지에 채워졌다.
방으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티브이를 켰다. 오늘 밤이 고비란다. ‘제발 산불이 잡히기를.’ 간절히 빌면서 순둥이 발바닥을 손가락으로 살살 건드렸다. 순둥이는 눈을 반쯤 떴다. 내 손가락에 발을 갖다 댔다. 갑자기 이티 영화가 생각났다. 자전거를 창고에서 끌고 나와야 하나.
바람은 어둠 속에서 서서히 잦아들었다. 고양이들과 방바닥을 누른 엉덩이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