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들이면 지옥일까 188
사람을 들이면 지옥일까
고등도 게도 집 밖으로 나가는 계절이다. 그래서일까. 풀치(갈치새끼)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이었다. 풀치는 중고 전동오토바이를 샀다. 오토바이를 마당으로 끌고 내려와 나에게 자랑했다. 그때 집주인 성길씨가 문을 열고 나왔다.
“어, 좋은데 얼마 줬어? ”
성길씨가 질투 섞인 말을 던졌다.
“백만 원이요.”
“얼마 안 하네. 내 자전거는 사백만 원짜리야, 알지?”
풀치는 앉은 채로 성길씨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형님, 모르는 소리 마. 새것은 이백만 원도 더한대.”
성길씨는 풀치의 오토바이를 이리저리 들여다보았다. 나는 평상에 앉아 있다가 한마디 했다.
“ 완전 새삥이네.”
나는 나도 모르게 풀치 편을 들고 있었다. 내 저울 눈금은 어딘가 모자라는 것들에 멈춘다.
성길씨는 나를 힐끔 보다가 어깨를 껴안았다. 갑자기 ‘둘이 잘해봐라’ 하는 듯 쌩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물까치 한 마리 마당에 흘린 사료를 물고 날아갔다. 살구꽃이 마당으로 밭으로 날아들었다. 고양이들은 팔랑거리는 꽃잎을 낚아채려 등을 곧추세웠다. 순둥이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놓쳤다, 중심.
그사이 풀치는 오토바이를 연자방아 옆에 세우고 하얀 천으로 덮었다.
“누님, 오토바이 잘 봐주세요.”
“문화재 옆에 오토바이 세워났다고 시청에 신고헌다.”
아무나 연자방아 문화재 옆에 주차해 놓고 일을 보는 사람들, 빈집이 많아지자 쓰레기들이 사방으로 굴러다닌다. 그 꼴도 보기 싫은데 오토바이까지 두고 간다고 해서 신고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타고 댕길라고 샀으먼 타야 될 거 아니여.”
풀치는 즉시 오토바이를 끌고 나갔다.
얼마 전까지 풀치는 길 건너컨테이너 살았다. 신장동으로 옥탑방으로 이사 갔다. 이글루에 사는 것처럼 살던 풀치는 산밑이 지긋지긋할 텐데 날마다 온다.
풀치는 고골 올 때마다 버스를 타고 왔다. 하기야 날마다 술을 퍼마시니. 오토바이 타다 골로 가는 줄 저도 알고 있다.
“오토바이는?”
“고장 나서 맡겼어요.”
“타도 안 했는디 벌써 고장 났다고. 그래서 중고여.”
산 아래 문턱이 닳아질 정도로 오던 풀치가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 술 퍼마시고 오토바이 타고 가다 사고 났을까. 병원에 입원이라도 했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전화해 볼까, 버스 타고 왔다 갔다 하는 꼴 보기 싫어 참았다. 통화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샘재 사거리 ‘빤스 싸게 팝니다’ 만물상 사장님에게서 츄리닝 한 벌을 얻어왔다. 집에 와서 입고 전신거울을 보았다. 헐! 부대 자루가 걸어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남자 츄리닝이라 아주 가관이었다.
나는 이럴 줄 알고 안 가져가겠다고 했었다. 사장님은 하남교산 3기 신도시 개발로 곧 문 닫는다고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굳이 손에 들려주었다.
‘어쩌겄냐, 힙합바지처럼 입지 뭐’ 바지는 내가 입기로 하고 윗도리를 풀치에게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여름 풀치는 동묘 가서 내 샌들을 사 가지고 왔었다. 나는 한 번도 신은 적 없다. 신고 다니는 모습을 풀치에게 보여주기 싫어서였다. ‘둘이 난리 났다네’ 소문도 무서웠다. 어쨌든 샌들하고 츄리닝으로 퉁 치려고 했다.
아침 일찍 치커리에 물 조리개로 물을 주고 있었다.
“풀치는 연락이 안 된다네요.”
집주인 성길씨가 마당 가 호두나무 아래 서서 말했다.
“그러니까요. 날짜가 겁나게 지난 것 같은디.”
나는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어디서 들었소?”
“일 시키는 사람이 술고래한테 전화했는데 전화기가 꺼졌대요. 방금 통화했어요.”
“맞다, 푸울치 아아니, 술고래 구치소 간 것 같어요. 저번에 구치소에서 나왔을 때 남은 벌금 까러 또 들어간다고 말 한 적 있어라이.”
성길씨는 내가 술고래를 ‘풀치’라고 부른지 모르고 있다.
성길씨가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술고래 풀치 소재 파악이 돼 웃음이 났다. 그나 나나 풀치 걱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긍휼함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왔다. 장롱 속에 넣어 두었던 츄리닝 윗도리를 꺼내보았다.
츄리닝을 풀치에게 줬다가 입고 다니면 커플처럼 보일까 봐 망설이는 것도 있었다. 잘됐다 싶었다. 무전취식으로 벌금이 쌓여 구치소를 밥 먹듯 들랑거리는 풀치. 그에게 구치소는 병원이다. 무덤에서 걸어 나온 송장 같다가도 구치소에서 살이 쪄 돌아온다. 뭔 요지경인지 모르겠다.
그래, 그것도 너와의 지난 한 싸움이라면 어쩌겠냐,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고 있어라. 너나 나 나 남은 거라고는 몸 하나뿐인데.
사람 하나를 마음에 들이면 그날부터 지옥이라는데. 이사 가면 다시는 안 볼 줄 알았는데. 안 보이면 걱정이고, 참말로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절대로 지옥문을 열기 싫다.
'누나 사랑해요' 술에 취한 풀치 목소리가 귓가를 뱅뱅 돌아다닌다. 이건 또 뭔 조화인지.
신발장 맨 아래 칸에서 샌들을 꺼내었다. 마당에 햇빛을 쐬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