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려서 무거운 우리187
흐려서 무거운 우리
문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신문을 놓고 가는 소리인가. 발소리가 멀어지자 밖으로 나갔다. 문손잡이에 검정 비닐봉지가 걸려 있다. 케일, 금이 간 감자 두 개, 옆이 파인 당근. 길 건너 술고래 풀치다. 그가 이사 가면 이 짓도 볼 수 없겠구나.
오래전 풀치가 줄 넘기를 나에게 갖다 주었다. 술 취해 날마다 개진상을 부려 출입구 칸막이에 걸어두고 잊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새싹 돋은 호두나무 아래서 ‘달밤에 줄넘기’를 했다. 모래밭에서 팔딱거리는 숭어같이 숨을 쉬고 있었다. 풀치가 먼발치에서 나를 보고 웃으며 걸어왔다. 줄넘기를 멈추었다.
그는 선 채로 손에 들고 있던 만두를 펼쳐 놓았다
“성길씨 한 팩 갖다 줄란다.”
“됐어요. 누님 먹어요.”
“성길씨가 니편을 얼마나 들어 줬는디.”
집주인 성길씨에게 만두를 갖다 줬다.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우리는 평상 끝에 앉았다.
“이삿짐 많어?”
“짐이라고 해봐야 내 몸 하나지 뭐.”
“그 짐 덩어리 내가 실어다 주께.”
풀치 눈이 똥그래졌다.
“술 퍼마시먼 짐이고 뭐고 땡이여.”
“밥솥 사야 해요”
“내께 새것 있은께 줄게.”
집에 밥솥이 세 개나 있다. 사 준 사람들 생각하면 미안하고 아깝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밥솥 준다는 말에 풀치는 빙그레 웃었다.
“도시가스여?”
“응, 옥탑방인데, 3백에 2십만 원 형수가 보증금 빌려줬어요.”
“컨테이너 청산하고, 돈 모아 꼭 형수 돈 갚어라. 그래야 인간이다.”
“당연하지.”
“여기서처럼 술 취해 밤낮없이 돌아댕기면 필시 쫓겨난다.”
“나도 새 맘먹어야지.”
술 끊겠다는 말을 수천 번 들었다. 이사 가려고 맘까지 먹었는데 믿어 보기로 했다. 홀가분했다.
지금껏 술 마시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문 앞에서 뒹굴면 미치고 환장했었다. 몇 년 동안 참고 참았다. 단지 나를 좋아해서라는 이유로 이해했다. 날이 갈수록 주사는 더 고약해졌다. 동네 창피해 진짜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나는 전화기를 손에 들고 112를 부를까 말까, 수십 번 머뭇거렸었다.
지난 여름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다. 풀치는 마당 가에 앉아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취했다. 풀치는 그것을 밭에 겨누었다. 친구들에게 더 창피한 것은 옷차림이었다. 몇 겹을 걸쳐 입은 조끼에 달라붙은 바지에 정말 패고 싶었다. 팼다. 눈 질끈 감고 112를 눌렀다.
“니가 뭔 짓을 했든지, 틈을 줬으니 저러겠지.”
“먼 소리여. 지 혼자 지랄 옆차기 하는 것을.”
“야, 냅둬라 형부든 제부든 혼자 사는 것보다 낫다.”
친구들은 웃다가 화를 내다가 나를 한심하듯 보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풀치가 동네에서 아니 내 옆에서 사라져 주길 간절히 원했다.
풀치는 내가 경찰 부른 날 충격이 엄청 컸는가보다. 이사 간다고 계약했단다. 그동안 어떤 짓을 해도 참았던 내가 경찰을 부를 거라는 상상도 안 했던 거 같다. 놀부도 아니고, 술 취하면 트로트 따라 소리 지르고, 마당에서 뒹굴고, 하트 날리고, 밭에 오줌싸고, 텃밭 뭉개고, 밤새 악쓰고, 집 앞 가로등 아래 불 지르고, 평상에서 팔딱 뛰며 옆차기를 할 때도 제발 사라져 달라고 했을 뿐. 다음 날 “누님 미안해요” 하면 웃었던 나였다.
그를 처음에 봤을 때 송장이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는 줄 알았다. 미운 짓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박이 내리면 비닐로 텃밭을 덮어주었다. 벚꽃을 요구르트 병에 꽃아 집안에 발을 들여놓고 주고 갔다.
그 뒤로 열어진 출입문 안까지 두 발을 들여놨다. 늘 밖에서 만 본 집안이 궁금했는지. 집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내가 풀치에게 허락할 수 있는 거리는 딱 거기까지였다.
요즈음 풀치는 노크도 없이 성큼성큼 발을 들여놓았다. 누가 저렇게 발을 걸칠 수 있을까.
다음 날 아침 풀치가 밥솥을 가지러 왔다. 나는 막사 옆 다래 새순을 따다 돌아보았다.
“누님, 이사 가면 집에 와서 밥 좀 해주세요.”
“꿈 깨라. 먹을 것은 각자 알아서 해 먹어야지. 글고 나 반찬 맨들 줄 모른다.”
“나는 음식 잘하는 여자가 좋더라.”
“잘됐네. 멀리 가서 찾아라.”
“누님이 해준 밥 먹고 싶다.”
“이 나이에 니밥 차려줄 일 있냐.”
풀치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평상 끝에 앉아 뻐꾸기를 날리고 있다.
“성길씨는 나 부를 때 헛기침을 헌다든지. 아니면 전화를 허지, 너처럼 불쑥 안 들어 온단께.”
풀치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했다.
“오이소박이 담아줘 봐요.”
“나는 담을 줄 모른다고, 글고 사람 맘도 다 못 담아 요 모양으로 사는디.”
나는 강력하게 거절 표시를 했다.
“요새 여자들 생활비가 얼마인 줄은 알어? 글고 그냥 스미는 거여.”
“생활비가 얼마 필요한데요?”
“너는 컨테이너에서 살아 생활비가 얼마 드는 줄도 모르지. 전기세를 내, 수도세를 내, 맨날 술만 걸치고 살아 멀 알아야지, 의식주가 술이라.”
나는 현실이 이렇다는 것을 속물처럼 말했다. 나도 생활비를 많이 주면 풀치랑 살 수 있다는 뜻으로 풀치에 들릴 수 있겠다 싶었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여.”
나는 내 안을 직구로 들이닥친 사람 좋아하지 않는다. 물에 잉크를 떨어뜨렸을 때처럼 서서히 풀어져 물들인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너나 나 나 혼자 산 지가 수십 년인데 먼 꼴을 보겠다고. 가지고 있는 거라고는 네 말대로 짐 덩어리 몸뿐인데. 그동안 너에 대한 감정은 오직 그놈의 오지랖과 연민이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말든 평상 끝에 앉은 뻐꾸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염없이 울었다. 그는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내 하루 일당이 얼만 줄 알아요.”
그는 평상에 오만 원짜리 세 장을 펼쳤다. 풀치는 보통 남자로 전락했다. 내가 싫어하는 짓을 하고 있다. 나는 지갑을 확 열어 돈을 보여주는 사람은 멀리했다. 얼마나 내 세울 게 없으면 돈으로 환심을 사려고 하기 때문이다.
풀치가 저럴 줄 몰랐다.
“너는 술 마시고 고래고래 소리 지를 때가 수수해 보였어.”
뻐꾸기는 우는 것을 멈추고 시내로 술 마시러 갔다.
이삿짐을 실어다 줘야 하나 고민이다. 그렇지만 이사한다니 섭섭하고 허전하다. 이것도 병일까. 어쩌면 내가 저 마음을 일렁이게 했을까. 코끝을 건드리는 꽃들에게 물어봐야겠다.
그는 눈보라 치며 세상이 얼 때 비척거리며 컨테이너로 들어갔다. 그것도 거처라고. 그는 눈보라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음날 눈 위에 발자국을 내며 걸어 나오는 것을 보며 반갑고 기가 막혔다. ‘저런 인생을 왜 살지’ 하면서 나는 우유를 데워줬다. 무엇을 향해 저토록 흐려졌다가 무거워지는 것일까. 산다는 것은 안갯속으로 걸어 들어가 선명해지는 것. 그래 증발하지 말고 끝까지 세상에 발자국을 찍어라. 목숨 놓지 말고 다정히 걸어가라. 살아있다는 것은 옆 사람들 슬픔을 지우는 것이다.
그리고 시내로 이사 가게 되면 컨테이너로 제발 돌아오지 마라, 당부한다.
풀치가 유령 취급 받으며 돌아다닐 때 ‘작은 새도 나뭇가지에서 얼어 죽어 떨어질 때 자기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시 구절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