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품들의 사계

죽은 자 와 발맞추며 비가 와요 189

by 불량품들의 사계

죽은 자 와 발맞추며 비가 와요



비가 온다. 진창이다. 신발장을 열었다. 만만한 신발을 찾았다. 밖을 향한 뒤축들. 맨 아래 칸 구석에 뒤축이 닳아진 이 보였다. 꺼냈다. 구석에 있는 줄도 몰랐다. 구겨지고 실금이 그어져 있었다. 흙이 묻어도 물에 젖어도 되는 스니커즈였다.


신은 나를 안고 더러운 곳이나 돌멩이를 피해 갔다. 웅덩이도 뛰어 건넜다.


생각해 보면 나는 길이 질척거리거나 지하철을 탈 때 벗어던졌던 익숙한 신을 찾았다.

거리마다 편안하고 멋스러운 신발이 즐비하다. 나는 신발이 싫증 나면 벗어던지고 새것으로 갈아탔다.

문득 걷다가 저 너머로 가신 그들이 떠올랐다. 가장 밑바닥에서 나를 받쳐준 엄마 아버지였다.


비바람에 작한 무덤 속

물 찬 복숭아뼈를 달고

산속에 누워있던

아비 돌아오면 보리 싹이 필까요

퀭한 눈, 에미 돌아오면 망초꽃이 필까요

산 자와 죽은 자가 같이 걸으면 비가 와요.

배가 고프면 꽃이 피어요


무덤가 제비꽃 피고

강아지 입안에 싹이 돋는다고

다 돌아오는 것은 아니더라고


다음날, 온갖 잡생각을 하며 방바닥에서 이리저리 궁글고 있었다. 송파에 사는 동생들이 밥 먹으러 가자고 전화가 왔다.


두 노인이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있다.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았다. 반가웠다. 요즈음 카네이션을 달고 다니는 부모들 보기가 드물다.

자식들 통장에 돈을 보내기 때문이다.

나는 수저를 들다가 없는 부모와 없는 자식을 생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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