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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품들의 사계

새싹, 똥 볼 190

by 불량품들의 사계

새싹, 똥 볼



상추 싹을 들여다봤다. 혀를 내민 지가 엊그제 같은 게 제법 올라왔다. 발을 떼고 돌아섰다. ‘이건 뭐여’ 텃밭 가 돌틈에 새끼손톱만 싹이 보였다. 다닥다닥 붙어있다. 모스부호 같다. 돌을 치우고 눈을 갖다 댔다. 붉은빛 싹이었다. 고랑에도 띄엄띄엄 똑같은 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무슨 싹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맞다, 맞어.’

세상에나, 겨울 벽을 뚫고 싹을 내밀다니. 이월 말 빛바랜 맨드라미가 고개 꺾인 채 돌 틈에서 있었다. 밭 정리를 하다 뽑아버렸었다. 그것들이 씨앗을 떨어뜨렸다고 추리했다. 기척이 없어 잊고 있었다.

그 옆에 상추 비슷한 싹이 있었다. 봉선화였다. 대단들 하다.

겨울에 집 보일러가 얼어 녹이느라 생고생을 했었다. 너희들 끈질긴 생명력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낸다.

아 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버려진 잔가지를 주워 싹 위에 얼기설기 올려놨다. 고양이가 오줌똥을 누고 땅을 파버릴까 걱정됐고, 나도 모르고 밟을까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살아가면서 세상에 감탄할 일이 한두 개일까 만은 경이롭다는 생각에 잠긴다. 흥분을 거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맨드라미를 호미로 팠다. 마당 빈 곳을 찾아 옮겨 심고 있었다.

“거기다 심지 마세요. 정신없어서.”

꽃을 징그럽게 싫어하는 성길씨였다.

‘꽃이 밥을 달라고 허던 술을 달라고 허던가요.’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마당 입구 수돗가에서 담배 재를 털며 말하고 있었다. 꽃만 보면 낫으로 꽃대를 댕강 쳐버리는 성길씨.

나는 이곳으로 이사 와서 속으로 말을 잘한다. 부부가 싸우지 않으려 속으로 말하거나 회피한다는 말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내가 누구? 눈보라에도 자주색을 잃지 않으며, 심으며 심은 대로 살아나는 맨드라미를 닮아가고 있는 세든 여자.

그 여자는 빈 곳을 찾아 꾹꾹 눌러 심었다. 성길씨는 “못 말려” 두 손 들었다는 듯 더는 말하지 않고 집으로 몸을 틀었다. 나는 분연히 일어났다. 성길씨 뒤를 몇 발짝 따라갔다.

‘야! 너를 좋아할 이유가 한 개도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속으로 외치며 호미를 던졌다. 내 발아래로 떨어졌다. 똥 볼. 성길씨가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얼른 호미를 주워 들고 너럭바위 옆으로 갔다. 쪼그리고 앉아 호미로 땅 판 시늉을 했다.


성길씨 집 문 닫는 소리가 났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이 땅이라면 수천만 평 꽃을 심고 나무들이랑 뿌리를 내리며 살고 싶다. 꽃이 만발한 하늘을 상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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