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리고 싶지 않다 191
정신 차리고 싶지 않다
티브이를 켰다. 창고에서 거위를 산채로 손에 쥐고 털을 뽑고 있었다. 거위, 오리, 먼지가 뒤섞여 아수라장이었다. 거위는 홀라당 벗고 돌아다녔다.
오리털 잠바와 거위 털 잠바를 만들려고 털을 뽑고 있었다. 중국의 어느 오지 마을이었다.
유년시절의 어느 때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떻게 내가 그런 짓을 했는지 스스로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은 돈을 준다고 개구리나 닭을 잡아 달라고 해도 당연히 NO를 할 것이다.
나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쫓기는 것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물론 제 욕심을 위해 의도를 갖고 살인을 하거나 지켜줘야 할 법과 규범을 지키지 않은 것들까지 연민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치면 내가 연민을 갖는 폭이 좁아지지만, 나는 상대방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분노가 눈 녹듯 사라져 버린다. 좀 쉬운 성격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란 말을 거의 노랫말처럼 들으며 커왔다. 나는 아직 죄와 죄지은 사람을 명료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본능이 가리키는 대로 불쌍한 것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특히 말 못 하는 짐승들에게 그중에서도 개에게는 무조건 애정을 준다.
어렸을 적 개구리를 잡아 몸뚱이를 강아지풀에 꿰어 놀았다. 개구리를 바닥에 내동이 치면 앞다리와 뒷다리를 쭈욱 뻗는다. 뻗은 개구리 면도칼로 잘라 몸뚱이는 돼지 막에 던져 줬다. 뒷다리는 껍질을 벗겨 장독 위에 말렸다. 햇빛이 강할수록 힘줄이 움찔거리면 다리가 움직였다. 나와 친구들은 손가락으로 뒷다리를 만져 계속 움직이게 했다. 그때는 그 놀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아무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다.
개구리 뒷다리 움직임이 멈추면 즉시 프라이팬에 볶아 먹기도 하고, 부엌에 들어가 아궁이에 불을 지펴 구워 먹기도 하였다. 엄마에게 걸리면 엄마는 등짝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엄마를 피해 부엌에서 마당으로 방방 도망 다니다가 해가 지면 골목에서 기어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가 알까 쉬쉬하면서 엄마가 먼저 선수를 쳐 나를 미리 쫓아낸 것이다.
개구리는 생명이 아니라 놀이였고 간식이었다. 왜? 아무도 우리의 놀이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오히려 어떤 어른은 개구리를 잡아다 팔면 용돈이 생긴다는 것을 알려주었을 뿐이다.
우리가 개구리를 잡으러 다닌다는 것을 아는 아저씨가 있었다. 그는 농협 인근 친척이 하는 대성 여인숙에서 하숙했다. 아저씨가 개구리를 잡아 오면 우리에게 돈을 준다고 했다. 나의 어린 날은 용돈이 없었다.
신이 난 우리는 논두렁을 몇 날 며칠 갈고 다녀 개구리를 잡았다. 꼬들꼬들해질 때까지 말려 아저씨한테 가져갔다. 지금도 생각난다. 백 마리가 넘는 개구리를 잡아다 주었다. 동전 몇 개 받았다.
내가 돈을 받고 개구리를 팔아 친구들이랑 나누었다고 엄마에게 자랑했다. 어린것들에게 그런 걸 시켰다고 엄마는 화를 냈다. 그 아저씨에게 쫓아간다고 했다. 엄마는 어린것들 공역해 비해 돈을 너무 적게 준 것에 화가 난 거 같았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내가 엄마를 가지 못하게 했던 것 같다. 그 아저씨가 개구리를 돌려줄 테니 돈을 돌려 달라 할 것 같아서였다. 엄마는 다시는 개구리 안 잡겠다고 나에게 약속을 받아내고 그 아저씨한테도 가지 못하게 했다.
나는 우리 집 마당에서 돼지 잡는 것도 또래들이랑 빤히 보고 자랐다. 어렸을 땐 죽인다거나 죽는다는 게 무서웠을 법한데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잔인한 장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켜보며 자랐다. 하지만 동네 청년들이 복날 개를 잡을 때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유년시절의 그런 일들을 무슨 말로 설명을 해야 할까?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 첫 제삿날 내가 닭을 산채로 털을 뽑았다. 홀라당 털을 벗은 장 닭이 소리를 지르며 마당을 돌아다녔다. 엄마가 기겁했다. 제사상에 올릴 닭을 장난기가 발동해 털을 뽑아버렸으니. 엄마가 닭을 한 마리 가져와서 다시 잡으라 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옆에서 보았던 대로, 나는 닭 목을 날개에 집어넣고, 날개를 어긋나게 비틀어 목을 조이면, 닭은 다리를 위아래로 발버둥 치다가, 벼슬이 아래로 쳐지면서 눈을 감았다.
물을 끓여 털을 뜯은 후. 배를 가르고 내장을 끄집어내면 몸 안엔 덜 자란 달걀이 몽글몽글 뭉쳐있었다. 그것을 떼어내 모래주머니랑 그릇에 담아두고, 창자는 소금에 뿌득 뿌득 몇 번을 문질러 물에 헹구어 낸다. 창자는 어떻게 요리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한테 물어볼 수가 없다. 하늘에 계시니.
이렇게 무서움도 없이 겁도 없이 죽이는 것을 거리낌 없이 했었다. 그렇다고 불쌍한 것들을 보며 그냥 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며 죽이는 놀이와 연민을 한 몸에 공존하며 살았다.
언제부턴가 TV에서 한우 세트 광고를 보며, 골목에 흑염소 진액 간판을 보며, 마을에 버려진 개들을 보며 훌쩍거린다. 연약해 보이는 것들이 눈에 들어와 안쓰럽다.
어느 날, 말 진액을 선물 받았다. 뜯지 못하고 지인 줬다. 병일까, 나이 들어가는 탓일까.
쥐뿔도 없는 이런 나를 보면 친구들은 ‘네가 제일 불쌍하거든’ 정신 차리라고 한다. 하지만 정신 차리고 싶지 않다. 쫓기는 것들을 가까이 두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