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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품들위 사계

봄날, 짖고 싶다 192

by 불량품들의 사계

봄날, 짖고 싶다



오월인데 혀 내밀 생각을 않는다. 삼월 초 들깨 씨앗을 뿌렸다. 작년 이맘때면 손톱이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는데. 텃밭 가 너럭바위에 앉아 있는 성길씨에게 말했다.

“왜, 들깨 싹이 안 나 깨라이?”

“썩었나 봐요.”

성길씨가 썩었다는 말을 할 때마다 사라진 고양이들이 생각날까.

“순둥이 가족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죽었나 봐요.”

그는 사라진 고양이를 물으면, ‘죽었나 봐요’ 언제나 같을 말을 했다. 죽음처럼 잠들었던 것들이 천지에 돌아오고 떠나고. 언제나 똑같은 봄, 다른 봄이다.

지난가을 깻대를 던져놓았던 막사 뒤에도 싹이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가뭄에도 장마에도 태풍에도 척박한 돌밭에서도 자라는 게 들깨다, 나는 깻잎처럼 살 것이라고 중얼거리고 한다.

“아저씨, 깻잎이 너무 다닥다닥 붙었는디 파다가 다른 곳으로 옮기까요?”

성길씨 텃밭에 자줏빛 깻잎이 바글바글 돋았다.

“그렇게 하세요.”

어느 날 친구들이 놀러 왔다. 친구 한 명이 내 텃밭에 상추를 보고 “따기는 너무 어리네”말했다. 밭에서 일하던 성길씨가 그 말을 들었다. 자기 상추를 따가라고 했다. 평소 텃밭 근처도 못 가게 하는 성길씨. ‘아이고 고맙소’ 나는 총알처럼 밭에 발을 내밀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갑자기 성길씨가 따지 말라고 했다. 그날이 생각났다. 그가 또 맘이 변할까! 말이 떨어지자마자 막사 뒤쪽으로 깻잎을 어르고 달래 옮겨 심었다.

작년에 막사 뒤 깻잎이 무지막지하게 자랐다. 나는 “연두먼 어떳고 보라면 어째야, 깻잎이먼 오케이지”하고 소리 질렀다. 비만 내리면 친구들이 막걸리 안주 삼아 깻잎 전을 푸짐하게 부쳐 먹었다.

전을 부쳐먹을 친구들 생각에 신이 났다. 막사 뒤까지 호스가 가닿지 않아 물을 다섯 바케스나 받아다 줬다.

어깨도 늘어나고 뻗쳤다. 방으로 들어와 라디오를 켰다. 6시 <전기헌 세상의 모든 음악>에서 몰도바가 흘러나왔다. 내 휴대폰 컬러링이다.

어스름한 그림자들이 마당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창문으로 앞산을 바라보았다. 무념무상이라 할까. 그 누구도 다 이해하고 싶고, 네가 내 잘못을 용서해 줄 것 같은 저녁 무렵이다. 눈을 감고 어깨를 껴안았다.

이때다. 유리에 금 가는 소리가 들렸다. 마당이 흔들렸다.

“옆집 나와보세요!”

‘아, 진짜. 도움이 안돼.’

“왜요?”

“나와보라고요.”

나는 쫄았다. 아디다스 짝퉁 슬리퍼를 끌고 밭으로 나갔다. 너무 많이 뽑아다 심었나!

“여긴 하얀 민들레 밭인데.”

그는 이미 심은 깻잎을 거의 뽑았다. 몇 개 남은 거는 한마디 하면서 뽑았다. 나도 생각 있는 사람이라 빈 곳에다만 심었는데.

‘얼마 안 있으면 다 헤어질 것인디. 혹시 조증 있으요?’

나는 목젖을 열고 올라오는 말을 몇 번이나 어금니로 씹어 삼켰다.

“미안허요.”

그래,니가 갑이다.’

집으로 들어왔다. 전화를 잡았다.

“아무리 봐도 집주인 조울증 있는 거 같어!”

“그럴 수 있지. 혼자 그 나이까지 살았으니.”

상계동 사는 친구는 나를 위로했다.

“그래도 그렇지. 끄떡 허면 신경질이랑께. 나도 갈 곳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인디.”

그는 쫓겨 이사 갈 걱정에 매사 신경질이다.


까마귀는 나뭇가지에 앉아 시도 때도 없이 울어 쌌고, 개, 고양이들은 밥그릇 앞에서 울고 있다.

야, 개 고양이들 조용히 해야. 나도 짖어 불고 싶당께, 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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