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초꽃은 멀다 197
망초꽃은 멀다
마당 입구에 풀을 쳐냈다. 망초 목이 싹둑 잘라나갔다. 낫질을 멈추고 꽃을 내려다보았다. 주저앉아 땀을 닦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당이며 뒤뜰이며 창고 귀퉁이며 길 옆이며 천지에 흰빛들이 살랑거리고 있다.
여름이 오면 나는 네발 달린 ‘산’과 망초꽃을 찾아다녔다. 우리는 언덕에 핀 망초 속을 걸었다.
어느 날 망초꽃을 한 아름 꺾어 집으로 돌아왔다. 주전자에 망초꽃을 담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며칠이 지나자 흰빛은 식탁에서 희미해져 갔다. 소파에서 자는 산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유언장을 쓰고 싶어졌다. 책상에 앉았다. 한 줄도 못 쓰고 그만두었다. 내가 산이 먼저 한 방울 물로 돌아가면 누가 산을 데리고 갈 것인가. 매일 짖고 물고 성질 더러운 산, 산 이의 분리불안 때문에 이사를 7번이나 했다. 산밑 이곳에 겨우 정착하는 가 했다.
오래전 코가 뻥 뚫리고 다리가 짧은 흰색 페키니즈 ‘산’과 ‘솔’이랑 살았었다. 솔은 산 밑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훌쩍 저쪽으로 떠났다.
산은 이곳으로 이사 온 지 3개월 만에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산은 슬개골이 약해 산책할 때마다 뼈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 올림픽 공원을 걸었었다. 중고 휠체어를 알아보는 중에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다. 하루 만에 저쪽으로 건너갔다. 산을 보내고 한 달 동안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무서웠다. 낮에 친구를 집에 데리고 가 옷만 갈아입고 일터로 나갔다.
햇빛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곳에 산과 솔의 뼛가루가 단지에 담아져 책상에 올려져 있다. 아직도 나는 단지 앞에서 그들 이름을 부르며 중얼거린다.
얼마 전 조카 동원과 주선에게 말했다. 산, 솔, 나 셋 남한산성 북문 아래 수목장으로 해달라고.
낫을 던져놓고 산이랑 걸었던 언덕길을 찾아갔다. 언덕에는 고철이 쌓여있다. 초록 대 위에 눈이 간간이 내렸다. 바람에 흰빛이 둥둥 떠다녔다. 망초 속으로 꼬리를 흔들며 산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