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불량품들의 사계

망초꽃은 멀다 197

by 불량품들의 사계

망초꽃은 멀다



마당 입구 풀을 쳐냈다. 망초 목이 싹둑 잘라나갔다. 낫질을 멈추고 꽃을 내려다보았다. 주저앉아 땀을 닦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당이며 뒤뜰이며 창고 귀퉁이며 길 옆이며 천지에 흰빛들이 살랑거리고 있다.

여름이 오면 나는 네발 달린 ‘산’과 망초꽃을 찾아다녔다. 우리는 언덕에 핀 망초 속을 걸었다.

어느 날 망초꽃을 한 아름 꺾어 집으로 돌아왔다. 주전자에 망초꽃을 담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며칠이 지나자 흰빛은 식탁에서 희미해져 갔다. 소파에 자는 산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유언장을 쓰고 싶어졌다. 책상에 앉았다. 한 줄도 못 쓰고 그만두었다. 내가 산이 먼저 한 방울 물로 돌아가면 누가 산을 데리고 갈 것인가. 매일 짖고 물고 성질 더러운 산, 산 이의 분리불안 때문에 이사를 7번이나 했다. 산밑 이곳에 겨우 정착하는 가 했다.

오래전 코가 뻥 뚫리고 다리가 짧은 흰색 페키니즈 ‘산’과 ‘솔’이랑 살았었다. 솔은 산 밑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훌쩍 저쪽으로 떠났다.

산은 이곳으로 이사 온 지 3개월 만에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산은 슬개골이 약해 산책할 때마다 뼈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 올림픽 공원을 걸었었다. 중고 휠체어를 알아보는 중에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다. 하루 만에 저쪽으로 건너갔다. 산을 보내고 한 달 동안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무서웠다. 낮에 친구를 집에 데리고 가 옷만 갈아입고 일터로 나갔다.

햇빛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곳에 산과 솔의 뼛가루가 단지에 담아져 책상에 올려져 있다. 아직도 나는 단지 앞에서 그들 이름을 부르며 중얼거린다.

얼마 전 조카 동원과 주선에게 말했다. 산, 솔, 나 셋 남한산성 북문 아래 수목장으로 해달라고.

낫을 던져놓고 산이랑 걸었던 언덕길을 찾아갔다. 언덕에는 고철이 쌓여있다. 초록 대 위에 눈이 간간이 내렸다. 바람에 흰빛이 둥둥 떠다녔다. 망초 속으로 꼬리를 흔들며 산이 사라졌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