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지턱을 넘지 않았는데 하루가 덜컹 200
방지턱을 넘지 않았는데 하루가 덜컹
오금동 커피숍에서 나왔다. 햇빛이 아스팔트 위를 굴러다녔다. 미선이가 순댓국집에서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다.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서울에서 살게 계기를 마련해 준 그녀다. 배가 고프지 않아 다음에 먹자고 했다.
전철에서 내려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버스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주민들이 마을 밖으로 대부분 이사 갔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작년 가을부터 LH에서 도로 양옆을 가림막으로 막고 있다. 문득 가자지구 장막이 생각난다. 그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가림막 안에서 벚나무, 감나무가 길을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지나다닐 때마다 나무들에게 가만히 손을 흔든다. 나무들은 버스가 달릴수록 빠르게 뒷걸음쳤다. 모든 것들이 앞으로 달리고 높아질 때 오직 나무만이 뒤로 달리면서 작아진다.
마을버스는 유리창에 내려앉은 먹구름을 가득 싣고 방지턱을 넘어섰다. 돌아 돌아 종점에서 내렸다. 발을 떼자 소나기가 내렸다. 오늘은 걸음을 많이 걸어서일까. 비도 비지만 배가 고팠다. 뛸까, 아니다 달리면 앞에 비까지 맞는다. 머리카락이 가라앉았다. 볼 사람은 없지만, 스타일 무너졌다. 나무 종아리들을 지나 비 사이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방지턱도 없는데 몸이 덜컹거렸다.
머리카락에 물을 털지 않고 밥을 안쳤다. 밭으로 나갔다. 가지 고추 아욱을 땄다. 모기도 모기지만 도망치듯 밭에서 나왔다. 요새 비가 자주 와 밭고랑이며 밭이며 이름도 모를 풀들이 물 밀듯 쳐들어 왔다. 마당 입구에도 풀이 무럭무럭 자랐다. 뽑아도 뽑아도 ‘누가 이기나’ 자라는 잡초를 ‘그래, 갈 때까지 가보자’ 뽑다 지쳐 핑계를 댔었다. 논산 훈련소 훈련병 머리카락을 바리깡 들고 밀듯 잡초를 밀어버리고 싶다.
졸졸 따라다니는 개에게 간식을 주고 방으로 들어왔다. 가지를 삶아 무쳤다. 계란프라이는 주걱으로 들다가 찢어졌다. 꽃님이가 발로 세수를 하며 식탁 의자에 앉았다. 가지나물 프라이 고추와 된장 아욱국을 식탁에 차렸다. 의자를 당기고 수저를 들었다. 프라이를 달라고 우는 꽃님에게 노른자를 떼어주고 밥을 떴다. 밥그릇을 비우는데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아욱국 속에 고개를 박고 훌쩍거렸다.
설거지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집 앞 가로등이 고장 났다. 밤하늘에 별들이 살구처럼 달려있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이 푸른 사막 같다. 거미 전갈 붉은여우 대신 주인 없는 고양이 닭 개들이 울고 있다.
사막
오르텅스 블루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을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