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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품들의 사계

짜짱면이 불면 바람이 그칠까 199

by 불량품들의 사계

짜장면이 불면 바람이 그칠까



나는 신장시장에 있는 미용실을 샅샅이 뒤졌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염색 이만 원 하는 곳이 어디 있어요.”

성길씨는 내 뒤에서 고시랑 거리며 따라왔다.

서서히 성길씨 눈치가 보일 즈음 이만 원 하는 미용실을 찾아냈다.


나는 미용실 의자에 앉아 성길씨 노모 염색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성길씨는 여자만 있어서 어색했는지 밖으로 나갔다.

40분 지났을까. 그가 염색이 끝나자 미용실로 들어왔다.

“점심시간 됐는데 우리 짜장면 먹고 가요”

그의 말속에 고마운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이주를 시작하자 배달해 주는 중화요리 집이 이전해 버렸다. 전에 성길씨는 짜장면을 시킬 때 내 것도 시켜주었었다. 먹을 때마다 고마웠었다. 어느 날 우연히 짜장면 하나는 기름값 때문에 배달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실망했던가.

그렇지만 내가 짜장면을 좋아하는 줄 알고 지금 먹자고 한 것이다. 어쨌든 고맙다.

“샘재 사거리 그리 가까요?”

우리는 상호를 말하지 않아도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아니요. 서울서 들어오는 길에 거기보다 좋은 곳 있어요.”

성길씨는 자기도 비싼데 알고 있다고 으스대고 싶은 눈치였다.

“거기 비싸게 보인던디?.”

부담스러웠다. 비싸면 나도 한번 사야 할 것 같아서였다.

어려서부터 나는 지금까지 짜장면을 변함없이 좋아한다. 짜장에다 밥 비벼 먹어도 기막히다. 생일 때나 친구들끼리 소풍 갔다 와서 먹는 짜장면은, 지금 햄버거 피자하고 비교할 수가 없다. 아직도 배가 고프면 짜장면이 생각난다.

그는 샘재 사거리에 있는 짬뽕집은 면이 쫄깃쫄깃하지 않다는 이유로 바퀴를 기어코 비싼 요리 집으로 돌리게 했다. 내가 돈도 안 내면서 고집부릴 일이 아니라 따라갔다. 서울서 집으로 가는 내리막길에 있던 집 맞았다.

성길씨는 나랑 할머니에게 묻지 않고 한 그릇에 9천5백 원 하는 해물 왕짬뽕 세 그릇 시켰다. 옆 테이블에서 먹는 짬뽕 그릇이 세숫대야만 했다. 나는 직원을 불렀다.

“혹시, 저거 왕짬뽕이에요”

“ 네.”

저걸 다 먹다가는 날 새게 생겼다.

“아저씨, 저거 너무 양이 많으요.”

“그냥 시켜요.”

“뭐 허려고 다 먹지도 못 허는데 시켜요.”

성길씨는 왕짬뽕을 먹고 싶어 했다.

“왕짬뽕,일반 짬뽕, 간짜짱 하나 줏쇼.”

나는 단무지와 양파를 가지러 다녔다. 테이블에 음식이 나왔다.

“면 다 퍼져요. 그만 다니고 앉아 먹어요.”

“이것만 허께요.”

그는 짜장면이 불까 안타까워했다. 나는 할머니 옆에 앉았다.

성길씨는 소주를 시켰다. 소주를 따르던 성길씨가 내게 물었다.

“맛이 어때요?”

“맛이 있기는 헌디 거그보다 가격이 겁나게 쎄요. 다음에는 내가 말한 데로 가요.”

할머니는 말 한마디 없이 짬뽕을 먹었다. 나는 노란 반달을 할머니 짬뽕에 올려주었다.

성길씨는 소주를 급히 마셨다. 할머니는 아들을 바라보다 말했다.

“날씨도 더운데”

나도 한마디 했다.

“또 술병 나게 생겼네. 저번에 시커먼 똥 쌌다고 내가 병원 데려다줬잖아요. 당뇨도 있고.”

“괜찮아요. 언제 또 이렇게 모여 먹겠어요.”

“아저씨는 이사 가면 나 안볼라잉? 사람 일은 모른디.”

“뜨면 그만이지 뭐.”

“참말로 말 헐 줄 몰라요.”

할머니는 나를 보면 웃었다. 나무젓가락처럼 마른 성길씨도 배시시 웃었다. 그는 당뇨 때문에 몸이 너무 말랐다. 밭에 있는 하얀 민들레를 캐 뿌리를 달여먹는다.

“병원 가봐요.”

“내가 그렇게 말랐어요.”

그동안 갈등과 질투로 삐지고 싸우기도 했지만, 지금 시간만큼은 남녀도 아니고 집주인과 세든 여자도 아니고 가족이었다.

성길씨 면은 통통 불어 갔다. 숟가락으로 국물만 떠먹던 그가 벌떡 일어났다. 양파를 가져왔다. “옴매 이게 먼일이래요” 그는 멋쩍게 웃었다. 나는 짜장면을 먹을 때 양파를 많이 먹는다. ‘아따, 감동이네’ 하는 순간 그가 계산대로 향했다. 아직 면이 남았는데 할머니도 나도 젓가락을 놓았다.

그는 총 2만 7천5백 원을 계산했다. 성길씨는 계산대 옆에 냉동실에서 멜론바 하드를 가져와 우리에게 나눠줬다. 우리는 하드를 빨면서 집에 왔다.

‘아이고, 뻗쳐라’ 신문을 뒤적거리다가 소파에 누웠다. 성길씨가 집에서 출발할 때 차 안에서 했던 말이 있었다.

“내 학벌로 대토를 알아보려니 힘들어요. 대학 나온 사람도 힘들다는데 시청하고 동사무소에서 뗀 서류가 가방으로 가득 찼어요.”

‘성길씨! 아까 내가 짜장면이 불 정도로 왔다리 갔다리 한 것은 성길씨가 한 그 말이 마음에 걸려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었단께요. 저도 띨빵해서 서류 본 것은 잘 몰러도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협조할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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