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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품들의 사계

배짱이들 여름에 베이고201

by 불량품들의 사계

배짱이들 여름에 베이고



풀치는 자진해서 알코올 치료 병원 간다고 했다.

“다시는 술 마시지 못 헌께 오늘 마지막이다 생각허고 마셔라.”

나는 풀치가 술에 취할 때마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러던 내가 술을 마시라 했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나. 병원에서 데리고 올 때까지 마셨다.

“새사람이 돼서 돌아올게요.”

“달맞이꽃이 웃겄다만은 지발.”

그동안 술에 취해 집 앞에서 소리 지르고 노래하는 그를 나와 주민들과 신고해 경찰차가 수없이 출동했다. 경찰들도 못 할 짓이다. 처음 신고할 때는 죄지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지금은 풀치가 술래 취해 나타날 때마다 신고한다. 풀치는 경찰차가 보일 때마다 말했다.

“짭새 왔네. 누가 신고했어? 내가 누군지 알아, 안동 김씨 27대손이야.”

그는 두려움도 무서움도 없었다. 경찰들은 연자방아에 자빠져 있는 그를 어르고 달래 컨테이너에 데려다준다. 아니 모셔준다는 게 맞는 말이다.

“다시는 술 마시고 나를 괴롭히지 못허게 좀 해봐요.”

“인권이 있어서 함부로 하면 안 돼요.”

“그럼 주민들 인권은요?”

이런 일이 수없이 반복됐다. 나도 지쳤다. 듣기 좋은 콧노래도 한두 번, 미운 놈 떡 하나 주는 것도 한두 번. 이제 택도 없다.

풀치는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스스로 알코올 치료 병원에 간다고 했다.

풀치는 병원에 도착해서 입학 사진을 찍어 보냈다. 시도 때도 없이 공중전화박스 전화통을 붙잡고 전화했다.

“누님, 병원에서 나가면 양평 한 바퀴 도는 것 잊지 말아요.”

“알았어. 꼭 치료해서 나와.”

공중전화에서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전화를 끊지 않으려 아무 말이나 던졌다. 이가 빠진 입으로 말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게 눈에 선했다. 풀치는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날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렸을 것이다.

“누님, 면회 좀 와요. 돈 조금 하고 책도 보내주고요.”

“사식 너으라는 것이여 지금? 니가 나랏 일하고 교도소 간 줄 알어!”

‘띠띠띠......’


풀치는 보름쯤 병원에서 있었을까. 방정도 저런 방정이 없다. 병원에서 나오는 날 술에 취해 컨테이너로 개선장군처럼 돌아왔다. 그날부터 성길씨와 거의 매일 술을 마신다.

“형. 냉장고 반찬 다 썩어요.”

“전기세 꼭 줘야 해.”

성길씨는 전기 끌어가는 것을 허락했다.

전기선은 큰길을 가로질러 컨테이너에 불을 켰다. 길이는 30m였다. 중간에 선을 연결한 멀티탭을 검정비닐봉지로 싸놓았다.

차들이 도로를 지날 때마다 전기선을 밟고 지나갔다. 나는 전기선이 까질까 봐 조마조마했다. ‘저러다가 합선이라도 되면 집 전체가 전기가 나갈 텐데.’


풀치 컨테이너 스피커에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 24시간 흘러나왔다. ‘24시 편의점도 아니고’ 나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지발, 배가 뒤집어 든 지 엎어지든지 오지 마러라.’

풀치는 아침부터 막걸리를 들고 와 수돗가에 술판을 벌였다. 성길씨는 반색하였다. 성길씨 머리는 새집 두 채, 풀치는 등산 모자를 쓰고 있었다.

“형, 얼른 한잔해.”

“이사 가면 언제 이렇게 너랑 술을 마시겠냐.”

“형, 이사 가도 연락하고 살아요.”

그들 처음은 언제나 다정하다.

“그건 그렇고. 너, 왜 전기세 안 주냐?”

“오늘 내가 막걸리 사 왔잖아.”

“야, 이이 새에끼이야, 저언기세를 줘어야 하알 거 아아니야.”

“일 나가서 돈 받으면 준다고.”

“너어 도온 아안 주우면 저언기 끄느을 거어여.”

“끊든지 말든지.”

“너어 마알 다아해앴지.”

“응.”

성길씨는 핸드폰을 열었다. 풀치는 반신반의 했다.

“하안전에 저언화하안다.”

“하세요.”

“여어기기 나남의 저언기 끄얼어다 쓰은 노놈이있어요.”

풀치는 벌떡 일어났다.

“이 새에끼야, 내에가 모옷 하알 주울 아라았지.”

풀치는 성길씨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어어 칠라고.”

여름 배짱이들이 엉겨 붙어 넘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했다.

풀치는 손을 놓고 주위를 살폈다. 풀치는 성길씨가 풀을 베다 놔둔 녹슨 낫을 들었다. 연자방아에서 지켜보던 앞집 아저씨가 달려들어 풀치 손에 들린 낫을 뺐었다. 나뭇잎들이 오므라들었다.

풀치는 사람들이 똥 친 막대기보다 못한 취급을 해도 개기기는 했지만, 돌이나 연장은 들지 않았다. 참 욕은 했다.

그는 올여름 전기 없이 살 수 없을 거 같다고 생각해 순간 욱 올라온 거 같았고, 성길씨는 풀치가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전기선 자른다고 협박했었다. 오늘 폭발한 것이다.

성길씨는 경찰차를 불렀다. ‘옴매, 한전에 경찰차꺼지’ 풀치 오늘 쌍코피 터지게 생겼다.

성길씨는 풀치가 술에 취해 내 집 앞에서 뒹굴고 오줌을 싸도 가만히 있었다. 오늘은 뭔 일일까. “너어, 오오느을 가아마니히 두우지이 아안게엤어.”


이십 분 지났다. 경찰차가 도착했다. 경찰은 상황을 들은 후 성길씨에게 진술서를 쓰라고 했다. 풀치가 낫을 들었다는 이유였다. 성길씨는 막상 진술서를 쓰려니 겁이 났고 풀치가 불쌍했을까. 진술서를 쓰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마당 가 호두나무 아래 서 있다가 다가가 말했다.

“나 좀 팬히 살게 진술서 써요.”

“이것 쓴다고 당장 들어가는 것 아니에요.”

젊은 경찰이 말했다. 그는 진술서 쓰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진술서가 쌓여야 구치소에 갈 수 있었다. 경찰들은 시장에서도 풀치 술주정 신고가 들어온다고 했다. 여기서 안 보이면 거기서 사고 치고 있었다.

“아안 쓰을래에요. 부울쌍해에서.”

“씃쑈. 밤낮으로 마당에서 짖어 대 내가 못 살겄어요.”

한때는 사람 만들겠다고 그놈의 오지랖과 연민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마음고생 했던가. 이제는 종 치고 싶다.

풀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젊은 경찰이 들고 있는 진술서는 바람에 팔랑거렸다.

우리는 독 안 든 쥐를 꺼내어 낭떠러지에 세워놓고 밀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모올라요. 지인술서 모옷써요.”

“그렇게 불쌍허게 생각허면서 한전에 신고는 왜 했소?”

“우리도 날마다 여기 오고 싶겠어요?”

경찰이 풀치를 컨테이너에 모셔주고 나서 상황은 끝났다.

나는 바닥에 누워있는 낫을 치우다가 김남주 ‘낫’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고

주인이 종을 깔보자

종이 주인의 목을 베어버리더라

바로 그 낫으로


성길씨 아버지도 이 마을 머슴이었다.

예부터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풀은 낫에 베였다. 그것을 아는 풀치는 술에 취해도 주민들에게 대들지 않았다. 성길씨도 마찬가지, 마을 주민들이 은근히 무시하고 집 앞에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던지고 가도 한마디 못했다. 저 둘은 그렇게 누구에게도 반응하거나 저항하지 않았다. 혼자 삼키고 술로 해결했었다. 그러나 오늘 저 행동은 서로 만만하게 본 것이다. 둘 다 못나도 참말로 못나 보였다. ‘에라 부실이들.’

풀치는 성길씨가 전기를 주기 전 빈집에서 몰래 전기를 따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전기를 전공했다. 전기선 따서 쓰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물고기가 물 만난 듯 날마다 트로트를 틀어났었다. 24시간 듣는다고 생각해 봐라. 참다못해 옆집 아저씨가 풀치 몰래 전기선을 잘랐다.

한전에서 출동하여 전기선을 정리했다. 한전에서 성길씨에게 전화 왔단다. 포상금 주겠다고 계좌번호 보내라고 했단다.

“성길씨 허락하에 전기를 끌어다 썼고 성길씨가 신고허고 양심상 그러먼 쓰겄소.”

"그렇죠."

그렇게 밤이 왔다. 평화가 올 것 같았지만 마을을 휘젓던 트로트 대신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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