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보다 못한 인간은 아프면 어디로 갈까 202
개보다 못한 인간은 아프면 어디로 갈까
지난해 봄이었다. 골칫덩어리 풀치는 노리끼리한 수캐와 흰색 암컷 진돗개를 데려왔다. 아직 어렸다. ‘지 몸뚱이도 간수 못 허면서 어쩔라고 데꼬 왔을까’ 암놈은 수캐 입안을 샅샅이 핥아주며 사이가 정말 좋았다.
며칠이 지났다.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쪽으로 갔다. 풀치가 먹고 자는 컨테이너 근처 축대 아래에 안 보이던 닭장이 있었다. 연두색 철망을 붙여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그 안에 닭 세 마리가 있었다. 보기 드문 닭들이었다. 개밥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닭은 또 어디서 데려왔을까. 닭들은 자고 나면 늘어나 7마리가 되었다,
‘남의 새끼들이 늘어나든 말든 왜 내가 불안허지’ 앞으로 저것들 밥을 꼭 내가 줄 것 같은 예감이 가슴팍을 팍팍 쳤다. 누룩곰팡이 술고래는 나를 믿고 저 많은 식구를 데려왔을 것이다.
풀치는 제 입에 들이붓는 술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신다.
한여름 닭들은 굶어 죽기 일보 직전, 개들은 컨테이너 옆 쇠말뚝에 묶여 땡볕을 받고 있었다. 닭은 물을 끓일 필요 없이 털을 뽑아도 될 거 같고, 개들은 낑낑거리며 땅을 팠다. 배를 대고 잠깐 있다가 그 옆을 팠다.
‘이 미친놈아, 털옷 입은 애들을 방치허고 에라 나쁜 놈.’
동물 학대로 몇 번을 전화하려다 참았다.
우리 집 들어오는 입구에 철장 안에서 사계절 갇혀 사는 개들이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목줄이 묶여있지 않았다.
“아저씨, 개들 사무실 안으로 데려다 놓으세요.”
“개는 개답게 키워야 해요”
37, 8도 뙤약볕을 받고 혀가 땅에 닿도록 숨을 쉬고 온몸을 들썩거려도 개 주인은 저 말을 한다. 주인은 사무실에서 반바지 반 팔 차림에 에어컨 빵빵 틀고 앉아 있다.
애초에 개는 자연에서 살았다. 인간이 잡아 길들이며 가축화시키고 인간의 맛에 맞는 품종으로 만들었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인간 뼈 옆에 개 뼈가 있었다. 인간이 먹을 것을 구하러 들로 산속으로 갈 때 개가 앞장서 사냥을 했다고 한다. 개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어째 말이 옆으로 빠졌다. 개가 학대받는 것을 보면 흥분한다. 나도 병이다.
닭들은 열사병에 걸리게 생겼다. 나는 장마가 오래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지난해 장마는 마른장마였다.
풀치가 술에 취해 개구신 짓거리하고 다닐 때 나는 개집을 나무 그늘로 옮겼다. 풀치는 개들에게 손톱도 들어갈 틈이 없이 공사장에서 쓰는 플라스틱 줄로 목을 조여놨다. 그 위에 목줄을 채워놨다. 나는 목줄을 칼로 잘라 풀어줬다.
풀치는 술에 취해 개집을 제자리로 끌고 가 컨테이너 옆 쇠고리에 묶었다. 그러기를 두세 번 반복했다.
어느 날 풀치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님, 개들 손대지 마세요.”
“지나 댕기는 사람이 개가 죽게 생겄으니 풀어줬겄지. 너는 더워 디질 것 같어 바람 찾어 그늘 찾어 댕기면서 니가 주인 맞냐!”
나는 그 뒤로도 목줄을 풀어주었다. 그는 포기했다. 개들은 비쩍 말랐지만, 표정이 편해 보였다.
개들은 나만 보면 환장을 하고 달려든다. 저것들도 안다. 내가 아니었으면 땅을 파다 죽었을 거라는 것을. 수놈은 내 발소리 차 소리를 듣고 홍 반장처럼 뛰어온다. 내 다리를 부여잡고 난리 지르박을 추다가 풀치 인기척이 들리면 그에게 재빨리 달려간다.
‘그래도 주인이라고. 개나 주인이나 빼빼 말라 삐틀어져 가꼬.’
풀치는 동네 개들에게 곰팡이 핀 음식들을 던져주어 주민들이 개 근처에 못 오게 했다.
나는 오지랖이 가동했다. 개 사료를 사다가 풀치 몰래 밥을 주었다. 개들은 사료를 잘 먹지 않았다. 풀치가 족발 가게에서 먹다 남은 뼈다귀를 갖다 주기 때문이다. 개들은 며칠이라도 굶는다. 족발이 올 때까지.
개들은 이름이 없었다. 나는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았다. 정들기 싫었고 풀치가 나에게 맡길 거라는 예감 때문에 관심 없는 척했다.
사람들은 각자 맘에 드는 이름을 불렀다. 복희 해피 흰둥이 노랑이. 앞집 남자는 풀치 본명을 불렀다. 풀치 인권이 있기에 본명은 말할 수 없다.
풀치는 동네 개가 되었다. 주민들도 풀치 본명을 불렀다. 풀치도 그렇게 부르라고 했다. 풀치 스스로 개가 되길 원했다. 그는 도덕과 규범과 법 테두리에서 벗어나 ‘개 파’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요즈음 개들은 개 카페, 개 펜션에 가고, 개 무알코올 맥주도 마시고 개치원에서 예의범절을 배운다. 풀치처럼 밤낮으로 소리 지르며 싸돌아다니다 구치소 들랑거리지 않는다.
개는 아프면 동물병원에 가지만, 개보다 못한 인간은 어디로 갈까.
풀치를 보면 내 입에서 험한 말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전에는 한 번씩 일 나가드니, 요새는 일도 안 나가는 거여.”
“일이 없어요.”
“허구헌 날 취해 있은께 일을 안 주는 거지. 일해서 돈 벌어 옷도 사 입고, 몸에서 냄새 폴폴 나는 것 알어?”
풀치는 내가 잔소리를 하면 귓등으로 듣다 개들 입을 틀어막고 앉아, 서, 손을 백번도 더 한다.
겨울은 빠르게 왔다. 그 와중에 흰둥이 젖이 불었다. 낑낑거리는 소리가 컨테이너에 아래서 들렸다. 나는 배를 대고 땅에 엎드려 안을 들여다보았다. 강아지 세 마리가 볼볼 기어 다녔다. ‘하필 겨울에 새끼를 낳냐’ 근데 애비를 닮지 않았다. 흰색 바탕에 검정 점이 박혀 있었다.
‘지금 애비가 누구인지 그게 무슨 상관이여, 애들이 얼어 죽게 생겼는디.’
집에 있는 극세사 이불을 잘라 컨테이너 바닥에 깔고 장대로 골고루 펴주었다. 바람구멍은 종이 상자로 막았다.
나는 날마다 밥을 주러 다녔다.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안을 들려다 보았다. 흰둥이 젖을 빨고 있는 것은 한 마리 새끼뿐이었다. 컨테이너 밖에서 노랑이는 뱅뱅 돌고 있었다.
‘그래, 좀 춥냐’ 얼어 죽었다.
그런데 강아지와 풀치가 보이지 않았다. 닭장 안에 계란이 열개 넘게 있었다. ‘또 갔구나 구치소.’ 닭장 안에는 족발 뼈다귀, 가래떡, 날짜 지난 과자, 햄 등이 바닥에 깔려있었다.
풀치는 나에게 “청계 알이여, 삶아 먹어요” 두 개 갖다 준 적 있었다.
닭들은 모이를 제대로 먹지 않았는데 알을 낳고 있었다.
나는 할 수 없이 닭 사료를 샀다. 눈 속을 푹푹 빠지면서 사료를 주러 다녔다. 올겨울은 습설 인지 뭔지 눈이 얼마나 많이 왔는가. 수많은 소나무 가지가 곳곳에 부러졌다. 그 눈 속을 빠지며 사료를 주러 다녔다.
너무 추운 날에는 하루 건너뛸까 하다가 ‘꼬끼요’ 우는 소리가 ‘배고파’로 들리면 ‘내가 왜에 풀치 저 개새 때문에 이 생고생을 허지’ 욕을 하면서 일어났다. 닭들은 먼저 먹으러 쪼고 날아 앞차기 옆차기를 했다.
풀치에게서 편지가 왔다. 한 달 만이었다. 닭장 철망 비밀번호가 0000이라고 했다. ‘누님, 개와 닭들을 내 자식처럼 사랑으로 키워주세요’
나는 계란을 꺼내 사방팔방 갖다 주었다. 나 혼자 먹는다는 것이 꺼림칙했다.
풀치는 꽃피는 봄날 출소했다. 풀치가 내 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개들이 달려갔다. ‘밥도 주지 않은 주인이 저리 좋을까.’
“또 새끼 나먼 앞으로 어떻게 할꺼여. 흰둥이 중성화 수술해 줘.”
“노란 놈이 아들이에요”
“부부가 아니었어?”
나는 왜 여태 부부인 줄 알고 있었을까.
작년 여름에 마을 끝 집 검둥이가 날마다 왔었다. ‘저 가시나는 노랑이 핥다가 검정개만 나타나면 꼬리를 쳐’ 그때 둘이 자주 어디론가 사라졌었다.
노랑이는 검정개가 흰둥이 뒤를 올라타려 하면 필사적으로 막았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닭들은 죽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