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식솔을 놓칠 뻔 211
하마터면 식솔을 놓칠 뻔
시동을 걸었다. 100m 달렸다. ‘아차, 문을 잠그지 않았구나’ 잠시 머뭇거리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핸드폰도 신발장 옆에 있었다. ‘아이고 이 짱돌아.’
외출 한 번 하려면 두 번 이상 집을 드나든다. 정신머리가 없어 문을 열어둔 채로 외출한 적 도 한두 번이 아니다. 헐레벌떡 나가다 보면 필시 꼭 필요한 물건을 두고 나간다.
가져갈 것도 없지만 비밀번호를 아는 친구들이 많다. 갑자기 나 없을 때 그들이 방문하면 집안 꼴이 말이 아니라 난감하다.
이놈의 오지랖, 아침부터 남의 일로 허둥지둥하는 나가는 걸 누가 보면 뭉칫돈이라도 번 줄 알 것이다.
핸드폰을 챙겨 집 앞 연자방아로 붕 뛰어올랐다. 걸음을 멈추었다. 수국이 활짝 피었다.
불과 얼마 전 꽃봉오리만 댓 개 뭉쳐져 있었다. 꽃은 호두나무 그늘을 피해 햇빛 드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가지를 잡아당겨 바로 세웠다. 수국 그늘에 국화가 잠겨있었다.
잠시 숨을 쉬고 천천히 바닥을 보았다. 연자방아 주변과 텃밭에 땡감이 떨어져 있다. 언제 감꽃은 또 피었다 졌을까!
패랭이 달맞이꽃은 이미 제 몫을 다해 신경 쓰지 않았다. 해바라기 씨앗을 물까치가 쪼아 물고 날아가면 ‘꽃이 졌구나 더위도 곧 가겠지' 생각했을 뿐이다.
주방 창문 아래 수국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꽃으로 다가가 활짝 일으켜 세웠다. 순둥이는 그 아래서 혀로 털을 핥고 있다.
수국꽃을 내심 기다렸다. 죽은 강아지 산이 가 머리를 흔든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등 뒤로 사라진 그 모든 것들이 희미해져 간다. 눈 앞에 옻칠해 놓은 듯 선명한 무늬도 나이 따라 엷어지는 것일까.
아침부터 무슨 궁리를 이리도 오래 하고 서 있을까.
내가 아무리 마음을 잡지 못하고 싸돌아다녀도 꽃은 피었다. 꽃만 피었을까!
계곡에 물이 넘치고 산이 내려앉고 소가 물에 떠밀려가도 텃밭에 가지 토마토 호박은 썩지 않았다. 주인집 성길 씨 밭 참외는 곯았다. 구슬만 한 빗속에 우리 집 밭 식솔들은 제자리에서 할 일을 다 하고 있었다. 하마터면 저것들을 놓칠 뻔했다.
집에 돌아와 다 제쳐두고 돗자리 위에 누웠다. 찬 곳을 찾아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날마다 놓치며 스치며 지나치며 하루가 간다. 그 빈 곳을 메꾸려 호두나무 가지에서 매미가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