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품들의 사계

나도 그들과 닮았다 214

by 불량품들의 사계

나도 그들과 닮았다



‘나를 여기 두지 마세요. 먹을 것 없어도, 눈비 피할 곳 없어도, 주정뱅이가 주인이어도 나는 그곳에서 새끼랑 살고 싶어요. 떠돌다 잡혀 안락사를 당해도 그곳에서 살고 싶어요. 새소리를 듣고 싶어요, 빗방울을 세고 싶어요. 제발 제 운명을 함부로 정하지 마세요.’

풀치가 키운 개 두 마리중 흰색 어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루에 몇 번을 우리 집 마당에서 놀다 사료를 먹고 가는데. 새끼 복만이는 나를 따라다니다가 잠깐씩 사라진다.

풀치가 사는 컨테이너에 가보았다. 복만이가 나를 앞장섰다.

어미는 땅에 배를 대고 몸을 말고 누워있다. 내가 다가가자 고개를 돌렸다. 일어나려 했지만, 곧 주저앉고 만다. 오른쪽 뒷다리를 땅에 딛지 못했다.

‘아, 이것 병원 가야 하는 것 아니여!’ 풀치는 술 마시고 마을을 휘젓다가 연자방아에서 진을 치고 헛소리 하며 앉아 있다.

그렇게 풀치나 개나 내 집에 오지 말라고 했지만, 막상 꼼짝 못 하는 어미를 보니 밥을 먹어도, 음악회 객석에 앉아있어도, 어미 병원비가 생각났다. 이쯤 되면 답은 정해졌다. 그러나 병원비가 백만 원이다. 아픈 애들을 하도 데려가서 병원비를 짐작할 수 있다.

다음 날 아침, 풀치 눈을 피해 어미에게 갔다, 어미는 내 발소리를 듣자 겨우 고개를 돌렸다.

목줄을 채웠다.


방이동 페토피아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

“날카로운 것에 찔렸는데 곪아 터졌어요. 엄청 아팠을 건데.”

“다행이다. 뿌러진 것 아니었네. 수술 안 해도 되죠?”

나는 약물 치료하자는 뜻이었다. 수술하게 되면 수술비를 내 어찌 감당하리오.

”곪은 것 긁어내야 해요, 고름이 너무 많이 퍼졌어요.”

수술비는 90만 원, 60만 원으로 합의 봤다. 3개월 나누어 내기로 하고 어미를 맡겨놓고 집에 왔다.

일주일 뒤에 어미를 데려왔다. 풀치는 넥카라 착용하고 있는 어미를 보고 놀랐다. 죽은 줄 알았기 때문이다.

“나 혼자 병원비 감당 안 되니까. 너도 보태라.”

풀치는 연자방아 앉아 고개를 끄덕거렸다.

“니가, 교도소 들락거릴 때 내가 닭, 개 사료 사다 준 거만 해도 몇십만 원이야. 이번 병원비는 꼭 보태.”

“걱정도 마시라니까. 내가 다 낼게요.”

“60만 원 다 낸다고야. 그럼 각서 써.”

풀치는 내가 불러준 대로 각서를 썼다. 마치 인천에서 놀러 온 동생 혜원이 증인을 섰다.

풀치 50만 원, 나 십만 원. 우리는 호두나무 그늘에서 각서를 썼다. 셋 다 지장 찍고 주민번호, 이름 기재 했다.

풀치는 곧바로 통장을 가져왔다.

“뭔 일일까.”

통장을 폈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웃고 말았다. 잔고 천 원.

풀치는 내가 웃는 거 보고 당황해하며 조용히 말했다.

“잘못 가져왔어.”

다시 가져온 통장 잔고 4천 원.

“내가 어지간하면 세종대왕이 노할까 봐, 욕 안 헐라고 했는디. 에라 미친놈, 너를 믿는 내가 부실이지.”

마당에서 어미는 넥카라 하고 복만이랑 뛰어놀고 있다.

풀치는 마당 입구에 앉아있다.

“야, 니 애비 한테 가라. 트리오로 옆차기 허냐?”

나는 개 밥그릇을 엎어놨다.

“누님, 시집을 내든 가든 돈 벌어 줄게요.

풀치는 풀린 눈으로 뻐꾸기를 날리고 있다.

“딱, 뻐꾸기네.”

“뻐꾸기라니요.”

"개, 닭, 데꼬 와, 니는 놀고 내가 사료 사다 맥이고 있으니 니가 뻐꾸기랑 뭐가 다르냐?"

풀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앞으로 너도 개도 보기 싫으니, 마당에 발도 딛지 마라.”

성길씨도 나도 풀치를 마당 근처 얼씬도 못 하게 해, 풀치는 극도로 뿔다구가 났다. 온종일 마당 입구에서 소리 지르다 뒹굴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풀치 몰래 어미를 후속 조치하기 위해 병원에 데려갔다.

병원 원장님이 어미 처지를 듣고 병원에서 키우기로 했다. 순간 복만이가 생각났다.

‘둘이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복만이는 어떡하지.

일단 집에 가서 생각해 본다고 했다.

풀치는 어미 목에 넥카라가 없어진 것을 보고 이 없는 입안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면서 통장을 줬다. 어미 병원비 하라고 했다. 누가 통장에 돈을 입금해 준다고 했다면서, 새벽에 농협에 가라고 했다. 외상으로 술 마신 곳에서 카드 갖고 있다고. 나는 통장을 믿어 보기로 했다.


9시에 농협에 갔다. 한 시간을 기다려도 일 원 한 푼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와서 풀치 앞에 통장을 던졌다.

그 후로도 풀치는 택시 타고 시내 들락거렸다. 술도 마시고 담배도 태웠다.

‘병원비는 없어도’ 그걸 보고 나는 염천 가마솥 끓듯 부글부글 끓었다. 나의 연민은 바닥이 드러났다. 내가 왜 풀치하고 엮어 이 지랄을 하는지. 누구 탓할까. 내 오지랖이다.

어미와 새끼는 우리 집에 거의 먹고 잔다. 그런 어미를 병원에 데려다줬다. 내가 언제까지 책임질 수도 없고, 고양이 닭들까지 내가 다 밥을 줄 수 없다.

어미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문을 나서는데 워낙 순한 애라 짖지 않고 낑낑거렸다.

‘이모가 자주 올께.’

돌아서서 문을 나서는데, 여기서 죽을 때까지 살겠다는 주민들을 억지로 내보는 그들이 떠올랐다.

아파트 짓겠다고 주민들 강제 이주시키는 LH 하고 나와 뭐가 다른가. 그들은 마을을 떠나기 싫어 불안해하는 주민들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도 누구보다 여기를 떠나기 싫어하면서, 차에 안 타려 엉덩이를 빼고 벌벌 떠는 애를 좋은 곳으로 간다고 달래며 억지로 병원에 끌고 갔다. 내가 어미에게 하는 짓이 LH 하고 똑같았다.

사람들 볼 때마다 펄펄 뛰며 아는 척하던 복만이는 집 귀퉁이에 맥없이 누워 있다.

‘우리 엄마 어디 갔어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