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해도 될 것 같아215
삭제해도 될 것 같아
성길씨는 어깨 통증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성길씨를 차에 태우고 약국에 갔다.
그는 약국 문을 나오자마자 말했다.
“우리 양꼬치에 술 한잔하고 갈까요?”
“나는 차 때문에 술 못 마셔요.”
성격 급한 성길씨 오른발이 양꼬치 집에 들어가 있다. 나도 양꼬치를 좋아해 흔쾌히 따라 들어갔다. 그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소주 한 병에 양꼬치를 시켰다.
그는 소주를 따르면서 말했다.
“내가 얼마나 괄시당하고 살았는지 알죠?”
성길씨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동네서 머슴이었다는 말을 또 꺼냈다.
“그러니까요. 살기가 얼마나 팍팍 했겠어요.”
“옆집이 이사 온 뒤로 마을 사람들이 나를 깔보지 않아요.”
“설마.”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해요. 매일 사람들이 찾아와 집이 북적거려서 그런 것 같아요.”
분위가 달콤해서 인지 양꼬치도 맛있고 맥주도 땡겼다.
성길씨는 집이 그동안 절간 같았다고 했다. 마당 입구 시멘트가 금이 가도록 내 지인들이 찾아왔다. 그게 뭐라고 성길씨에게 빽이 되었는가 보다.
언제부터가 사람들이 먼저 성길씨에게 다가와 말을 붙인다고 했다. 그동안 혼자 물 위에 기름처럼 지내다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어울려 밥을 먹고 오면 내게 자랑했었다.
“다 그쪽 덕이예요. 고마워요.”
그는 진심으로 말한 게 느껴졌다. 찡했다.
“이사 가는 그날까지 서로 잘 허게요.”
그는 소주 한 병 더 시켰다.
다음날 새벽 마당에서 천둥 터지는 소리가 났다.
“여어옆 지이입 나아와보오세에에요. 바앝에에다 으음시익무울 버어리이지 마알라아고오요!”
성길씨가 막사 뒤에서 나를 불렀다.
“나아와보오라고요.”
그 소리는 소주병 깨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는 급할 때나 열받으면 나를 옆집이라고 부른다. 옷을 대충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밭 가에 배추김치와 김칫국물이 벌겋다. 그는 막대기를 주워 들고 김치를 휘적거렸다.
“어제저녁때 앞집 아저씨가 바께스 들고 와서 버렸다고요.”
그는 앞집을 쳐다봤다.
“내가 개 밥 주다 봤다고요. 아저씨헌테 말 헐라다 쌈 날까.”
그는 꼬리를 바짝 세우고 연자방아로 올라섰다. 앞집으로 걸어갔다. 마치 아저씨가 문 앞에 담배를 태우고 서 있다. 성길씨는 잠시 머뭇거렸다.
“바앝에에 쓰으레에기이 버어리이며언 아안돼에죠오.”
그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한마디로 꼬리를 내렸다. 돌아서 나를 보더니 멈칫거렸다.
‘꼬리 치켜들고 쫓아갈 때 알아봤어야 했는디.’
그는 말없이 걸어왔다.
“아저씨,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요. 음식물쓰레기 땅에 묻으라고.”
성길씨는 평소에 김치, 과일 껍질, 대파 뿌리를 버젓이 밭에 버린다. 수박껍질은 파리가 들끓는다. 지나다니는 이웃들이 그걸 보고 나도 버려도 되겠지 생각했을 것이다.
성길씨는 그동안 정황으로 봐 내가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도 나를 단정 짓고 지목하는 것에 상당이 기분 나빴다.
어제저녁 양꼬치 사주면서 고맙다고 할 때는 언제고. 종이에 잉크도 안 말랐는데.
못난 것들은 얼굴만 봐도 반갑다고 했다. 그는 만만한 나와 풀치, 고양이, 개에게 큰소리친다.
어제저녁 집에 오면서 차 안에서 내가 말했다.
“우리 이사 가더라도 서로 왕래하고 친구처럼 지내요.”
“그럼, 그래야죠.”
나는 방에 들어와 주고받은 저 말 삭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