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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품들의 사계

칡꽃 같았던 그 길은 언제나 혼자였다고 228

by 불량품들의 사계

칡꽃 같았던 그 길은 언제나 혼자였다고



한밤중 천둥 치더니 빗소리 커진다

떠도는 개를 생각하며 일어나 앉았다

무엇이 그토록 귀를 뚫고 지나갔을까

단지 천둥이 짖었을 뿐인데

텃밭 배추 저리도 검푸른데

서리 내린 뒤 빗소리에

내 앞의 모든 것들이 불분명해진다


날개들은 무슨 노래로 서로를 위로하며

잎 진 나무들은 어떤 몸짓으로 서로를 용서할까

구르는 돌들을 쥐었다 놓으며 가는 그 길

생각해 보면 그리 아프지 않았던 계절은 없었다

더는 갈 수 없는 그곳을 위해

모래바람을 맞으며 뿔을 세우고 가는

사막 뿔도마뱀처럼

바닥을 밀며 걸었다

어둠 속 빛은 흔적 없고

칡꽃 같았던 그 길은 언제나 혼자였다고

돌아누운 그림자 등을 가만히 껴안는

한 번 흘러간 구름은 돌아오지 않고

그 모든 것들 아직 버리지 않았다고

주먹을 펴다가

어떤 짐승의 발자국으로도

이생에 남고 싶지 않다고

너를 벗고 나를 눕힌

이윽고 개 짖는 소리 잦아들고

술 취한 발 멀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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