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품들의 사계

눈사람 234

by 불량품들의 사계

눈사람


눈송이들은 경계가 없다

위, 아래 앞뒤를 지워버린다

아, 무자비한 처음,

빈 틈새가 흔들린다

문 앞을 떠났던 수많은 발자국들, 어느새 가까이 와 있다

해진 옷을 입고

나는 의자를 내준다

어깨에 털장갑을 올려주었다

눈송이들은 손을 잡는 대신

서로 겹쳐지고 겹쳐질 뿐

구르고 굴러 일어선다

문 앞마다

불어나는 눈사람

눈 위에 남겨진 내 모자와 장갑

옆으로 누워 홀로 웃는 눈썹

아무도 읽지 않은 긴 소설처럼

누구도 데려가지 않는 그는

하나의 표정으로 오래 산다

그는 천천히 녹아 사라져간다 산 자들처럼

그가 떠난 자리,

눈썹도 모자도 없다

눈송이들

어깨 사이를 건너고 있다

나는 손등에 떨어진 눈송이 하나

혀로 닦아낸다,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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