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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Sep 29. 2023

새싹은 나의 해방구 11

새싹은 나의 해방구 11

새싹은 나의 해방구


          

이사 오기 전 송파구 올림픽아파트 뒤편에서 주말농장 할 때다.

그때 주말농장 사람들은 내가 밭에 들어서면 “토마토는 언제 모종은 하는 게 좋아요?” 이것저것 세세하게 물었다.


솔직히 씨 뿌리는 시기나 거름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산이랑 원두막에 쉬면서 순서를 정했다. 풀을 먼저 뽑을까, 고랑을 가로 팔까, 세로로 팔까 정한다. 그런 다음 차례대로 해서 순식간에 끝내버린다.

특히 주말농장 대장님이 나를 텃밭 초보자들에게 부지런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주말농장에는 잡풀이 솟아올라 쑥대밭 같은 텃밭이 군데군데 있었다. 그 모습이 보기 싫었다. 나는 집안 정리는 못 하지만 남의눈을 의식한 편이라 밭에 풀도 시원하게 뽑아버렸다.

시도 때도 없이 상추에 물 주면서 밭에서 파고 살았다. 날마다 밭에서 얼굴이 보이니까 다들 나를 고수로 생각한 것 같았다.

    

주말농장 주인을 나는 대장님이라고 불렀다. 대장님은 다음 해 봄부터 나에게 텃밭 사용료를 주지 말라고 하였다. 대신 이 말이 새어나가면 돈을 받는 것으로 하였다.

나는 이런 밀약이 있기 전부터 대장님과 원두막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고 담배도 사다 드렸다. 대장님은 품질이 좋은 씨앗도 나에게 주시고 직접 농사지은 속이 노란 수박과 오이도 따서 주셨다.

텃밭 사람들은 간혹 대장님에게 코맹맹이 소리 내가면서 자기 밭 일을 심하게 시켰다. 나는 코맹맹이 소리는 간지러워서 하지 못했다. 나의 타고난 인복으로 텃밭을 공짜로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복도 부지런함에서 온 것 같았다.   

  

나의 텃밭 사랑은 주변에 소문이 났다. 상추 당근 쑥갓 열무들 싹이 올라오면 비 오는 날에도 우산 쓰고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곤 했다. 이런 나를 보고 사차원인 연분 동생이 나에게 말했다.

 “언니 비 오는 데 거기서 뭐 해? 언니 돈 거 아니야? ”

 “경이롭지?”

 “언니가 더 경이롭다.”

놀리듯 손가락을 내 머리에 대고 동그라미를 그렸다.

“4차원인 네가 나를 그렇게 생각 하면 나는 5차원이냐?”

“가락시장에 팔일 있어?”

“이것들도 즈그들 이뻐 허는 줄 다 알아. 그리고 발소리 듣고 자라는 거야. 비 온다고 밥 안 먹냐?”

“대단하오.”

 “내 새끼들 있다가 또 오게.”

 전문 농사 기술은 부족했지만 나는 새벽부터 밭에 나가 살다시피 했다.  

    

그 당시 이가 흔들려 치과에 갔을 때이다. 의사 선생님이 내게 하루 일과를 말해 보라고 했다.

“새벽 서너 시에 자고 아침에 눈 떠 밭에 들렸다가 산에 가고요, 산에서 내려올 때 다시 밭에 들리고요, 강아지 집에 데려다 놓고 일터로 가요.”

내 말을 듣고 있던 의사 선생님은 너무 피곤해서 이가 흔들린다고 했다.

나는 이가 흔들리도록 흔들림 없는 정신으로  그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텃밭은 오래 가게를 운영하던 내게 출구 같은 곳이었다. 밤에 BAR를 찾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거나, 이해가 안 되는 짓거리를 하는 고객들한테 열받아 참다 보면, 어딘가에 내 억압된 감정을 분출시킬 수 있는 해방구가 필요했다. 무의식적으로 텃밭에 매달렸던 이유이다. 얼었던 땅속에 싹이 혀를 내밀 때의 그 경이로움에 나는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봄만 되면 땅을 뒤집고 다녔다. 한마디로 삽질했다. 나는 농사가 아니라 그냥 ‘새싹이 움트는 텃밭’을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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