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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Oct 09. 2023

달래를 훔쳤다 16

달래를 훔쳤다 16

달래를 훔쳤다 



               

성길씨는 산에 가면 몇 시간을 걷다 오곤 했다. 며칠 전 내 친구가 성길씨를 보고 “살이 너무 빠졌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성길 씨는 남한산성 반 바퀴만 돌고 일찍 내려왔다.

나는 성길씨가 산에 간 걸 확인한 후 그가 내려오기 전 달래를 빨리 캐야 했다.

    

얼마 전 아끼는 동생들이 살랑거리는 치마를 입고 놀러 왔었다. 그녀들은 밭에서 자란 달래를 처음 봤다. 나는 마당이 조용해 수저를 놓다가 밖으로 나갔다. 말릴 시간도 없이 뒷 뜰에서 자라고 있는 달래를 초토화시켜 버렸다. "어쩌까 아주 깨를 홀딱 벳게 부렀네"  텃밭에 있는 래는 캐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새들도 날아갔다. 바람도 멈췄다. 마당은 고요했다.

잠시 후 성길씨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여어기요” 그의 목소리에 동생들은 수저를 놓았다. 다들 쫄았다. 나는 그에게 미안해 차마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창문을 빼꼼히 열고 성길씨를 내다봤다. 그는 여인네들이 마당에서 아무리 살랑거려도 땅이 파헤쳐 있는 꼴을 보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아프로 다알래에는 소오온도 대에지 마아아요.” 성길씨는 화가 나면 말을 더듬는다. 그때 화낸 모습이 머릿속에 박혀 달래 만큼은 달라고 못 한다.  

   

오늘 고향 후배와 이름이 같은 석촌동에 사는 연주와 애경이 동생이 집에 온다고 했다. 집에 자주 놀러 온 지인들에게 냉이는 흔한 게 돼버렸다. 송파구에서 이곳까지 온다는데 동생들에 달래를 뽑아주고 싶었다.  

지금 시간이 정오다. 아로니아 옆 달래는 싱싱하다 못해 기운이 뻗쳤다. 성길 씨 혼자 저 많은 걸 다 해결할 수 없다. 정말 많고 빽빽하다. 오래 두면 대가 생겨 뻣뻣해지고 맛도 없다. 뿌리도 마찬가지. 곧 꽃이 필 것이다.


달래 때문에 좁쌀만 한 내 양심 엿 바꿔 먹었다고 치자고. 결론 냈다.

산으로 난 길을 내다보며 호미로 바람처럼 다섯 움큼 캤다. 그가 몰래 달래를 캐고 있는 나를 보면 무슨 개망신이냐 싶어 번개같이 캐 버렸다. 달래를 파낸 자리는 물기가 촉촉해 흙이 진한 갈색으로 보인다. 파지 않은 흙은 연한 갈색이어서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성길 씨가 올 때까지 흙이 마르면 감쪽같을 것이다.

달래 사건도 며칠 지나 그도 성질이 죽어 말하면 캐라고 하겠지만, 나도 한번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말을 하고 캐야 했나? 약간 망설여졌지만 그렇다고 달래하고 양심을 바꿨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바로 옆에 서 있는 아로니아 “너만 말 안 해 불먼 아무도 모른다 잉. 알겄지야? 아차차 바람도 지나가 불구만!  

    

언제부터 내가 양심을 위해 목숨을 걸고 살았다고? 차돌에 바람 들면 백 리를 간다고 했다. 내 집 찾아온 내 사람들한테 밭에서 달래 한 주먹 못 캐 줘야? 그것이 양심이냐?

‘근디 내 밭이 아니라 성길 씨 밭이지!’ 왜 이 순간 돈도 없고 차도 없고 각시도 없고 더더구나 애인도 없는 성길 씨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냐.


“애경아! 연주야! 느그들 밥상에 올라간 달래는 내 양심이랑 바꾼 거다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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