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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Dec 02. 2023

불량품들의 사계

밥솥 38

밥솥  



                                              

오래된 밥솥이 싱크대 위에 앙증맞게 앉아있다.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밥솥을 보면 한 마디씩 한다.

“장정 한 사람 밥솥이네.”

“아니여, 삼 사인용이여.”

“이렇게 작은 밭 솥도 있냐?”     

십여 년 전 친구가 사 준 밥솥이다. 근데 이 밥솥이 뚜껑을 잡아주는 스프링이 고장 났다. 그래서 뚜껑이 들떠있다. 밥이 끓을 때 그곳으로 김이 샌다. 강아지 산이랑 쉬던 남한산성 북문 근처에서 주워온 돌을 깨끗이 씻어 뚜껑 위에 올려놨다. 아마 산이가 있었다면 앞발로 누르고 있지 않았을까 쓸 잘 떼기 없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제발 갖다 버려라. 내가 사주께.”

“됐어야. 아직 쓸 수 있어.”

너무 아끼며 살고 있나 싶어 새것 살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아껴도 적당히 아껴야지 지나치면 추접스럽게 보일 수 있다.      

사진도 잘 찍고 똘똘한 성실동생 집에 놀러 왔었다. 성실이는 저녁밥 하느라 열일하는 밥솥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녀는 돌멩이를 내려놓았다. ‘샤샤으으샤샤샤’ 김 빠지는 소리가 요란해지자 돌을 다시 올려놨다. 성실이는 집에 가더니 대형 밥솥을 택배로 보냈다.

“언니 비싼 거 아니지만 나중에 좋은 거 사주께.”

“아따 이러다가 집도 사 주겄네.”

“까짓거 뭐 사 주지.”  

   

나는 고장 난 밥솥과 정이 많이 들었다, 섭섭했지만 며칠을 고민하다 출입문 안쪽 신발장 옆에 밥솥을 내놨다. 미련이 남아 차마 밖에다 내놓지 못했다. 내 성격이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다.

밖에 나갈 때마다 밥솥이 눈에 들어왔다. 고쳐 쓸까 생각하고 서비스 센터를 알아봤다.      

“그래 강산이 한 바쿠 도는 동안 나를 먹여 살렸는디 너를 이대로 보낼 수 없재.”

밥솥 사 준 사람 생각도 나고 해서 다시 들고 와 깨끗이 닦았다. 밭 솥이 깔끔하니 훤해졌다. 아직 충분히 쓸 만했다.

“미안허다. 너를 냅뿔라고 해서, 김 좀 새면 어때.”

귀가 얇아 친구들이 버리려고 했다고 밖에 내다 놓은 것을 후회했다.


후회를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놀러 왔다가 밭 솥을 보고 간 경주샘이 나를 집으로 오라고 했다,

돌로 눌러 놓은 밥솥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고 밥솥하고 커피포트를 사놨다. 졸지에 나는 밥솥이 세 개나 돼버렸다.   

   

나는 고장이 난 것을 고쳐 쓰다 만신창이가 됐을 때 그때 물건을 사러 간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답답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나랑 같이 산 세월을 생각하면 쉽게 버릴 수가 없다.

아마 나는 사람 사귀는 것도 그런 것 같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나무이건 동물이건 함께한 시간이 나라는 자체였다는 것에 내 생각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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