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뭐여? 빙하고 자빠졌네’ 칸막이에 끼어있는 것은 ‘지금 우리는 사랑에 서툴지만’ 김소엽 시집이었다. 누구일까! 한 치도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신문만 갖고 오고 시집은 그대로 칸막이에 꽂아 놨다.
새벽에 베개에 코 박고 엎어져 있다가 신문을 가지러 나갔다. 주인집 고양이 까불이가 내 종아리에 머리를 비빈다. 방에 들어오고 싶다고 애교를 부리는 것이다. 호두나무잎들 물기가 싹 빠졌다. 바람은 선선하다. 출입구 앞에 새벽마다 던져져 있던 신문이 안 보였다.
이사 오자마자 신문보급소에 신문신청을 했었다.
“오토바이 기름값도 안 나와 배달할 수 없어요.”
몇 군데 더 물어봤는데 똑같은 대답이었다.
“몇 달 치 공짜로 안 넣어줘도 된께 배달만 해주세요.”
간절한 목소리로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었다. 막판 한 군데서 넣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신문 안 들어왔다고 전화해 갖다 주라고 할 처지가 아니다. 어젯밤부터 새벽까지 풀치가 미친놈처럼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풀치가 가져갔다고 단정 지었지만, 혹시 신문이 안 들어온 건가? 어깨를 문 쪽으로 트는 순간 까불이가 쌩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나비야!” 부르는데 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평상하고 출입문 사이에 칸막이를 설치해 놓았는데 그 칸막이 사이에 신문이 끼어 있었다. 신문을 끄집어내는데 그 속에 뭐가 보였다. 잡아당겨 펼쳤다. 시집이었다. 시집을 그대로 두고 들어왔다. 풀치가 좋아하는 꼴을 볼 수가 없었다. 풀치에게 털끝만큼도 빈틈을 주고 싶지 않았다.
밤 아홉 시가 됐을까. 풀치 인기척이 나자 불을 껐다. 민방위 훈련이라도 받는 사람처럼 민첩하고 절도 있게 고개를 숙여 블라인드를 내렸다. 다시 블라인드를 살짝 걷었다. 풀치는 마당 가 너럭바위에 양반다리하고 앉아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고 있었다. ‘또 또 또’ 나는 노랫소리에 귀를 막았다. 오늘은 더 크게 들렸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노래를 지겹도록 들어 귀가 다 아프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풀치는 누웠다가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소주로 세끼 배를 채우면서 힘이 어디서 나는지. 내 이름을 부르면서 옆차기 앞차기 너럭바위차기 온갖 생쇼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안 나타나자 풀치 특기인 처마 밑에 매달아 놓은 종을 쳤다. 나는 죽은 듯 앉아 끝까지 안 나갔다.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다 지친 풀치는 종 안에 줄을 풀어 땅바닥에 던져놓고 12시쯤 갔다. 나는 줄을 주워 더 단단히 묶어 종을 칸막이로 옮겨 달았다. 그래 너는 매듭을 풀고 나는 묶고. 매사에 서툰 풀치는 그렇게라도 해야 울렁거림을 가라앉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풀치가 사라지자 비몽사몽 잠이 들었었다. 시간이 얼마 지났을까 어렴풋이 가래 끓는 소리가 들렸다. 풀치 노랫소리였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새벽 6시다. 도저히 못 참겠다. ‘야! 풀치 너 오늘 가만두지 않겄어’ 악을 쓰면서 밖으로 나갔다. 누가 보면 멧돼지라도 때려뉠 기세였다. 평상에 앉아 있는 그를 향해 직진했다. 풀치 얼굴도 안 보고 블루투스를 집어 들어 휙 던졌다. 마당으로 들어오는 입구는 시멘트다. 나중에 사 주려면 돈 들어가지, 남의 물건을 부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당 입구 옆 망초와 강아지풀 속으로 떨어졌다. 핸드폰 노랫소리가 작다고 생각한 그는 블루투스를 샀다. 밤에 핸드폰 노랫소리는 지금도 야외 스피커처럼 들리는데...... 앞으로 풀치 때문에 새도 강아지도 풀도 개미도 잠을 설치게 생겼다.
“너랑 진짜 종 쳤다. 이뻐 헐 수가 없다.”
풀치는 기어가서 블루투스를 집어 들고 상태를 확인했다. 사태 파악을 하고 비틀비틀 길 건너로 사라졌다.
풀치는 시집을 내 눈에 띄기 위해 아침마다 들어오는 신문에 올려놨다. 시집은 십일 동안 바람을 맞았다. 결국은 시집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그에 의해 자진 철수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