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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Dec 05. 2023

불량품들의 사계

제발 종 치자 39

 제발 종 치자


           


‘이것이 뭐여? 빙하고 자빠졌네’ 칸막이에 끼어있는 것은 ‘지금 우리는 사랑에 서툴지만’ 김소엽 시집이었다. 누구일까! 한 치도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신문만 갖고 오고 시집은 그대로 칸막이에 꽂아 놨다.      


새벽에 베개에 코 박고 엎어져 있다가 신문을 가지러 나갔다. 주인집 고양이 까불이가 내 종아리에 머리를 비빈다. 방에 들어오고 싶다고 애교를 부리는 것이다. 호두나무잎들 물기가 싹 빠졌다. 바람은 선선하다. 출입구 앞에 새벽마다 던져져 있던 신문이 안 보였다.


이사 오자마자 신문보급소에 신문신청을 했었다.

“오토바이 기름값도 안 나와 배달할 수 없어요.”

몇 군데 더 물어봤는데 똑같은 대답이었다.

“몇 달 치 공짜로 안 넣어줘도 된께 배달만 해주세요.”

간절한 목소리로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었다. 막판 한 군데서 넣어주기로 다.   

   

그래서 신문 안 들어왔다고 전화해 갖다 주라고 할 처지가 아니다. 어젯밤부터 새벽까지 풀치가 미친놈처럼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풀치가 가져갔다고 단정 지었지만, 혹시 신문이 안 들어온 건가? 어깨를 문 쪽으로 트는 순간  까불이가 쌩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나비야!” 부르는데 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평상하고 출입문 사이에 칸막이를 설치해 놓았는데 그 칸막이 사이에 신문이 끼어 있었다. 신문을 끄집어내는데 그 속에 뭐가 보였다. 잡아당겨 펼쳤다. 시집이었다. 시집을 그대로 두고 들어왔다. 풀치가 좋아하는 꼴을 볼 수가 없었다. 풀치에게 털끝만큼도 빈틈을 주고 싶지 않았다.     


 아홉 시가 됐을까. 풀치 인기척이 나자 불을 껐다. 민방위 훈련이라도 받는 사람처럼 민첩하고 절도 있게 고개를 숙여 블라인드를 내렸다. 다시 블라인드를 살짝 걷었다. 풀치는 마당 가 너럭바위에 양반다리하고 앉아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고 있었다. ‘또 또 또’ 나는 노랫소리에 귀를 막았다. 오늘은 더 크게 들렸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노래를 지겹도록 들어 귀가 다 아프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풀치는 누웠다가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소주로 세끼 배를 채우면서 힘이 어디서 나는지. 내 이름을 부르면서 옆차기 앞차기 너럭바위차기 온갖 생쇼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안 나타나자 풀치 특기인 처마 밑에 매달아 놓은 종을 쳤다. 나는 죽은 듯 앉아 끝까지 안 나갔다.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다 지친 풀치는 종 안에 줄을 풀어 땅바닥에 던져놓고 12시쯤 갔다. 나는 줄을 주워 더 단단히 묶어 종을 칸막이로 옮겨 달았다. 그래 너는 매듭을 풀고 나는 묶고. 매사에 서툰 풀치는 그렇게라도 해야 울렁거림을 가라앉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풀치가 사라지자 비몽사몽 잠이 들었었다. 시간이 얼마 지났을까 어렴풋이 가래 끓는 소리가 들렸다. 풀치 노랫소리였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새벽 6시다. 도저히 못 참겠다. ‘야! 풀치 너 오늘 가만두지 않겄어’ 악을 쓰면서 밖으로 나갔다. 누가 보면 멧돼지라도 때려뉠 기세였다. 평상에 앉아 있는 그를 향해 직진했다.  풀치 얼굴도 안 보고 블루투스를 집어 들어 휙 던졌다. 마당으로 들어오는 입구는 시멘트다. 나중에 사 주려면 돈 들어가지, 남의 물건을 부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당 입구 옆 망초와 강아지풀 속으로 떨어졌다. 핸드폰 노랫소리가 작다고 생각한 그는 블루투스를 샀다. 밤에 핸드폰 노랫소리는 지금도 야외 스피커처럼 들리는데...... 앞으로 풀치 때문에 새도 강아지도 풀도 개미도 잠을 설치게 생겼다.


“너랑 진짜 종 쳤다. 이뻐 헐 수가 없다.”


풀치는 기어가서 블루투스를 집어 들고 상태를 확인했다.  사태 파악을 하고 비틀비틀 길 건너로 사라졌다.     

 

풀치는 시집을 내 눈에 띄기 위해 아침마다 들어오는 신문에 올려놨다. 시집은 십일 동안 바람을 맞았다. 결국은 시집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그에 의해 자진 철수 되었다.


"그래,  차라리 내가 시집을 냈으면 냈지..."

사랑은 잡거나 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풀치는 여전히 모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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