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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Dec 12. 2023

불량품들의 사계

연탄 트럭과 베고니아 41

연탄 트럭과 베고니아

    


“언제 오는지 전화해 봤소?”

“올 때 되면 오겠죠. 비도 오고...”

성길씨는 한마디로 비가 와서 연탄이 못 오는 것이니까 참고 기다린다는 말이다. 그는 성격이 엄청 급해 일이 생기면 나에게 전화를 마구 해대 전화통에 불이 난다. 그런데 저리 여유를 부리는 것은 ‘싸나이 계절’인 가을이 오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것일까. 아니면 그도 이제는 성질을 죽이겠다는 뜻인가.      


며칠 전 성길씨는 연탄 들인다고 야단법석을 떨었었다.

“그리 바쁘면 생쌀 먹고 뜨거운 물 마시고 줄넘기 하시든가요

“......”

 찬바람 불라면 아직 멀었구만.”

“여기는 나무이파리가 떨어질라고 하면 뭐든지 다 식어요. 뭘 알고 말을 해야지.

“뭐, 식는다고! 시다 시여. 시는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여. ”

나는 그를 바라보면서 웃었다

“늦게 시키면 연탄이 값이 오르고 엄마가 계셔 연탄을 때야 돼요”

“알았슨께 거기까지 허세요.”

그는 내가 말 좀 맞추어 보려면 꼭 저렇게 분위기를 깬다.

     

올봄 내가 이사 와서 일주일 지났을까. 연자방아 입구에 내 차를 주차했었다. 이른 새벽 앞집 아줌마한테 전화가 왔었다. 차를 빼달라고 했다. 잠이 덜 깬 채 부시시한 꼴로 차를 빼고 집으로 왔다. 이 동네에 집들은 잠도 없나.

“자기 마당도 아니면서 차를 빼라 마라 헌다요, 해 뜰라먼 아직도 멀었구만.”

이 새벽에 수돗가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주인 성길씨에게 말했었다.

“ 집이 이뻐서요.”

성길씨는 숨도 쉬지 않고 대답을 했었다. 폐가 같은 집에 내가 페인트를 칠해 옷을 예쁘게 입혔다는 표현을 저렇게 한 것이다. '질투 나서 그러겠죠.'라고 할 수 있는데. 성길씨도 마을 사람들에 집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때 나는 성길씨 말솜씨에 감탄했었다. 생각해 보니 그의 말속에는 유머가 기본 스텝으로 깔려있다.

성길씨 말에 따르면 앞집 아줌마가 동네 나팔수라고 했다. 마을회관 마이크는 게임도 안된다고 했었다. 그 뒤로 앞집 아줌마랑 말을 거의 안 했다.   

   

요즈음 연탄 찾는 집이 없어 연탄공장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나는 성길 씨와 그 그제 내 집 앞 평상을 창가로 세우고 화분을 치웠다. 그의 연탄창고가 내 집 바로 옆에 있다. 대형트럭이 연탄창고 앞까지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했다. 나도 이사 올 때 연탄보일러였다. 자다가 일어나야 하고 술 마시다가 집으로 가야 하고 때맞춰 연탄 갈기가 하버드대 간 것보다 힘들었었다. 당장 가스보일러로 바꾸었다. 그나저나 그의 보일러실 앞에 빗자루는 쓸데없이 세워져 있고, 고양이들은 수돗가 물 조리개에서 물을 마신 후 어정거리고 있다.


그제 온다던 연탄은, 어제 온다고 일방적으로 약속을 바꾸고도 오늘 아침까지 전화 한 통 없었다. 그런데도 성길 씨는 연탄 차를 재촉하지 않았다. 나는 성길씨 연탄이 언제 오는지 궁금한 이유가 있었다. 세워놓은 평상이 창을 가려 마루가 어두운 것도 있었지만. 빗속에서 배추 모종이 몸살을 끝내고 날개 돋듯 푸릇푸릇 자라는 겉잎을 보고 싶었고, 신발에 밟혀 눌러져 있던 질경이가 서서히 일어나는 것을 눈에 담고 싶었다.    

  

건들장마가 문턱을 밟고 지나갔다. 잠깐 비가 멈추자 식전 댓바람에 트럭이 들이닥쳤다.

시끌벅적해서 창밖을 내다봤다. 트럭이 후진해서 마당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아아아, 큰일 나겄네”

밭 둘레에 있는 베고니아가 위험해 보였다.

“나오지 말고 계세요.”

기사 아저씨를 따라온 키가 작고 똥똥하게 생긴 아저씨가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기가 눌려 나는 문틈에 끼여 멈칫했다. 그는 이미 치워 놓은 화분을 문 앞쪽으로 더 밀어 놨다. 문을 확 열고 나갈 수가 없었다. 튀어나온 배를 잡아당기고 숨을 멈춘 채 겨우 빠져나갔다. 그사이 트럭이 마당까지 내려와 버렸다. 숨을 들이마시고 빠져나가 얼른 트럭 앞머리로 돌아갔다. 베고니아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대놓고 성을 냈다.

 “저쪽 공간이 남았는디, 굳이 이쪽으로 와서 꽃을 다 죽여 불고.”

 “아주머니 처음 뵙겠습니다.”

기사 양반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 아줌마 아니거든.’

속으로 일단 삼켰다.

“처음 봤으면 더 조심해야 지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성길씨가 말을 던졌다.

“꽃 그까짓 것. ”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휘리릭 돌아보았다. 멈칫하던 성길씨는 나를 위로한답시고 또 한 마디 던졌다.

“금방 살아나요. 그리고 볼 만큼 봤잖아요.

성길씨는 내 뿔다구를 부채질하고 있었다. 맘 같아서는 성길씨 손등을 쳐버리고 싶었지만, 대놓고 성질을 내봤자 내가 옆차기를 할 것이여 뭐를 할 것이여. 하지만 나의 소심한 입을 대신해 누구라도 한마디 해주길 바랐다.

“성길 씨도 살 만큼 살았응께...”  

   

나는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왔다. 트럭 나갈 때 만 기다리며 코를 씩씩 불고 있었다. 신문을 뒤적거리는 동안 그들은 연탄 천오백 장을 창고로 다 날랐다.

그런데 성길 씨가 연탄 배달 온 아저씨들 주려고 차를 받쳐내 온 접시가 어디서 많이 본 거였다. 창문 가까이 가서 보니까 내가 찾던 접시였다. 내가 나가려고 잠바를 걸치는 사이에 트럭이 마당을 벗어났다. 그 사이 성길 씨가 접시를 집에 가져다 놓고 왔다. 나는 쪼잔하지만 접시 돌려달라는 말을 꺼내려고 타이밍을 찾고 있었다. 성길씨는 어정거리고 있는 나를 보고 밭 가까이 오라고 했다.

“배추이파리에 구멍이 나고 벌레가 갉아먹은 거 보이죠?”

“나도 물어볼라고 했어요.”

“맨드라미와 봉숭아 잎에 붙어있던 벌레들이 배추이파리를 먹는 거예요. 말라비틀어진 이파리 먹다가 싱싱한 배추이파리가 얼마나 맛있겠어요. 그래서 내가 꽃 다 뽑으라고 했잖아요.”

성길 씨는 밭 가장자리에 서 있는 봉숭아와 맨드라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깐죽거리는 거 같아 뒤통수를 확 밀어 코를 박고 바둥거리는 것을 보고 싶었지만 여기까지. 그는 꽃 죽였다고 너무 자기를 원망하지 마라. 그 뜻이었다. 그래도

‘내가 뭐 때문에 기가 죽으까. 꽃을 죽인 사람은 따로 있는디.’

나는 배추를 살려야 해서 꽃을 즉시 뽑았다. 뽑은 꽃을 들고 옮겨 심을 곳을 찾아다녔다.

“그냥 갖다 버려요. 꽃이 밥을 줘요? 술을 줘요?”

“줍디다. 술 허고 밥이 못 채우는 것들을 채워 준다께요.”

"허허......"

그는 뭔 개 코 푸는 소리여 표정이었다.

“꽃이 곁에 있으먼 눈이 꽉 찹디다.”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성길 씨는 나를 못 말리겠다는 듯 손을 들어 꽃을 마당 가로 던져버리라는 시늉을 했다. 성길씨가 그러든 말든 집으로 들오는 입구에 호미로 땅을 파서 구석구석 맨드라미를 심었다.


성길 씨한테 접시 달라는 말도 못 하고, 베고니아 꽃 죽여 버린 것도 말 못 하고 성질낸 것 본전도 못 찾고. 성길 씨는 의기양양 술친구들과 막걸리 마시러 르르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또 새됐다. 새는 찍소리라도 내지만......   

  

나는 가만히 비닐하우스 안을 들여다보았다. 연탄이 꽉 차 있다. 연탄 꼭대기에 고양이 까불이가 누워있다. 제 한 몸 불태워 겨울 한파를 녹여버릴 연탄을 보고 말했다

"까불아 좋냐! 나도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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