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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품들의 사계

납작한 고양이 44

by 불량품들의 사계

납작한 고양이

집에서 나가는 길에 창자가 터져있는 고양이를 보았다.

샘재 사거리에서 우리 집 들어오는 길에 가로수가 서 있다. 벚나무와 살구나무 감나무 가로수 길이다. 봄에는 벚꽃으로 만발하고 여름에는 살구들이 길바닥에 나 뒹굴고 있다. 매연으로 찌든 살구는 잼을 만들 수 없어 아깝다. 길에 떨어진 감은 까치와 까마귀들이 진을 친다. “그래 느그들이라도 많이 먹어라.”

이른 시간 시내를 나가는데 까치들이 도로에 내려앉아 무엇을 쪼고 있었다. 차 소리가 나자 까치들이 날아올랐다. 눈이 저절로 갔다. 감나무 밑이라 감을 쪼나 싶었다. 죽은 고양이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내에서 친구들과 만나 밥을 먹는 중에도 그 고양이가 생각났다.

길고양이들은 어디서 죽는지도 모른다. 마당에 사료를 먹으러 왔었던 고양이들을 하루아침에 볼 수 없고, 차에 치인 길은 방치되어 수백 번 바퀴에 짓눌러지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저녁에 집에 들어올 때 죽은 고양이가 있던 자리쯤 감나무 밑에서 운전대를 살짝 돌렸다. 그 자리에 납작한 검은 물체가 보였다. 몇 미터 전부터 보지 않으려 했지만, 벌써 눈이 그쪽으로 갔다. 하지만 차에서 내려 길 밖으로 고양이를 옮길 수가 없었다. 창자가 터져 죽은 고양이를 도저히 묻어 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고양이를 키운 적은 없다. 어렸을 때 밤길 혼자 걸을 때 고양이가 아기처럼 울면 무서웠다. 나는 강아지를 더 좋아해서 고양이가 들어 올 자리가 없었다. 산 밑 이곳으로 이사 와서 고양이 울음소리를 천장에서 들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런데 밤마다 들리는 울음소리가 오히려 심심하지 않게 해 주었다. 마당에서 주인집 고양이들이랑 지내다 보니,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애교 많고 붙임성이 좋았다. 무조건 동물은 좋아했지만, 이렇게 고양이들을 이뻐할 줄 난들 알았겠나. 이제는 길고양이들에게 눈이 먼저 간다. 아예 사료도 샀다.

나 어렸을 때 막내 이모가 고양이가 관절에 좋다고 해 고아 먹었다. 이상하게도 고양이를 먹는 이모가 징그러웠다.

한참 전 읽은 책에 프랑스에서도 고양이가 민간의약의 주성분이었다고 한다. 넘어져서 다치면 빨리 나으려고 수고양이 꼬리에서 피를 빨아먹었다고 한다. 민간요법 사례는 넘쳤다. 고양이 따뜻한 골을 먹으면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고도 한다. 새집을 지으면 집에서 오랫동안 탈 없이 지내게 해달라고 고양이를 벽 속에 넣고 발라 버렸다고 한다. 고양이를 죽여야 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유럽 전역에서 자행된 근세초 고양이 학대는 대중적인 오락이었다. 왜 하필 고양이이였을까. 사람들에 해를 끼치지 않는데 말이다.

물론, 고양이를 죽이는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양이를 잘 돌보는 사람은 예쁜 아내를 얻고, 죽은 고양이를 잘 묻어주면 병든 사과나무에서 빨간사과가 열리 수 있다고도 했다. 이런 사례는 드물었다. 지금도 사람들은 고양이를 돌로 쫓고, 화살을 쏘고, 약물로 몰살시키고, 왜 유독 고양이가 이런 수난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동물 유모차가 애들 유모차보다 더 많이 팔렸다니... 기뻐해야 하나! 인구는 줄어드는데. 고양이나 개들에게 철책에서 총 들고 보초 서라고 군대 가라 할 수도 없고, 참 아이러니하다.


죽은 고양이는 다음 날 그다음 날 차츰 창자도 머리도... 점점 납작해져 갔다. 감나무에서 진을 치던 까치가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장이나 살점이라고는 한 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털목도리가 길바닥에 펼쳐져 있는 거처럼 보였다. 형체가 없어져 다가가서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아스팔트에 털 무늬가 박혀 있었다. 결국은 길이 길을 둘러메고 산속으로 사라졌다.


이제는 속도마저 동물들을 죽인다. 어둠 속에서 길이 달린다. 멈출 수 없는 저 속도를 가로지르는 고양이들에게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길고양이들을 위해 굴러다니는 그릇에 사료를 채워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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