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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Dec 21. 2023

불량품들의 사계

호두 따는 날 43

호두 따는 날



   

풀치가 아슬아슬하다. 술에 취해 호두나무에 올라가서 장대를 휘두르고 있다.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돌에 눌러진 장대는 마당 입구에 길게 누워있다. 수돗가에서 아침부터 성길씨와 풀치는 소주를 나누어 마시고 있다. 안주는 찬물과 손가락과 마늘종이었다. 마늘종을 보는 순간 우리 아부지가 생각났다. 아부지는 안주로 마늘종을 좋아하셨다. 그러나 아부지는 술을 좋아해도 아침부터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나서 마셨다. 저 둘에게 두 손 들었다. 그 꼴이 보기 싫어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마당이 시끄러워 내다봤다. 풀치가 연자방아 아래 호두나무에 사다리를 대고 있다. 옆에 있던 성길씨는 사다리를 잡았다. 성길씨가 풀치에게 장대를 들어 올려 줬다. 풀치는 호두를 겨냥해 장대를 휘둘렀다. 그렇지만 호두는 꼼짝 않고 이파리만 마당에 떨어졌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성길씨는 풀치를 갑갑해하고 있었다.


“거기 말고 그여어여어프로.”

성길씨가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알았으니까 가만히 좀 있어 봐요.”

풀치는 신경질을 냈다.

“그으쪽 마알고 오르른쪽으로 자앙대를 때려어야지.”

성질 급한 성길씨는 말을 더듬거렸다. 그는 자기가 장대를 휘두르고 싶어 했다.

“혀엉이 따던가.”

풀치는 더듬거리며 나무에서 내려왔다. 성길씨라고 잘할 턱이 있나. 같이 소주를 마셨는데. 그는 내가 보고 있으니까 안 올라갈 수 없었다. 풀치보다 세다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려고 장대를 나무에 걸쳐놓고 올라갔다. 성길씨도 헛손질 몇 번 했다. 풀치는 성길씨에 나무 위로 더 올라가라고 재촉했다.

혀엉, 올라가서 가지 끝에 것 따라고."

그는 이미 너무 높이 올라가 몸 받칠 곳과 다리를 올려놓을 굵은 가지가 없었다. 그대로 장대를 휘두르다가 그는 필시 땅으로 떨어지게 생겼다. 아, 그는 더 올라갔다.

"혀엉, 거기서 휘둘러봐.”

“기이다려어.”

그는 한 손으로 가지를 겨우 잡고 장대로 호두를 조준했다. 그러나 나무 위로 너무 올라가 장대 중간 아래만큼 잡아야 장대가 가지 끝에 매달려있는 호두에 딱 닿았다. 호두 한 개에 이파리 수십 장을 추풍낙엽처럼 떨어뜨렸다. 호두는 장대를 마구 젓는다고 대추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장대로 일일이 맞혀야 딸 수 있었다. 호두나무는 뒤뜰 것까지 합해서 세 그루다. 저런 속도라면 내일 아침에야 다 따려나. 는 반 포기 상태로 엉거주춤  서 있었다. 풀치는 계속 재촉을 했다.

“뭐 해? 따지 않고,”

“야 이 새에끼야, 니이가 하아드은가.”

나는 웃음이 나왔는데 참고 풀치에게 조용히 하라고 했다. 저러다가 떨어지면 어쩔 것이냐고. 취한 풀치는 다시 말했다.

“혀엉, 힘 좀 써봐.”

“니이가 따 새에끼야.”

성길씨는 장대를 바닥으로 던졌다.  

“아저씨, 내려와서 담배 한 대 피고 따세요.”

나는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에게 결정을 해줬다. 일요일이라 노인학교 안 간 성길씨 노모도 수돗가 의자에 앉아 그를 걱정했다. 는 발발 떨면서 내려왔다. 내가 내려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을까.

    

나는 호두 따는 것을 처음 봤다. 신기해서 호두를 따고 싶었다. 그렇지만 장대가 워낙 길어 조준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풀치는 담배를 태우다가 나에게 호두를 따보라고 했다. 내 맘을 엿본 거 같았다. 장대를 잡다가 급포기했다. 내가 허둥지둥하는 것을 보고 둘이 킬킬 웃으며 좋아했다.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길씨가 말했다.  그는 꼭 저런 식으로 자세를 잡으려고 다.  

 

어렸을 적, 고향 뒷산의 증심사와 읍사무소 벚나무는 내가 꽉 잡고 있었다. 벚꽃이 피면 꺾어 들고 다니고, 버찌가 열리면 따 먹었었다.

버찌가 익을 때가 내 생일이다. 생일이 일요일에 걸려 아침에 벚나무 위를 올라갔다. 미성 향란 현미 나는 사총사였다. 버찌를 따서 친구들에 던져주고 있었다. 갑자기 읍사무소 소사가 뛰쳐나와 당장 내려오라고 소리쳤다. 당황스러워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소사는 그사이 호스를 가져와 나에게 물을 뿌렸다. 점점 나무꼭대기로 올라갔다. 친구들은 도망가지 않고 손바닥을 치며 더 올라가라고 응원했다. 나는 응원에 답을 했다. 가지도 나도 바람에 흔들렸다. 소사는 내가 나무에서 떨어지면 큰일 나겠다 싶었는지 호스를 거둬들였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나하고 대치했다.

애들이 집에 가자고 조르기도 했고 나도 바람 불 때마다 무서워 나무에서 내려왔다. 버찌를 먹어 입술과 혀가 까만 우리는 벚나무 아래서 십 분 정도 손들고 서 있다 집으로 왔다. 엄마는 미역국을 끓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등짝을 맞을까 걱정했었는데 내 입술을 보고 웃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 소사는 버찌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나무에서 떨어질까 걱정돼서 나무엘 못 올라가게 했던 것 같다. 그때 나의 나무 타기는 지금 고양이 까불이 실력과 비교해도 결코 뒤 처지지 않았다. 지금은 힘이 없어져 장대 휘두르는 것도 버겁다.  

   

잠시 벚나무 타던 생각을 하고 있는데 풀치가 나를 손등으로 어깨를 툭  쳤다.

“누님 뭐 하세요? 얼른 호두 주워요.”

풀치는 어느새 나무에 올라가 있었다. 이 가지 저 가지 옮겨 다니며 호두를 땄다. 그사이 술이 깼나. 장대가 춤을 췄다. 바람을 베는 처럼 잘도 휘둘렀다. 마당에 호두와 이파리가 척척 쌓였다.  날 술마시고 싸돌아다녀 동네에서 유령 취급받던 응어리를 저렇게 푸나. 내 집 지붕으로 굵은 우박 떨어지듯 호두가 마구 떨어졌다. 성길씨 노모도 바닥에 주저앉아 호두를 주웠다. 까불이도 왔다리 갔다리 하고 있었다. 우리집 식구들이 마당에 다 모였다.

나는 호두 주우라는 풀치 말이 반가웠다. 호두를 줍고 싶었는데, 주우면 달라는 것 같아 어정쩡 서 있었다. 그리고 성길씨가 주우라는 말도 안 하는데 덥석 줍기가 그랬다. 풀치는 나무에서 언제 내려왔는지 지붕에 올라갔다. 그동안 나는 풀치에게 술 취했다고 구박만 했다. 오늘 내가 말을 붙이니 좋아서 날아다녔다.  풀치는 호두를 손으로 싹싹 긁어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성길씨는 오늘 날로 먹고 있다.  

   

풀치는 지붕에서 내려와 내 집 문 앞에 호두를 발로 밀어 넣었다. 나보고 얼른 주워 집으로 갔다 놓으라고 했다. 추접스러운 짓거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호두를 주워 성길씨 플라스틱 박스에 집어넣었다. 당연히 좀 줄 거라고 생각했다. 는 나에게 호두 반쪽도 주지 않았다. '아. 저 짠돌이 염전 맞네' 할 수 없이 추접스러운 짓을 했다. 굵은  호두 다섯 개 잠바 주머니에 몰래 집어넣었다. 풀치는 빙긋 웃었다. 풀치는 성길씨가 나에게 호두를 주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풀치가 평상에서 술마시고 난리치며  욕을 했었다. 앞으로 풀치에게 세종대왕이 만드신 바른 말을 쓰기로 했다.  풀치는 성길씨 집 앞에 장대를 세웠다. 오늘 호두 따는 것은 그만 작파한다는 뜻 같았다. 그리고 손으로 술잔을 잡은 모양을 취하며 입안에 술을 터는 흉내를 냈다.  성길씨는 내 텃밭 배추에 가려진 호두까지 싹싹 찾아냈다.   


풀치는 수돗가에 앉아 소주 마시고, 그 옆에서 성길씨는 쪼그리고 앉아 초록색 호두 껍데기를 일일이 망치로 깨서 벗겨냈다. 그런 다음 수돗물로 박박 씻어 볕에 말렸다. 성길씨 손이 까맣게 물들었다. 호두 껍데기 물로 천에  염색도 한다.

푸른 하늘 밑에 뽀얀 호두알들이 단단해 보였다. 혹시 말려서 주려나 잠시 생각해 봤다.


다음날 풀치는 돗자리에 말리고 있는 가을빛 한 알을 집어 들고 마당으로 내려왔다. 평상에 앉아 돌로 깨서 서 있는 나에게 주었다. 풀치 손이 더러워 받아먹을까 고민하다 맨 정신이라 받아 먹었다. 정말 고소했다. 사다 먹은 거하고 비교할 수 없었다.


송파 나가면 밥 먹고 늦으면 자고 오는 점심이 동생이 있다. 손이 항공모함만 한 점심이에게 성길 씨에 섭섭한 마음을 말했다.

“와 짜다 짜, 염전이어야. 나무에서 딴 거니까 맛보라고 좀 줘도 되지 않냐?

“언니, 내가 주인 볼 때마다 말했잖아, 융통성 없게 생겼다고. 상추가 연잎만큼 커도 따 줄 줄 모르고.

점심이랑 둘이 뒷담화를 실컷 깠다.     


험담 한 지 얼마 안 되어 성길씨는 호두를 한 됫박 좀 못되게 가져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길을 지나가던 아줌마가 볕에 말린 호두를 보고 kg당 이 만원에 3kg을 사 갔단다. 일주일이 지났다. 그램 수가 줄어들었다고 반품했단다. 마르니까 그램 수가 줄어들 수밖에. 그리고 조선호두는 엄청 비싸다고 다. 그건 그거고 고소했다. 그것도 잠시, 노모 모시고 살면서 저걸로 용돈 벌이하는데 성길씨 실망스러운 눈빛에 그가 짠했다.  곧바로 호두 살 사람을 수소문하였다. 그의 사정을 듣던 시인 언니가 당장 가져오라고 하였다. 나는 호두를 차에 싣고 뛰뛰빵빵 시인 언니네로 배달했다.   


나는 오늘도 마당 쓸고 호두를 주웠다. 아직 따지 않은 호두나무 두 그루가 있다.  성길씨는 앞으로  호두를 따면 나를 줄까 말까.  

"만약에 안 주면 나도 이제 얄짤 없은께."       

까불이가 평상에 앉아 허리를 쫙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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