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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Dec 29. 2023

불량품들의 사계

골목에서 가장 어두운 밤을 기다리는 길들 45

골목에서 가장 어두운 밤을 기다리는 길들


               

오만 원을 치료비로 주려고 맘먹고 내 전화번호를 적은 후 비용을 물었다. 원장님께서 길고양이는 정부에서 지원해 준다고 그냥 가라고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병원은 하남 슈바이처 동물병원이라고 이미 소문이 난  병원이었다.   

   

인천 엄마 납골당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 으스름한 저녁 무렵이었다. 감나무에서 떨어진 감들이 바퀴에 짓이겨져 있었다. 도로 한복판에 꼼짝 않고 고양이가 누워있었다. 차들은 엉금엉금 피해 갔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려 가까이서 봤다. 새끼 고양이가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일단 얼른 고양이를 안고 길가로 나왔다. 하남에 있는 동물병원을 뒤져 전화했다. 원장님이 퇴근 시간이라고 했다. “지금 출발해요!” 기다려 달라고 사정을 했다.

도로 가에 있는 칼국수 식당으로 박스를 가지러 갔다. 그때 둔촌 식당 여주인이 말했다. “지 에미도 그 자리에서 차에 치여 얼마 전 죽었어요” 말을 마치고 그는 종이 박스를 찾아 가져왔다. 식당에서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준다고 했다.


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도중 고양이 새끼가 종이박스에서 나오려고 했다. 한 손으로 박스 위를 누르면서 “나비 괜찮아” 계속 말을 걸었다. 고양이는 다시 얌전해졌다. 내비게이션이 엉뚱한 곳으로 안내해 몇 바퀴를 돌아다녔다. 몇 번이나 병원에 전화했는데 받지 않았다. 설마 퇴근!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동물병원을 물어보았다. 왠지 학생들은 알 것 같았다. 학생들은 바로 옆이라고 말했다. 방금 지나온 곳이었다.

 내비게이션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  


원장님은 티비를 보고 있었다. '이 시국에 티비라니.'  속으로 중얼거렸다. ' 다행히 동물에 관한 프로를 보고 있었다. 전화를 받지 못 한 이유가 있었다.

고양이는 원장님이 꺼내도 발버둥 치지 않고 얌전했다. 원장님이 이리저리 살피고 눈을 벌리고 입안을 들여다보고 말을 했다.

“내장이 손상된 것 같아요.”

“지 에미도 차에 치어 죽었다는데  죽으먼 새끼가 너무 불쌍하지 않겄어요”

꼭 살려달라고 부탁했다. 병원 문을 나서기 전 철망 안에 있는 고양이에게 눈을 깜박거렸다. 세상에나, 고양이도 내 눈을 쳐다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고마워요. 꼭 살아날 거예요’ 나에게 응답한 것 같았다. 손을 흔들어주고 병원문을 나서며 생각했다.

차들은 속력을  낼 것이다. 침묵 속 바닥은, 꼬리를 치켜세우며 가장 어두운 밤을 기다릴 것이다. 고양이들은 살아내기 위해 바퀴보다 빨리 밤을 뚫어야 할 것이다. 네 발 달린 길은 속도에 부딪혀 튕겨 나갈 것이다. 결국은 길들이 사라질 것이다.  

    

집으로 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칼국수 식당에 들렀다. 식당 주인은 나에게 정말 고맙다고 했다. 나보다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준 식당 분들이 더 고맙다고 했다.

    

새끼가 걱정돼서 병원에 전화를 날마다 했다. 드디어 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양이를 오랫동안 돌 본 사람이 그 자리로 데리고 가서 방사했다고 한다. 그 후로 내 전화에 모르는 번호가 떠 있었다. 고양이를 방사 한 사람이었다. 서로 고맙다고 인사를 주고받았다.


차를 타고 오갈 때마다 그 고양이 새끼를 볼 수 있을까 싶어 고개를 돌려 내다봤었다. 살아 있을 때 빛나는 눈을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오기는 올까.  그게  풍뎅이든 개미든 쇠똥구리든 사람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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