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량품들의 사계 Jan 01. 2024

불량품들의 사계

깜찍한 범인 46

깜찍한 범인




산 뒤로 구름이 흐르고 있다.

'까꿍' 텃밭 배춧속에 호두가 높고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산에서 내려와 옷을 털다 밭 가장자리에 눈이 멈췄다. 배춧속에 파란 껍데기가 벗겨진 호두 알이 들어있었다. 누가 이런 깜찍한 짓을 했을까? 어찌나 귀여운지, 혼자 웃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어젯밤에는 배춧속에 아무것도 없었다. 아까 산에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배추는 속이 차오르는 동안 입을 다물지 못 하고 있었다. 풀치? 성길 씨? 성길 씨 엄마? 고양이? 아니, 아니 딱따구리가 물고 가다 기적처럼 저 속에 떨어트렸을까? 가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절묘한 순간을 만들어 낸 것은 누구였을까?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호두는 파란 새집에 들어있는 새알 같았다.

    

초등학교 여름방학이었다. 우리 집 건너편 농협에 우물이 있었다. 샘 옆에는 플라타너스 나무가 서 있었다. 친구들과 샘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마시고 나무 그늘에서 놀고 있었다. "새 집이다"  누군가 소리쳤다.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서 참새 집을 발견했다. 나는 나무 위로 올라가 참새 집에서 새알을 훔쳐다 선생님께 갖다 드렸다. 그 당시 시골에는 선생님께 선물하고 싶어도 드릴 게 마땅찮았다. 선생님께 이쁨을 받으려고 한 짓이었다. 새알을 보신 선생님은 당황해하면서 말씀하셨다.

“엄마 참새가 알을 찾고 있을 거야”

나는 새알이 깨질까 조심스럽게 들고 갔다. 나무 위로 올라가 새집에 다시 올려놨던 일이 기억났다.  

   

배춧속 호두를 그대로 두고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 깜찍한 범인을 굳이 찾으려 하지는 않았다.

단풍놀이를 가지 않아도 배춧속 호두 알로 마당에 햇살이 가득하다. 마당이 넓어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불량품들의 사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