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량품들의 사계 Jan 03. 2024

불량품들의 사계

산책, 산 책  47

산책, 산 책  



                 

하루에 최소 삼십 분씩은 걸어야지. 이 다짐을 여태 하고 살았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그냥 흘려보냈다.      

,

초등학교 때 우리는 신작로를 따라 섬 안에서 제법 큰 산인  '중매산'으로 걸어서 소풍을 갔다. 갯뻘은 물론 논둑, 밭둑을 훑고 가는 바닷바람을 얼굴로 받아내며 둑길을 걷곤 했다. 이렇게 유년 시절부터 걷는 습관이 나의 산책이 되었다. 이미 굳어버린 습관이라 굳이 산책이랄 것도 없다. 지금도 아득히 무화과 잎 사이를 헤집고 들어오는 파도 소리가 나를 그리움 속으로 걷게 한다.


이사할 때마다 책을 버렸지만, 그래도 꼭 갖고 있어야 할 책은 싣고 다녔다.

산밑으로 이사 와서 살다 보니 인터넷 구입 방법을 몰라 지향, 경주 친구한테 매번 부탁했다. 부탁하기가 미안하면 한 번씩 서점에 간다. 책 욕심이 많아 두껍고 뭔가 있을 거 같은 제목이 붙은 장정이 멋있는 책을 사 오곤 했다. 며칠째 던져놓았던 책을 읽어보겠다고 자세를 잡다가 덮는다. 누구는 ‘뒤적거리는 것도 반은 읽은 거야’라고 했다. 읽지 못한 책들이 거만한 폼으로 책장에 꽂혀 나를 쫄 게 했다. 많지도 않은 책 중에 읽지 않은 책들이 더 많이 전시되어 있다. 책을 여기저기 던져놓고 구르다가 잡히는 대로 몇 장 뒤적거린다.  한 권을 끝내 독파하지 못한다. 그리고는 ‘곧 읽을 거야, 기다려’ 책장을 향해 지키지도 못할 다짐을 벌써 몇 년째 하는지. 내 두뇌의 지식함량 미달로 첫 페이지부터 눈앞이 깜깜하다. 종이 위에서 개미가 바글바글 걸어 다닌 것 같아 머릿속이 하얘진다. 하지만, 수학 공식 같지 않은 산책은 머리를 쓰지 않고 발로 걸어 딱 내 체질이다.

     

산에 앉아 있으면 나무들이 내 말을 들어준다. 나무를 만지다 보면 허공을 걷는 느낌을 받는다. 나무들은 고유한 이름을 갖고 한 권의 책으로 다시 태어난다. 나무 앞에서 각자 개성 넘친 향기를 맡는다. 향기는 나무의 역사다.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과 천둥 번개와 햇빛을 맞으며 가지들은 허공을 넓혀간다. 나무에 기대어 있으면 나도 나무가 된다. 나무들의 간격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나는 한그루 귀룽나무가 되어 봄이 되면 꽃잎 한 장으로 온 산을 덮는 상상을 한다.


책은, 세상의 무게를 담았다고 오만에 빠져 나에게 깊이를 강요하지 않는다. 괜히 나 혼자 쫀 것이다. 언제나 스스로 깊이의 강요를 받았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파헤치는지, 샘을 판다고 파도 물이 솟지 않았다. 그래서 책만 보면 작아졌다. 저 두꺼운 책 등을 언제 넘어가려나, 조금 오르다가 포기했었다. 그렇다고 동네 잔등을 얇다고 무시한 적 없다. 딱 나의 체질이다. 성격 급한 나는 벽돌 책을 보면 산봉우리에 도착할 일부터 걱정이 앞선다. 앞 몇 장 펼치다가 맨 뒷장으로 가서 결론을 읽고 만다. ‘에베레스트 단숨에 오른 사람이 어디 있어!’ 하면서 나를 위로했었다. ‘장강명’ 소설가가 벽돌 책을 읽었다고 신문에 소개할 때마다 ‘또 읽었냐’ 하면서도 부러웠다.


책장에서 나무 한 그루를 뽑았다. 좁은 어깨를 가진 나에게 무성한 잎이 일렁일렁 일어나, 허허벌판 같은 사막에 옆으로 옆으로 흘러가 숲을 만들었으면 한다. 물론 손 안 대고 코 풀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 지루한 반찬이지만 식탁 앞에 펼쳐 놓고 편식부터 고쳐보자.

내가 바닷가 출신이다 보니 맨 날 보던 물보다 자연스럽게 산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산에 들어서면 근심이나 소문, 골칫거리들이 사라지고, 강아지를 안는 느낌이다. 나무들은 내게 뭘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나무들은 사람 앞에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딱 제 몸만큼의 크기와 형태로 바라본다. 아니 그 자체가 되어 준다. 답을 할 필요도 다시 질문할 필요도 없다. 나무는 스스로가 질문이고 답이다. 스스로 답이고 질문인 나무들의 침묵이 나는 좋다. 그래서 산에 오면 심란한 문제나 친한 것들과의 갈등, 복잡한 인과에서 비롯된 고통이 희미해지다 이윽고 사라져 버린다. 주문을 외우거나 기도를 한 것도 아닌데 그런 문제들이 저절로 없어져 버린다. 이보다 더 좋은 약이 어디 있을까?  의심 없이 산자락을 펼친다.  이곳으로 이사 와서 날마다 산을 바라만 봐도 좋다.

 

숲 속에 들어서면 쓸쓸하지만, 어딘가 깊어지고 차분해진다. 숲만이 지닌 묘한 매력이다. 그래서 소음을 가지고 숲 속으로 오지 않으려 노력한다.

사랑하는 강아지 산이와 솔이가 떠나 버린 후, 숲은 더 편안한 친구가 되었다.      

산책, 산 책은 나에게는 밥과 반찬과 같은 관계다.  

불이 진 밤에 책장에서 걸어 나온 나무들이 이마 위에서 조용히 페이지를 넘긴다.                                    

작가의 이전글 불량품들의 사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