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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Jan 06.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누구의 발자국이었을까 48

누구의 발자국이었을까 



              

“옴매 이것이 뭔 일이까!” 공룡 발자국은 아니지만, 이거는 고고학자에게 알려야 되는 거 아닌가? 흥분하였다. 밤비도 폴짝 뛰었다. 낙엽이 부스럭거렸다.   

  

오늘은 몇 번이나 주인이 바뀐 강아지 밤비랑 놀아주기로 약속했다. 밤비 이야기를 하자면 천일야화다. 내겐 강아지랑 노는 것도 휴식이다. 남한산성 북문 정상까지 같이 올라가기 위해 천천히 걸어갔다. 밤비는 생소한 곳이라 그런지, 따라오지 않으려 해 어르고 달래면서 쉬다 가다 열 번도 넘게 반복했다.

그런데 깔그막 길옆에 앉았다가 그동안 못 보던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위가 흙 속에 숨어 끝만 보인다고 할까. 좌우지간 넓적한 돌이 보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위엔 누군가의 오른쪽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왼쪽 발자국은 흐릿했다. 그 옆에는 곰 발자국 같았다. 십오 년 넘게 다니던 길인데 오늘 처음 발견한 것이다. 운동화를 신은 채로 발자국과 맞춰 보았다. 내 발보다 작았다. 신발을 벗고 넣어 보았다. 발이 쏙 들어갔다.       

“이거는 조용히 비밀로 간직해야 혀,” 밤비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쉿!”

밤비는 더 크게 짖었다. "아따 잘못 배웠구먼."


나는 주변에서 지켜져야 할 것이 온전히 보존되는 것을 못 봤다. 돈이 될 만하다고 판단이 서면 가차 없이 관광지로 세팅해 뜨내기 장터로 만들어버린다. 와글와글 버라이어티 한 것이 최고다. 조용히 스며들고 번져갈 여백은 어디에도 없다. 모두 시끄럽고 자극적인 것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 텐데 이해할 수 없다.  

    

아무튼 내가 발견한 발자국 모양이 언제 어느 때 누구의 것이든 사람의 발자국이면 좋겠다.  

‘1억만 년’ 도무지 상상이 불가능한 선사의 ‘무엇’인가를 상상하고 추론하는 것은 동화적이어서 좋다. 쇠뜨기를 뜯어먹고, 목까지 공기가 차 자유자재로 긴 목을 움직일 수 있었다는 공룡이 그렇고, 비행기만 했다는 잠자리가 그렇다. 멀고도 까마득한 그 시절 언니인지 오빠인지 알 수 없는 조상의 발자국을 발견한 것처럼 한참을 발자국 곁에 앉아 있었다. 발자국을 조용히 따라가다 보면 원시의 태양이 지는 노을에 가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아, 그 장엄한 빛들을 보고 싶다. 여기 바위에 발자국을 남긴 그도 나처럼 산을 걷고 있었을까. 아니면 식구들을 위해 돌도끼로 멧돼지를 잡다가 잠깐 쉬고 있었을까.

‘바위가 뜨거워 발이 녹아버렸겠지’ 네가 이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과학으로 파고들어 나의 상상과 호기심을 파괴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네가 원한다면 그 증거인 발자국을 보여줄 수 있다. 시간은 시작과 끝이 서로의 머리와 꼬리를 맞물고 있다 하지 않던가.

    

밤비는 정상에서 내려올 때는 낙엽을 뒷발로 차고 뒹굴었다. 우리는 발자국이 찍힌 바위 앞에서 멈췄다. 바위에 떨어진 낙엽을 걷었다. 발자국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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