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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Jan 08. 2024

불량품들의 사계

 감 떨어지다 49

떨어지



                                     

앞집 아줌마는 두 시간도 넘게 장대를 휘두르며 스티로폼 박스에 감을 가득 채웠다. 나는 그동안 떨어진 것만 주워 먹었다. 모래가 묻어있고 옆구리가 터져있는 것들이었다. 거지 근성이 있어서가 아니고 성길씨에 감 따겠다는 말을 못 했다. 나도 감을 따고 싶다는 욕심이 서서히 발동했다.

    

성길 씨는 막걸리를 한잔했는지 연자방아에 걸터앉아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늘은 청명하다 못해 가슴속을 팔딱거리게 했다. 날씨 탓인지 지향샘과 경주샘이 갑자기 집을 찾아왔다. 성길씨는 친구들을 보자 활짝 웃었다.

지향샘은 감 따는 것을 구경하다가 아줌마에게 장대를 달라 했다. 아줌마는 들은 척도 안 하고 내민 혀로 입술을 핥으며 감 따는데 몰입했다.

“몇 개만 따고 우리는 갈랑게. 장대 좀 줘 봐요.” 내가 말했다.

나는 감이 닿는 곳까지 장대를 있는 힘을 다해 휘둘러 세 개 땄다. 장대가 어찌나 무거운지 어깨에 힘이 다 빠졌다. 고개를 들고 목표물을 겨누었더니 눈이 어질어질했다.

“저 아줌마는 어떻게 땄지?.”

하기야 욕심만큼 힘이 생기겠지! 욕심은 나의 힘이다.

앞집 아줌마는 자기 땅도 아니면서 맞은편에 세워놓은 차를 빼라고 새벽에 나를 깨운 적이 있다. 나는 그 뒤로 마주쳐도 눈인사만 겨우 했다. 뒤끝이 길면 나만 손해인데 그렇지 못해 손해 본 적이 많다.      

내가 밭으로 떨어진 감을 주우려 장대를 세운 순간, 아줌마는 번개처럼 통통한 짧은 손가락으로 장대를 가져가 버렸다. 아! 저 날렵 함이라니. 그 동작은 배울만했다. 나는 성길 씨 옆으로 갔다.

“호두나무 이파리를 날마다 죽어라 쓸고 있는디, 저렇게 장대를 휘두르면 감나무 이파리까지 내가 다 쓸 판인디.”

그는 공사할 때 사용하는 청소기로 자기 집 마당에 쌓인 낙엽만 날린다. 내 집 마당과 자기 집 마당이 딱 붙어있는데, 좀 쓸어주면 손이 삐나. 마당 쓸 때는 네 마당 내 마당 리 구분도 잘하면서, 내 지인들만 나타나면 지인들 속은 갈대처럼 이리저리 잘도 넘어 다닌다.

“그만 따라 할까요.?”

“그래요 제발.”  

노래를 흥얼거리던 성길 씨가 아줌마 옆으로 걸어갔다.

“아줌마 그만 따래요”

“누가요?”

아줌마가 당당하게 나를 쳐다본 순간 쫄았다. 나는 그 당당함에 작아져 버렸다.

“옆집이요.”

성길 씨가 나를 쳐다봤다.

“말을 정확허게 전달해야지요. 장대 닿은 곳에 달린 감 몇 개는 남기라고 했잖어요!”

나는 순간 변명을 하였다. 에라, 눈치라고 개미 발바닥만큼도 없는 남자야. 속으로 욕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성길씨가 장대를 아줌마 손에서 가져왔다.

“아가씨, 감 따 줘야지.

우리 나이가 몇인데 아가씨야! 그녀들이 가만히 말했다. 그는 자기가 총각이라 내 지인들 몽땅 아가씨라고 부른다.

“어떤 아가씨요?” 내가 물었다. 우리 셋은 성길씨에게 눈이 멈췄다.

그는 한 친구를 보고 웃었다. 나는 진즉 눈치를 깠다. 성길씨는 경주샘만 나타나면 얼굴이 부드러워지고 심지어 친구 자동차 소리도 알고 있다. 그 말을 옆에서 듣던 지향샘이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지향샘이 날도 좋은데 양평이나 한 바퀴 돌자고 했다. 나도 성길씨가 좋아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 나가자고 했다. 아쉬워하는 성길씨를 뒤로 두고 양평으로 핸들을 꺾었다.  

   

경주샘 별장에서 밤 줍고 밥 해 먹고 집에 도착할 때는 깜깜했다. 멀리서 봐도 달빛에 비친 감 몇 개만 꼭대기에 매달려있었다.

“이 아줌마 장대를 엄청 휘둘렀구만!”

마당으로 걸어 내려오는데 감나무, 호두나무, 거기다가 단풍나무 이파리까지 마당에 수북이 쌓였다. 양심도 없는 사람들. 괜한 나무이파리만 발로 찼다. 감나무 옆에 있는 장대를 집어다가 집 옆에 있는 연탄창고 앞에 세워 놨다. 그동안 길가는 사람들도 감을 손댔다. 설마 여기까지 와서 장대를 가져다 감을 따지는 않겠지. 내 나름 잔머리를 썼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쓸다가 성길 씨와 마주쳤다.

“장대 저그다 세워 놨어요.”

“네, 토요일 날 동생들 오신다면서요. 그날 감 따세요.”

며칠 전 동생들 온다고 했던 말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장대가 꼭대기에 닿아야죠 머, 사다리를 놓고 올라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나무를 탈 수도 없고.”

     

감을 보면 어렸을 때 생각나는 일이 있다. 우리 집 길 건너에 우체국이 있고 그 옆으로 파출소가 있었다. 파출소 올라가는 길 양옆으로 내 키보다 작은 측백나무가 서 있고. 파출소 아래 우물 있는 기와집이 있었다. 그 집에는 단감나무가 있었다. 감나무는 사방으로 길을 냈다. 가지들은 우물 위로 길게 드리웠다. 햇살이 넘친 날에는 감이 우물에 떠 있었다. 가을밤이면 단감나무는 가지마다 노란불을 켠 것 같았다. 사람들은 지나다니다가 노란 불을 하나씩 땄다. 마을 사람들은 샘에서 양동이로 물을 길어 날랐다. 우물은 달았다. 사람들은 물을 마시다 감나무에 물을 었다. 그물에 뿌리를 적신 감도 달았다. 대문은 늦은 밤 말고는 항상 열려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가을 일요일이었다. 큰언니가 어디를 갔다 오다 파출소 앞에서 핀이 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대청에서 엎어져 만화책을 넘기다가 핀을 찾으러 나섰다. 핀을 찾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파출소 안으로 들어갔다. 감에 홀렸다. 찾으려는 핀은 안 찾고 파출소 담에 발을 올려놓았다. 감을 땄다. 딴 감을 측백나무속으로 던지고 있는 그때 경찰이 나를 보고 소리쳤다. “너 잘 만났어,” 뛰어내려 도망갈 새도 없었다. 그리고 자기가 감 주인도 아닌데, 내가 쫄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너희들 때문에 방위들이 감 다 따간다고 감나무 주인한테 누명 쓰고 있다고.”

경찰은 나에게 감을 다 주우라고 했다. 그리고 파출소로 가자고 했다. 파출소로 가자는 말에 겁이 났다. 경찰은 나에게 감 하나를 입에 물고 손을 들라고 했다. 나머지는 땅에 내려놓으라고 했다.


경찰은 우리 부지랑 친해 오며 가면 집에서 놀다 갔었다. 당연히 내 얼굴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가혹하게 나를 발가벗긴 채 벌을 주다니. 물론 옷을 벗긴 것은 아니지만 다 벗은 느낌이었다. 수치스럽고 창피하여 눈물이 났지만, 입술을 깨물었다. 더욱이 지나가는 방위들이 고소하다는 듯이 실실 웃고 지나갔다. 그동안 모든 감 도둑 덤터기를 내가 다 썼다. 억울하고 분했다. 좀 있다가 경찰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꽤 오랜 시간 입에 감을 물고 손을 들고 서 있었다. 방위 한 명이 나에게 도망가라고 하였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침도 흐르고, 어깨도 저리고, 고개는 점점 앞으로 수그러들고 다리도 아팠다. 속눈썹이 떨리고 눈물이 나려고 할 때 그 경찰이 나타났다. 반가웠다. 무슨 결정이 나겠지 싶어서였다. 그는 나를 보고 당황했다.

“너, 아직 안 갔어? 땅에 내려놓은 감 가지고 얼른 집에 가라.” 일단 손을 내리고 천천히 걸었다. 뒤돌아보았다. 경찰이 보이지 않자 손에 들고 있던 감을 파출소 앞으로 던졌다. 그리고 집으로 달리는데 눈물이 터졌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불에 탄 성냥개비로 속눈썹을 올리던 언니랑 엄마가 나를 보고 웃었다. 지서 앞을 지나가다 나를 봤던 친구 오빠가 내 꼴을 말한 것이다. 나는 대성통곡을 하면서 말했다. “저 순경 밥도 주지 말고 집에 오지도 마라고 해. ”   

   

그날 이후 그 경찰이 집에 오면 나는 집에서 나갔다. 경찰을 마주칠 때마다 분하고 억울하고 감 입에 문 거 생각나고 방위들 웃는 것이 떠올랐다. 그런 불편한 시간은 경찰이 목포로 발령 나고서야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안 있다가 경찰이 범인을 잡아 파출소로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단다.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그 당시 맘속으로 경찰이 죽기를 바랐었다. 부고 소식을 들은 그날 이후로 누군가 아무리 미워도 죽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은 않는다.

가을이 멀어질수록 기억들이 더 또렷해지는 것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일까.     


성길 씨는 어제 왔던 친구들 감 따준다고 꼭 오라고 하였다.

“됐어요. 동생들, 친구들 다 따주면. 까치밥은요?”     

나는 그 뒤로도 떨어진 감을 주워 먹었다. 익어서 떨어진 감은 더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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