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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Jan 11. 2024

불량품들의 사계

야외 화장실 50

야외 화장실




“주인아저씨, 화장실 좀 없애먼 안될까요.”

성길씨에게 말했다.

“안돼요. 뒷방 아주머니가 써요.”


올봄 이사 온 지 며칠 지났을 때다. 주인 성길씨랑 나눈 대화였다. 밭 끝에 다 바랜 하늘색 이동 화장실이 있다. 뒷방 할매가 화장실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럼 뒷방 할매 방에 화장실이 없다는 것인데. 삼월 초여도 바람 끝이 송곳 같았다. 할매가 출입을 거의 하지 않아 이 집에서 사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할매는 사람이 없는 틈을 타 화장실을 쓰고 있었다.     

그날 할매가 산다는 말을 듣고 집 뒤로 돌아갔다. 내 집하고 붙어있었다. 아! 이게 집이라고, 생선 비늘이 벗겨지고 속은 문드러져 썩은 내장 같았다.

친구들도 집에 올 때마다 밭에 있는 화장실을 치우라고 했었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남의 화장실을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맞지 않았다. 친구들도 할매가 사용한다는 말을 듣고 더는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발이 차다. 나무들이 비에 젖고 있다. 할매는 두리번거리면서 열쇠로 문을 열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성길 씨가 처음 보는 남자를 데리고 밭 끝을 향해 걸어갔다. 남자 둘은 화장실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남자 둘이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갈 생각을 안 하고 있다. ‘성길씨 얼른 좀 나가라, 할매 발에 쥐 나겄네.’ 쪼그리고 앉아 일을 보고 있는 할매는 지금 무슨 생각이 들까. 나는 밖에 남자들을 세워놓고 일을 보는 할매 입장이 되어 봤다.

아직도 화장실이 밖에 있는 집이 있다니. 나도 이런 집에 세 들어 산다고 서글프네 마네 할 일이 아니다.  

    

비가 갰다. 산 아래 비애를 걷어내는 그야말로 깨끗한 가을 하늘이다.

남자들이 밭을 걸어 나와 마당을 떠났다. 남자들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왔다. 나는 창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손이 차다. 앞산이 해를 가렸다. 인기척이 끊기고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 식사하러 오시라던 마이크 소리도 언제부턴가 들리지 않았다. 소문의 진원지 뒷집 평상에서 모이는 아줌마들 웃음소리도 단풍에서 멀어졌다. 말 많고 탈 많던 뒷집 평상에 할매가 앉아 있는 것을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나도 할매에게 말을 잘 걸지 않았다. 가난이 가난에 말을 걸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이 처질 것 같아서였다.


뒷방에서 바짝 문 당기는 소리가 들린다. 깜깜한 저녁에 서리가 내린다. 수돗가 단풍이파리가 떨어진다. 눈이 새빨간 직박구리가 나뭇가지를 박차고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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