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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Jan 14. 2024

불량품들의 사계

풀치는 솔로몬 52

풀치는 솔로몬

 



배추가 밤이면 서리를 하얗게 뒤집어쓰고 있다. 평상에서 노는 것도 이제 막을 내려야 했다. 동생들과 백숙, 삼겹살과 소주로 올해 ‘평상 쫑파티’를 하고 있었다.

     

풀치가 털레털레 걸어와 막사 위에 술병을 올려놓고 텃밭 가 너럭바위에 앉는다. 평상서 놀 때마다 저러고 있으니. 풀치를 보는 순간 동생들은 집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집안에서 먹고 마실 거면 여기를 왜 와.”

“그래, 그냥 평상서 마셔.”

“저 사람 신경 쓰이잖아.”


풀치는 구신도 아니고 날마다 똑같은 옷을 입고 평소에도 때꼽 낀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다. 오늘은 그나마 계절이 바뀌어 하늘색 티 위에 군용 잠바를 껴입었을 뿐이다. 거기다가 플라스틱 술병을 통째로 들고 마시는 풀치와 도저히 같이 앉아 먹을 수가 없었다. 일단 풀치를 모른 척하기로 했다. 음식을 앞에 두고 사람으로 참 할 일이 아니었다. 풀치는, 본인 스스로 지랄 옆차기를 하고 다녀 누구 탓도 할 수 없다. 어느 것 하나 우리와 같이할 건덕지가 없다.

풀치는 오늘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노래를 휴대폰으로 틀었다. 이제는 저 노래가 지겹지도 않다.

동생 한 명은 술맛 안 난다고 자리에서 일어나 호두를 주우러 돌아다녔다. 이 와중에 풀치는 “우리 누님이 제일 이쁘대이. 누님 사랑해!” 나를 향해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그나마 풀치에 대해 아는 심이 동생이 말했다.

“언니, 저 사람 술 한 잔 줘요.”

“안돼, 더 취허면 밭에다 오줌 싼단께. 가위를 문 앞에 걸어 놓든가 해야지.”

솔직히 풀치가 동생들한테 창피했다.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술을 따르고 있었다. 그때 뒷집 모과나무집 평상에서 여자들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보니 아줌마 한 명이 나이를 속이다가 들킨 것 같았다. 씨팔, 이년 저년 욕 소리가 들렸다. 뱀띠니, 용띠니 하면서 주민등록증 가져오라 마라, 머리끄덩이를 곧 잡을 것 같았다. 그걸 듣고 있던 심이가 말했다.

“아이고, 이 나이에 동생이면 어떻고 언니면 어때. 언니면 술 한잔 사면 되고, 동생이면 언니 생겨서 좋고.”

“아니지, 오뉴월 뙤약볕이 어딘데.”

예의 바른 써니가 말했다.

우리말들이 갈라지고 있을 때 풀치가 벌떡 일어났다.

“내가 언니인지 동생인지 해결해 주고 올 겁니대이.”

“어지간허면 가만히 있지, 가서 뜯기지나 말고요.”

“내가 경상도 사나이 아닙니꺼”

“아따, 별일 났다야, 새삼스럽게 경상도 사투리 쓰고.”

“내가 이래 봐도 안동 김씨 27대손 아닙니꺼.”     

그가 일어나 간다 하니 속이 시원했다. 한편으로 당하고 오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평소에 풀치에게 말 한마디 붙이지 않은 사람들이라 오히려 놀라지 않을까도 싶었다.

“근디 어떻게 해결 할껀디요?”

“가서 보고 우리 누님만큼 이쁜 사람한테 언니라고 할꺼라에.”

“언니, 요새 연하가 대세여. 연하, 연하” 동생들은 손뼉을 치면서 연하를 외쳤다.

풀치는 신이 났다.

“이것들아 앞서지 마라. 풀치가 술 마시고 빙 허는 꼴을 봐야 하는디.”

술 취해 행패 부린 것을 본 애경이가 말했다.

“풀치한테 갈려면 그냥 빗자루한테 가는 게 나아, 행여 언니 딴마음 먹지 마.”

“쓸데없는 빗자루 몽댕이 같은 소리 그만혀.”

나는 잔을 들고 풀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쫓게 나지 말고 잘 해결허고 느그 집으로 가세요.”

풀치는 우리 응원에 의기양양 걸어갔다.

     

풀치가 사라지자 호두를 줍던 동생들이 국화를 꺾어 들고 와서 젓가락을 들었다. 그 평화도 잠시 풀치가 곧 돌아왔다. 뒷집 평상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그럼 그렇지 뭣을 해결 허겄다고...’

“왜 벌써 왔으까?”

“둘이 알아서 하라 했어요.”

“먼 말이야, 멀 알아서 하라고 했다는 거여?”

동생들이 평상 끝에 서 있는 풀치 입을 쳐다봤다.

“둘 다 너무 못생겨서, 둘이 알아서 하라고 했어요!”

순간 평상이 날아오를뻔했다. 열 명이 넘는 여자들이 똑같이 빵 터졌다. 우리는 풀치 말을 올해 최고 유머로 쳐주기로 했다.

동생들은 솔로몬 재판이네! 하면서 연하, 연하 외쳤다. 동생들은 에게 술을 따라주고 어서 앉으라며 평상에 자리를 내주었다.

“솔로몬 죽어부럽는갑다야.”

“언니, 가위 문 앞에 걸지 말아요. 잉?” 심이가 말했다. 애들은 낄낄대면서 풀치에게 술을 돌아가면서 따라주었다. 풀치는 기어이 내 옆으로 와 헤벌쩍 웃으면서 글라스에 술을 입안에 털었다. 풀치 고개가 점점 공손해졌다.


해가 졌다. 동생들도 갔다. 풀치는 평상에서 뻗었다. 호두나뭇가지 위 새들도 집으로 돌아가는데,  저러다 풀치 입 돌아갈까 걱정스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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