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량품들의 사계 Jan 20. 2024

불량품들의 사계

세 부실이 들 54

세 부실이 들 



         

오늘 랜드로버 외제 차를 박았다. 다 성길씨 어깨 때문이다.      


며칠 전 이파리 몇 개 달린 호두나무 아래서 성길씨는 나에게 어깨를 보라며 옷을 젖혔다.

오늘은 병원 예약해 놨다면서 어깨를 또 보라고 했다.

대낮에 마당에서 어깻죽지를 들이대면 나보고 어쩌라는 것인지. 그동안 어깨를 보여줬지만, 자세히 보지 않았었다. 자기 엄마나 뒷방 할매한테 보여주지. ‘내가 지 각시도 아니고’ 나한테 위로를 받고 싶어서 그런 줄 알겠지만. 지금도 내가 반응이 없자, 노골적으로 잠바를 벗고 티를 잡아당겨 젖히며 보여주었다. “옴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쇄 골 근처에 동전만 한 게 몇 개 붙어있었다. 저러고 아프다고 징징거리는데 병원이라도 데려다줘야겠다 싶었다. “내일 아침 아홉 시 반에 마당에서 만나 병원 가게요.”     


다음 날 성길씨는 아홉 시 십 분 전 전화를 했다. “아따, 아홉 시 반에 출발헌다고 했잖아요”

시간이 되어 나갔다. 벌써 그는 담배를 태우고 마당 입구에 서 있었다. 본격적인 겨울은 아니지만, 산밑 추위는 감을 잡지 못한다. 어젯밤 엄청 추웠다. 차 앞뒤 유리창에 성에가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 일과를 계획해 놨는데 돌발상황이 생긴 것이다. 나는 차 시동을 걸어놓고 유리창에 낀 성에를 막대기를 주워 긁었다. 성길씨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로 보고만 있었다.

“아저씨, 같이 좀 해요?”

그는 나무 판데기를 주워와 유리창을 긁기 전에 말했다.

“유리창에 기스 나지 않으려나.”  

“시간 없어요. 얼른 긁어요”

성에를 긁어내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는 깔짝깔짝 긁어내고 있었다.

“아저씨 거기 말고 조수석에 낀 성에를 넓게 긁어내요, 좀! ”     


성길씨를 병원에 내려주고 자동차 고치러 미아동 공업센터에 가야 했다. 얼마 전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출구를 찾다가 가만히 서 있는 기둥을 박아버렸다. 범퍼가 움푹 들어갔다. 이 일이 있기 전 송파구 방이동에서 살 때다. 친구가 강아지 밤비를 봐주라고 데리러 가는데 길이 막혔다. 늦었다. 서두르다가 주차하면서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친구네 옆집 담벼락을 박아버렸다. '우르릉 꽝'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사람들이 집 밖으로 뛰어나왔다. 담벼락 주인이 나에게 다가와 다친 데는 없냐고 물을 정도였다. 차 앞이 다 깨졌다. 부서진 조각은 차 유리창에 떨어 파문처럼 금이 갔다. 앞문이 다 찌그러져  뒷문으로 나왔다. 천만다행인 것은 부서진 담 턱에 바퀴가 걸려 멈추었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앞집까지 박을 뻔했었다. 박아버린 담을 쌓아 주느라 보험료 엄청 올라갔었다. 나 혼자 박고 부수고 긁히고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 기억이 떠올라, 내 이런 산만한 성격을 탓하면서 ‘오늘 차 범퍼 고치먼 비용이 꽤 나올 텐데’ 걱정이 끓고 있는데, 내 속도 모르고 성길씨는 성에를 긁으라고 했더니 요령이나 피고 있다. 내 차를 타고 병원 가려면 동작도 빨랑빨랑해서 내 맘도 얻고 얼마나 좋아. 확 열이 올라왔다. 그래 기대할 것 기대해야지.

그나마 수리센터 사장님이 그 동네에서 사업하는 내 친구랑 친해 거의 부품비만 받는다. 멀어도 미아까지 가는 이유다.  

    

그때 풀치가 어정어정 나타났다. “형, 병원 가는 거예요?” 풀 죽은 목소리였다. 나도 성길씨도 풀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아마 성길씨가 풀치에게 내 차 타고 병원 간다고 자랑 비스므레 말한 거 같았다. 그 소리를 들은 풀치는 시간 맞추어 집에서 나왔다. 나는 차에 탔다. 앞이 보였다. 시동을 걸었다. 성길씨는 잠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차 앞에 서 있었다. 풀치는 차 왼쪽에 서 있었다. 누가 봐도 사내 둘이 내 차를 봐주려고 서 있는 꼴처럼 보였다. 뒤 유리창은 성에가 그대로 끼어있었다. 쇠똥구리 걸음만큼 천천히 후진했다. 내 차 바로 뒤로 흰색랜드로버가 주차해 있어 정말 조심했다.

슬로우 슬로우 킥킥 천천히 브레이크를 뗐다 밟았다. 왼쪽으로 살짝살짝 후진했다. 그때 ‘삐직’ 뭐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주차했을 때 바로 뒤에 있던 흰색랜드로버만 신경 쓰느라 돌아 나온 내차 뒤에 서 있는 검정 지프차는 미처 보이지 못했던 거다.

“아, 오늘 엿 됐네” 차에서 고개를 쏙 빼 내다보는데 풀치가 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도망가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먼 소리여’ 일단 차에서 내려 뒤로 돌아갔다. 차 번호판 장착하는 테두리가 깨졌다. 풀치는 계속 복화술을 쓰면서 나에게 도망가라고 하였다.

“가긴 어딜 가.” 성질이 났다. 차에 올라타 차를 뺐다. 이 모든 것을 보고 가만히 서 있던 성길씨가 차 뒤로 왔다. 부서진 플라스틱을 주워 들고 말했다.

“이거 돈 얼마나 안 해요.”

“아저씨, 얼른 차 주인한테 말해요.”

성길씨가 삐죽거리다가 문을 두드렸다. 성길씨는 자기가 나서면 책임을 져야 할 거 같아  머뭇 거리거리고 있었다. 내 재촉에 그는 마지 못 해  일 문을 두드렸다. 차 주인이 나왔다. 차 주인은 바로 앞집 단독주택 일 층에서 자동차 부품 도매하는 사장님이었다. 나는 얼른 차에서 내렸다. 남자 둘은 슬금슬금 뒷걸음을 쳤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바른 말 하면서 살고 싶었지만 '에라 이 쪼다들아 '. 

두 손을 모으고 나는 차주인에게 최대한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사장님 죄송해요. 뒤가 보이지 않아서요. 지금 병원 갔다 와서 내일 아침 들리께요.

 사장님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성길씨를 하남 신장동 병원 앞에 내려주고 미아동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이게 뭐지, 차를 봐준다는 것은 뒤에서 오라이 하고 트렁크를 손으로 탁탁 치면서 스톱을 외치는 것이 아니었던가. 남자 둘이 내가 차를 박을 때까지 가만히 보고 있다가, 한 놈은 도망이나 가라 하고, 한 놈은 돈 얼마 안 한다고 나 혼자 알아서 하라는 시그널이나 보내고. 차를 정말 눈으로 보고만 있었던 것이야 뭐야 진짜... 저것들을 믿는 내가 잘못이지. 믿을 놈들을 믿어야지.」     


차를 맡기고 수리센터 근처에 사는 친구들과 점심 먹으면서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일을 말했다.

“야, 그놈들을 믿은 니가 부실이다.”

성길씨와 풀치를 아는 영아가 말했다.

“그나저나 랜드로버는 살짝만 긁혀도 백만 원이 넘는다” 외제 차를 타고 다닌 진녀가 말했다.

나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나마 공업센터 사장님이 내차 수리비를 사만 원 받았다. 다른 곳으로 갔으면 전부 바꾸라고 했을 것이다. 범퍼를 불로 녹여서 잡아 뺐다. 미아까지 온 값은 했다.     

 

나는 내 차를 긁혀도 신경 안 쓴다. 사람도 다치고 사는데, 그래서 내 차는 상처투성이다. 그동안 내차 긁은 사람들 그냥 돌려보냈으니까. 혹시 그 마음을 돌려받지 않을까 혼자 위로하다가, ‘아니여, 이거는 외제차여. 어림 반테기도 없는 소리여.’


이놈의 랜드로버를 생각하면 집으로 오는 데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불안했다.

‘설마, 플라스틱 그 까짓 것이 아무리 물 넘어왔다고 십만 원은 안 넘겄지.’    

밤새 십만 원일까, 백만 원일까, 걱정하다가 뜬 눈으로 날밤을 깠다.

다음 날 아침 문을 조심히 두드렸다. 차 주인이 나왔다. 나는 허리를 살짝 구부렸다. 일단 불쌍 모드로 갔다.

“차 때문에 왔어요. 어제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황반변성이라.”

“그냥 두세요. 한동네 사람끼리, 살짝 깨진 건데.”

“그래도 래드으로바아는 엄청 비싸다고 허던디.”

“이거 쏘렌토예요.”

“예?”

나는 잽싸게 차 앞으로 갔다. 쏘렌토였다.

“이게 먼일이 당가, 그럼 제가 차라도 한잔 타서 올께요”     

나는 왜 랜드로버로 생각했을까. 차를 박고 놀란 나머지 내 차에 뒤에 주차돼 있던 하얀색 랜드로버가 생각나 지레 겁을 먹고 쏘렌토를 랜드로버로 생각해 버린 것 같다.      

그런데 저 두 남자는 왜 차를 보고만 서 있었을까. 하옇튼 이해가 안 되는 남자들이다. 풀치도 성길씨도 이틀이 지나도록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이틀 동안 발 뒤꿈치도 볼 수 없는 성길씨는 그렇다 치더라도, 날마다 누님 사랑한다던 풀치 놈은 어디 간 거야. 이것들이 얼마라도 돈 보태달라고 할까 봐,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차 박고 병원 간 그날도 차 안에서 성길씨는 옷을 또 내리며 “어깨가 아프다”며 보여 주었다. 나는 볼까, 잠깐 생각했었다 “옴매 많이 아프겄네요” 위로해 주면 그가 부서진 차 비용 보탠다고 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안 보기 다행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내가 성길씨 어깨를 봤다고 치자. 성길씨가 풀치에게 내가 자기 어깨 봤다고 말하면, 풀치가 술 퍼마시고 온 동네방네 성길씨가 내 몸뚱아리를 봤다고 업그레이드... 나는 이 동네에서 못 산다, 못 살아.        

  

이 이야기를 광주에 사는 깐깐한 동생 명화한테 말했다. 광주에서 아쟁을 켜는 국악단원이다. 내가 “아쟁아, 뭐 해?” 부르면 그녀는 나에게 “술쟁이는 뭐하요?”라고 한다. 그녀는 아쟁처럼 거칠고 투박하게 저음으로 말했다.

“그 두 부실이들 보다 후방 카메라 하나가 훨씬 나은께 당장 달쑈!”




작가의 이전글 불량품들의 사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