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좀 보이면 어때. 그럴 수 있지’ 그는 내가 이사 오고 난 후 얼마 안 되어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는 장가가 애를 낳고 싶은 게 진심이었다.
그런데 애를 낳으려면 남녀가 젊어야 하는데.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다 도시로 나가려고 할 판에, 누가 시골로 시집을 올까. 성길씨는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 거 아니야? 가진 것 없는 성길씨 참말로 꿈도 야무지다.
그래도 저리 장가를 가고 싶다는데, 애도 낳고 싶다는데. 나는 수소문했다. 둘째 언니 친구를 성길씨에 소개해 주기로 했다. 성길씨가 보기 전에 내가 그 언니를 미리 봐야 할 것 같았다. 송파 언니네 집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 언니는 나보다 키도 작고 얼굴도 내가 더 예뻤다. 당연히 애는 못 낳았다. 단 키는 작았지만 야무지고 욕심이 없어 보였다. 미국 살다 왔고 긍정적 성격을 가졌다.
“집주인 성길씨는 현금도 없고요. 자동차도 없고요. 노모도 모셔야 하고요. 낡은 집허고 땅만 있어요. 음... 일은 간혹 나가요.”
“응 괜찮아, 집하고 땅 있으면 다 있는 것이지. 일은 내가 시키면 되고, 시내 나갈 때 버스 타고 가면 되고, 할머니 살면 얼마나 산다고 내가 모시면 되지.”
그 언니는 모든 것을 오케이 했다. 언니는 이제 나이도 들고 시골에서 안착하고 싶다고 했다. 쇠뿔도 단김에 뽑는다는데. “나이는 좀 있어요” 그 자리에서 내일 당장 만나자고 성길씨한테 전화했다. 그는 오케이 했다. 성길씨 땡잡았네.
우리 집 식탁에서 둘째 언니와 나랑 동석하에 성길씨랑 겨울 저녁 미팅이 이루어졌다. 나는 믹스커피를 타서 그들 앞에 내놨다. 세월은 청춘남녀였던 저들을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 식탁 위 엘이디 불빛에 비친 얼굴들이 부끄럽게 물들어갔다. 시간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몇 마디 말도 못 한 성길씨가 갑자기 집에 밥 올려놓고 왔다고 하며 가버렸다. 우리는 성길씨가 잠깐 다녀오는 줄 알고 기다렸다. 미국 언니는 성길씨가 맘에 든다 했다. 그러나 성길씨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성길씨가 미국 언니를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다. 연탄이 밥 하는 것도 아니고, 밥 솥이 밥을 해 탈 일도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