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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Jan 24. 2024

불량품들의 사계

고래 뱃속으로 들어갔을까 56

고래 뱃속으로 들어갔을까   


     


주민들에게 유령 취급당한 풀치가 보이지 않는다. 날이 추워서일까.                   

풀치는 하루도 안 빼고 술에 취해 새벽까지 돌아다니며 동네방네 고성방가를 해대서 잠 못 들게 했다. 그의 트로트와 악쓰는 소리가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곳은 내 집 옆 연자방아다.      


잠바를 걸치고 마당에 나왔다. 달빛을 받은 자줏빛 맨드라미가 희미하다. 요즈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 들리지 않는다. 연자방아가 조용하다. 그렇다고 길 건너 컨테이너까지 가서 풀치의 행방을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하다. 풀치 발이 어느 순간 내 집 평상까지 파고들었다. 날마다 평상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질러 내가 돌기 직전이었다.     

그래도 ‘누우나 이뻐!’ 하며 내게 하트를 머리 위에 그리던 풀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송장처럼 움푹 들어간 눈도 더 꺼지지 말아야 할 텐데.


가족이라도 찾아와 그를 데려갔으면 다행이지만, 경찰들도 식구를 찾아줄 맘이 없는 것일까? 그럴 형편이면 벌써 그랬겠지.

풀치 집은 길 건너 컨테이너다. 풀치가 술 마시고 워낙 심하게 소리 지를 때 주민들이 견디다 못해 신고했다. 경찰들은 풀치를 달래 컨테이너까지 데려다주었다. 경찰들도 못 할 짓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풀치와 실랑이를 할 뿐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경찰도 풀치를 ‘이미 알아봤겄지’ 전생은 몰라도 이생에 속한 인물이라면 금방 신원을 파악했을 거야.  

    

풀치는 어디로 갔을까. 그의 별명 풀치처럼 바다로 갔을까. 여기서처럼 술병 들고 바닷속을 휘젓고 다니다가 고래 뱃속으로 들어갔을까. 아니면 고향을 향해 헤엄치고 있을까. 아니면, 고래 심줄처럼 질긴 놈이라 살아서 어디선가 술을 마시고 있을까. 


나는 가만히 바다를 향해 돌아 눕는다. 밤새 귀신고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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