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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Jan 26. 2024

불량품들의 사계

김장 배추보다 사람이 더 많다 57

김장 배추보다 사람이 더 많다      



배추는 얼었다가 녹았다가를 며칠째 반복했다. 한밤중에 이불을 걷어차고 밭으로 나왔다. 배추를 만져보았다. 땡땡 얼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해가 뜨면 서리를 털고 빳빳이 살아났다. 그래도 안 되겠다 싶어 신문지로 배추를 덮었다.


어렸을 때, 눈 쌓인 겨울밤 김장독에서 적 갓을 띄운 보랏빛 동치미와 배추김치를 꺼내와 고구마에 싸서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던 게 생각났다. 이사 와서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가 김장독을 땅에 묻는 것이었다.  

    

무김치까지 땅에 묻으려면 구덩이를 세 개는 파 야 했다. 성길씨 연탄창고에서 삽을 가져왔다. 텃밭에서 땅을 파도 파도 제 자리만 맴돌았다. 뒤집어진 풍뎅이도 아니고 왜 제자리에서만 도는 것이야. 이런 나를 성길씨가 호두나무 아래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성길씨에게 다가가 손에 삽을 들려줬다. 그는 멈칫했지만, 팍팍 치고 들어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구덩이 하나를 팠다. 이 속도로 가면 나머지 두 개도 금방 파겠다 싶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하면 된다는 듯 시범만 보여주고 삽을 꽂아놓고 나가버렸다.

‘왜 파다가 금방 두는 거여? 봄에도 밭 갈아엎다가 말더니만. 진짜 맘에 들었다 안 들었다 허네.’

나 혼자 구덩이 두 개 파다가 어깨가 무너지는 줄 알았다.

‘저러면서 장가는 먼 장가여.  뒀다 뭐 해 쓸라고 저리도 아끼까.’

나는 무하고 배추는 뽑아 일단 평상에 올려놓았다.

     

석유 사러 시내 나갔다가 왔다. 눈이 어마하게 내린다. 첫눈이다. 차가 언덕을 올라 채지 못했다. 석유통을 들고 걸었다. 연자방아에 서서 내 집을 내려다보는데 이게 웬일, 내 집이 그림동화 속 집 같았다. 석유통을 눈 위에 내던져버렸다. 지금 석유통이 문제여. 산이며, 지붕이며, 천지가 눈 속에 갇혀있었다. 참새들이 눈 위를 스치면서 날아가고 있었다.

‘캬, 환장허겄네. 이런 풍경, 얼마 만이냐!’

나는 발 시린 개 마냥 뛰어다녔다. 눈 위에 발자국으로 꽃을 만들었다. 시골집 문살에 박힌 문양 같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발자국을 찍었다.

연자방아에서 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지인들에게 날렸다. 눈덩이를 굴렸다. 눈사람 몸통을 만들었다. 집주인 성길 씨가 문을 열고 마당으로 등장했다.

“지금 배추 절여야지 눈사람 만들 때요?”

“이제 머리만 맨들면 돼요.”

“내가 집을 잘못 내줬구만.”

이 말은 내가 철이 없다는 소리로 들렸다. 오늘 배추를 절여 내일 김장을 하기로 한 날이다. 성길씨는 내 집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어쩐지 도와줄 것만 같았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것쯤은 금방 끝낼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눈 위를 펄펄 뛰어다녔다.

“소금이나 가져와요!”

“아저씨가 도와줄라고요?”

“그쪽이 배추를 칼로 잘라주면 내가 소금은 뿌릴 테니.”

“아따, 그럼 나는 석봉이 엄마, 그대는 한석봉? 오늘은 힘 좀 쓸랑갑네.”  

나는 그의 등을 만져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둘이 70 포기를 눈 깜짝할 새에 다라이 두 개에 절였다. 70 포기라고 해봐야 배춧속이 덜 차 50 포기나 될까. 성길 씨가 옷을 털고 집으로 들어가자 나는 눈사람 머리를 마저 만들었다.  

    

새벽에 어제 절인 배추를 씻으려고 일어났다. 빨간 대야 세 개를 놓고 배추를 헹구고 일어서려는데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손이 굽었다. 발도 얼었다. 나는 기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큰일 났다. ‘김장하다 죽는 거 아니여?’

그동안 친구들과 하루가 멀다고 떼로 평상서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이웃들이 보았었다. 그런데 오늘은 나 혼자 마당을 기어 다니고 있으니. 그 모습을 본 이들이 ‘이제 하다 하다 혼자 기어 다니냐? 가지가지한다’ 그럴까 봐 쓰레기를 줍는 시늉을 하며 마당에서 뽁뽁 기어 출입문까지 갔다. 기둥을 잡고 간신히 허리를 폈다.  

농사짓는 엄마들 허리가 왜 ㄱ자로 휘어져 있는지 알 수 있는 체험현장이었다. 그 정도 힘들었지만,  뿌듯 그 자체였다.   

   

어릴 때 김장배추를 선창 바닷물에서 씻었다. 바닷물은 소금 역할도 했다. 엄마는 다 씻은 배추를 리어카에 싣고 집으로 갔다. 나는 뒤에서 밀고 갔다. 물 먹은 배추는 오르막을 힘들게 했다. 엄마는 자꾸 뒤를 돌아왔다. 그 순간 나는 깨금발을 들었다. 뒤꿈치를 들고 발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때 리어카를 더 세게 밀 걸 때늦은 후회를 오늘 한 바게츠쯤 했다.

      

날이 밝았다. 결전의 날이다. 눈도 그쳤다. 햇빛이 쨍쨍 났다. 오늘 내 이름을 걸고 처음으로 김장을 하는 거다. 나는 마당에 솥단지를 걸고 돼지고기를 삶았다.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이 부러운 듯 웃으며 쳐다보고 간다, 이웃들하고 왕래하고 사는 거 같지 않은 성길 씨의 발걸음도 들떠 보였다.

그동안 이런 일이 없다가 내가 오고 나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느낌이 싫지 않은 것 같았다.  

“이웃들이 우리 집을 부러워해요.” 성길씨가 말했다.

“아따, 나도 좋쏘.!”

평상시에 내 집에 따로따로 왔던 친구들이 김장한다는 소문을 듣고 한꺼번에 몰려왔다. 친구 따라온 강아지까지 합하면 무려 이 십 명쯤? 사람이 너무 많아 정신없다고 가버린 친구도 있었다. 그야말로 대사를 치르는 것처럼 마당이 왁자지껄했다.

“어떻게 된 게 김장할 배추보다 사람이 더 많냐!”

정작 본인은 웃지 않고 남을 웃기는 친구가 말했다. 일본 동생 히로코도 김장은 처음 해본다며 들떠있었다.     

목포 친구 명희 남편 태연씨가 곱창김과 홍어와 자연산 굴을 보내왔다. 태연씨가 보내준 음식으로 오늘 뻑적지근하게 드럼통 위에 한 상 차렸다. 나는 먹을 것을 챙기고, 무채 만드는 사람, 양념 버무리는 사람, 풀 쑤는 사람 각자 역할을 맡아서 하니까 일이 척척 진행됐다. 먹고 마시면서 일하다 보니 힘든 줄도 몰랐다. 이런 큰일 치를 때마다 지적만 하고 입으로 일 다 하는 사람은 꼭 한 명씩 있다. 오늘같이 즐거운 날은 그냥 웃고 넘어가 준다.

덩달아 바쁜 성길씨는 여자들이 많으니 동네 자기 친구를 불렀다. 나도 본 적 있는 혼자 사는 친구였다. 친구에게 “여자 한 명 골라봐” 성길씨 말을 내가 지나가다 들었다.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내가 김장하는데 성길씨가 더 들떠 있었다.

성길씨가 지나갈 때마다 동생들이 나한테 주인아저씨랑 잘해보라고 엮고 지랄 난리였다. 그 말을 들었는지 소주병과 굴과 홍어가 올려져 있는 마당 입구 드럼통 뒤에 서서 성길 씨가 한마디 했다. “잠깐만요!”

성길 씨 목소리가 들리자 일손을 멈추었다. 그가 비장한 발표라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애를 생산해야 합니다. 그래서 옆집에 사는 저분 하고는 이렇게 앞으로도 지낼 테니 그리 아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할머니까지 나서서 우리 아들 애 낳아야 한다고 한마디 얹었다.

일순 조용했다. 다들 나를 쳐다봤다.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솥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김장이 끝날 때쯤에 성길씨에 짤렸다는 것을 알았다. 내색하지 않았다.

    

우리는 배춧속을 채워 김장독에 넣었다. 김장독을 비닐로 씌우고 스티로폼으로 덮고 송판으로 다시 한번 누르고 돌을 올려놓았다. 드디어 끝났다.   

   

김장을 도와주던 친구들은 김치를 담아 들고 하나둘 집으로 갔다. 내가 거름을 사 와 낑낑거리며 키운 배추다. 올겨울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에, 김치를 손으로 찢어 식구들이 식탁에 들러 앉아 밥을 먹는 모습을 상상하는데, 어딘가 빈 곳이 보였다. 종일 풀치가 보이지 않았다. 이 청개구리는 도대체 어디 간 거야, 내가 고생해서 비빈 김치를 주고 싶은데......    

 

 다 떠난 뒤 혼자 김장한 다라를 씻고 있었다. 그때 하남 사는 성혜가 위문 차 이동 마이크와 막걸리 8통을 사 들고 뒷북을 치며 나타났다.

우리는 김장김치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다섯 병이나 해치웠다. 알딸딸해진 우리는 병에 숟가락을 꽂고 노래를 했다. 나도 노래 한가락 하는 사람인데, 성혜는 가수 뺨치게 노래를 잘한다.  노래를 들어줄 관중이 필요했다. 우리는 성길씨 방으로 들어갔다. 그와 그의 어머니를 아랫목에 앉혔다. 우리는 숟가락을 들고 서서 ‘여자의 일생’ ‘나쁜 남자’ ‘사랑의 트위스트’ 트로트 몇 곡을 불렀다. 둘이 원, 투, 원, 투, 스텝을 밟으며 춤까지 췄다. 집주인 성길씨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손뼉을 쳐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어깨춤을 추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우리 노래는 겨울밤 잠 못 들게 하는 마을회관 마이크보다 쎘다. 취기가 오른 나와 성혜는 흥을 멈추지 못하고 스텝을 계속 밟았다. 다음 날 아침 마을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무사했다. 마당 입구에 성길씨 눈썹 닮은 눈사람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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