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량품들의 사계 Feb 02.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병어는 바다로  토꼈을까 60

병어는 바다로 토꼈을까



                           

차 안에도 병어는 없었다. 냉장고를 이 잡듯 뒤졌다. 그야말로 술 마시고 싶을 때 술 찾듯 샅샅이 뒤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다시 차에 갔다. 냉장고, 차로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마당 입구에 떨어트렸나, 모기 쓸개 찾듯 찾았다. 내 건망증과 물건 놓고 다니는 습관을 사람들은 다 안다. 어렸을 때 엄마가 나에게 “어째 몸에 달린 것은 안 잊어먹고 데꼬 들어오냐”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평소에 내 걱정을 많이 하는 미선, 차혜, 운이, 혜경동생들이 오늘 온다고 했다. 어제 송파 방이시장에서 장을 봤다. 슈퍼마켓 귀퉁이에 좌판을 펴놓고 생선을 파는 곳이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넘기면서 코를 훌쩍거리는 아줌마한테로 갔다. 나는 내 눈에 어리숙해 보이면 무조건 거기서 물건을 산다. 맛있다고 소문난 집, 줄 서서 기다리는 편이 아니다. 똑같은 음식이면 바로 옆 텅 빈 가게로 간다. 맛이라고 해봐야 한 끗 차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성격이 급해 못 기다리는 것도 있지만, 월세 걱정에 속 터질 주인 생각해서 갈 때도 있다.    

  

좌판 앞에 생선을 고르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굴 한 개를 집어 입에 넣고 혀를 입천장에 붙였다 떼어 보았다. 굴 맛이 싸아했다. 살 수가 없었다. 몇 발자국 더 걸어가서 수산물 상점에서 굴을 하나 집어 먹었다. 파도가 휘몰아쳤다. 그래 이 맛이지. 만 육천 원에 두 근 샀다.


다시 좌판으로 왔다. 새우 2근, 병어 5마리, 조기 10마리, 꼬막 1Kg, 자잘한 오징어 7마리를 골랐다. 비닐 앞치마를 길게 늘어뜨리고 장화 신은 건장한 청년이 내 앞으로 왔다. 그는 투명비닐봉지에 따로따로 싸서 검정 비닐봉지에 한꺼번에 넣어주었다. 계산이 끝나자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출발했다. 이게 다였다.

그런데 오늘 병어를 찌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이놈의 병어가 보이지 않은 것이다. 시장을 보면 제대로 물건을 사서 들고 온 적이 없다. ‘그럼 그렇지, 뭐라도 하나 빠뜨려야 나지’    

  

누굴 닮았는지, 병어는 성격이 급해 잡히자마자 죽어버린다. 나는 바닷가 출신이지만, 살아있는 병어를 회 떠먹은 적이 없다. 그러나 살짝 얼렸다가 회를 뜬 내 고향 신안 임자 병어는 진짜 맛있다. 조림도 정말 맛있다. 조림에 자신이 없어 오늘 찌려고 했는데, 이 추운 날 동생들이 산 밑까지 왔는데, 저렇게 맛있는 병어가 사라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성씨를 가진 선혜경 동생이 외쳤다. “병치야, 너 바다로 토꼈냐?” 우리는 깔깔거렸다. 추위도 잊고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딩가딩가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녀들은 늦은 밤에 집으로 돌아갔다.      


일주일이 지나 방이 사장에 볼일이 있었다. 병어 생각이 스쳤다. 좌판에 가서 물어보고 병어가 그날 없었다고 하면 열받지 말고 그냥 오자 맘먹었다.


좌판 앞에 손님들이 와글와글했다. 조기를 고르는 아줌마, 밀차를 끌고 온 할머니, 흥정하는 새댁...

그날 코를 훌쩍거리던 아줌마와 그날 생선을 싸준 총각 모두 너무 바빠 보였다. 일단 가게 끝에서 한가해질 때까지 서 있었다. 조금 느슨해진 틈을 타 그 총각에게 말했다. “제가 얼마 전 병어를 두고 간 것 같은데, 혹시 있었나요?” 총각은 내 말을 더 듣지도 않고 스티로폼에 병어가 쌓여있는 곳으로 갔다. 검은 비닐봉지를 한 장 쫘악 잡아당겨 뜯었다. 검은 비닐봉지 속으로 병어를 집어넣었다. 나에게 씨익 웃으면서 비닐봉지를 건네주었다. 두말 안 하고 병어를 준 사내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집으로 왔다. 그날 집에 왔던 동생들에게 전화를 했다. “세상에나! 한마디도 않고 웃으면서 병어를 주더라!”     


나는 온 동네 소문 다 내주었다. 총각인지 유부남인지 어서 ‘의젓한 상가’로 이사 가기를!  앞으로 무조건 그 집에서 생선을 사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 불량품들의 사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