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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Jan 28.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나의 식솔, 그릇들과 살란다 59

나의 식솔, 그릇들과 살란다    



                                         

“혼자 살아요?”

지인과 함께 온 처음 본 남자가 나에게 물었다.

“아니요!”

“그럼요?”

.......

‘문풍지, 액자, 처마 밑 고드름, 난방 텐트, 빵구 난 자전거, 깨끗한 유리잔과 창틈 사이로 드나드는 바람, 찬바람에 이파리를 떨어뜨리고 혼자 서 있는 호두나무와 그 나무를 기어오르는 이웃집 고양이와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블루투스랑 살지요.’     

내가 이렇게 속으로 말하면, 상대편은 궁금하다고 어서 대답하라며 자기 눈을 내 눈에 맞추며 재촉한다.

“어째 폼이 혼자 사는 것 같아”

저 말은 보통 결혼 안 했죠?라고 들린다. 내가 어디에 묶여 있지 않게 보이는 걸까.  

   

세 집중 한집이 일인 가구란다. 누구의 간섭도 안 받고 혼자 사는 게 좋아 독립한 사람들,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혼자 사는 사람들, 독거노인들...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 중 부인이 말하기를, 혼자 있는 게 편안하다고 한다. 남편이 쓰레기 버리러 가면 혼자 있는 그 찰나가 그렇게 행복하다고. 쉬는 날 소파에서 리모컨을 쥐고 몇 시간째 야구 중계를 보고 있는 남자, 그 옆에서 드라마를 보려고 리모컨을 눈치 보고 있는 여자, 각자 자기 방에서 문 잠그고 무엇을 하는지 나오지 않는 자식들, 혼자보다 더 못한 혼자. 스스로 고립을 원한 것일까.    

  

나는 산이 좋아서 이곳으로 왔다. 집에서 혼자 티브이 보고 밥 먹고 술 마시고 자고 동네 강아지, 고양이랑 놀고 산에 올라가고 하는 일이 즐겁다. 그러나 사람 숨소리가 그리워 산 아래 불빛을 찾아갈 때도 있다.

네온사인을 찾아 어슬렁거리다 들어오면 속이 후련한 거 같지만, 내 속을 낭비한 거 같아 찝찝하다. 혼자 있고 싶기도 하고, 같이 어울리기도 하고 싶고 이건 무슨 맘일까. 이쪽, 저쪽에 양다리 걸치고 싶은 것일까.

      

나는 6남매였다. 우리가 커가면서 시골 방 밀도는 좁아졌다. 이불을 서로 잡아당기다 보면 이리저리 나오던 발가락들. 그 발가락들이 최고의 온도였는데. 그렇다고 지금 다 모여 살자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요즈음은 가족 형태가 축소된 대신 다양해졌다. 가족이란 단위가 나누어져 나도 그 범주 안으로 들어가 집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식솔로 정했다. 가족들과 지긋지긋 싸우는 거 보면 차라리 저 그릇들이 편하다. 이 것들과 함께 살면 싸울 일이 없다. 집에 늦게 들어간다고 해서 비밀번호 바꾼다고 협박할 사람이 있나, 밤늦게 나갈 때 눈치 볼 식구가 있나, 훌쩍 떠날 때 맘에 걸릴 게 있나. 늦잠 잔다고 누가 깨우기를 하나, 야식 한다고 으르렁대기를 하나. 안 씻는다고 잔소리를 하나... 

나는 말 없는 이 식솔들하고 살란다.

물론 살갗을 비비면서 가족과 어울려 사는 것이 행복하고, 혼자 사는 것이 고립인지 누구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냄새나는 젓갈을 담아도 군소리 없는 종지. 식탁에서 젓가락이 잘 닿는 곳에 앉겠다고 우는 소리치지 않은 반찬 그릇. 불 위에 올려놔도 뜨겁다고 소리 한번 지르지 않은 주전자.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고 찌그러졌다고, 성형해 달라고 고집 피우지 않은 사기 접시와 양은냄비. 맛있는 음식만 담아달라고 대동단결 파업하지 않고, 설거지한 후 물기 마를 때까지 겹쳐놔도, 숨  막히다고 아우성치지 않은 그릇들. 온갖 무게를 다 받아내고도 휘청거린 적 없는 의자.

지금 내 식솔은 필요할 때 손을 뻗으면 잡히는 바로 옆에 있는 것들이다.

     

“평상, 밀짚모자, 난로, 오디오, 줄 끊어진 기타 너희들도 혼자지?”

시간이 흐르면 바래닳고 늙고 서로 볼품은 없겠지만, 버리지 말고 우리 끝까지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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