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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Feb 03.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나비 귀를 잘랐다 61

나비 귀를 잘랐다

 


성길 씨는 고양이들에게 돌을 던졌다.   

   

그는 늘 사료값을 걱정했다. 성길 씨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어쩌다 한번 일 나가지, 땅이라고 해봐야 풀떼기나 뜯어 먹을 수 있는 텃밭이라 삶아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성길 씨는 혹시 또 삼색이가 새끼를 밸까 걱정하고 있었다. 말이 씨가 됐을까? 이런 와중에 삼색이가 세 번째 새끼를 밴 것이다. 단지 새끼 뱄다는 이유로 삼색이는 막대기로 쫓기거나 돌팔매를 맞아야 했다.

“아저씨, 뭐 허는 거예욧!”

나는 방에서 쫓아 나갔다.

“왜에에요? 저어것이 또오 새에끼 배에서 와았다고오요.”

성길 씨는 씩씩거렸다.

“그래도 그렇지. 계곡물도 땡땡 얼었구먼. 이 추운디 돌을 던지면 어떡해요. 애들헌테!”

더 쏘아붙이려다 참았다. 내 새끼들도 닌데. 선을 넘는 것 같았다.

말 못 한 짐승한테 저러는 거 보고 사람들한테 대들다, 시비가 붙고 많이 얻어터졌다.


성길 씨는 말은 잇지 못하고 서 있었다. 나는 안다. 성길 씨는 화가 나거나 분을 이기지 못하면 말을 제대로 못 한다. 이때다 싶었다.

“싸장님, 그러지 말고 나랑 달마다 교대로 사료를 사기로 헙시다. 그러면 사장님도 부담 덜 갈 것 아니요.”

나는 ‘싸장님’ 호칭까지 붙여 가며 달랬다.

“에이 씨!”

성길 씨는 들고 있던 막대기를 내던졌다. 그리고는 뒤돌아서 갔다. 승낙의 뜻이었다. 만일 내 말에 반대했다면 거기서 뭐라고 손짓 발짓 다 하면서 내게 더 따졌을 것이다. 사료값도 세 든 내가 내준다고 하지, 자기는 고양이에게 못된 짓을 하지 않아도 되지, 손해 날 일이 아니니 일단 승낙하고 본 것이다. 합의는 일단 성공. 이럴 때 보면 성길씨는 참 쉬운 사람이다.

    

어미 ‘삼색이’는 길고양이 었다. 어느 날 성길씨 연탄보일러실에 들어와서 첫배 ‘형아’를 놓고 얼마 안 있다가 두 번째 ‘까불이’를 낳았다. 나는  고양이를 ‘나비’라고 부르다가 이름을 지어줬다. 성길씨도 고양이들을 ‘나비’로 불렀다. 고양이들은 나비라 불러도 알아들었다. 고양이를 예부터 나비라 부르는 것은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오르고 사뿐히 걸어서 그런 거 같다는 것을 여기 와서 알게 되었다.  

    

내가 봄에 이사 오고 며칠 지났을 때다. 삼색이가 바깥에서 새끼를 낳아 까불이를 물고 연탄창고로 데리고 왔다. 동물의 왕국에서만 어미가 새끼 목덜미 물고 오는 것을 보다가 처음으로 직접 보았다.

이제 세 번째 새끼를 밴 어미 삼색이, 형아, 까불이 생계까지 내가 반은 책임지게 되었다. 내 별명답게 오지랖을 부렸다. 한편으로 걱정이 된다. 한 달씩 교대로 낸다고 했지만 사료값도 만만치 않을 텐데.   

   

나의 이런 결심이 주위에 전파되자 고향 친구 미영이가 사료를 사서 보냈다. 30년 만에 만난 영순이는 자기도 고양이를 세 마리나 키우면서 사료 20kg를 보냈다. 전국에서 내 소식을 듣고 고양이 먹이를 줄줄이 보내주었다. 내 집에는 이제 나 먹을 것보다 고양이 먹을 게 더 많아졌다. 사료값은 이렇게 정리됐다. 그러나 성길 씨는 여전히 다른 고양이들이 사료를 먹으러 오면 구박하고 눈치를 줬다. 그가 더 이상 돌은 던지지 않아도 삼색이는 그를 피해 다녔다.   

       

2     

고양이는 눈치가 백 단이다. 일단 자기들한테 호감이 있는지 없는지를 금세 알아차린다. 성길씨가 마당에 서 있을 때는 가 봐야 돌이 날아오거나 막대기가 날아온다는 것을 알고 마당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길고양이들은 오죽 데었으면 내가 먹이를 주는 데도 쉽사리 다가오지 않을까. 하긴 나와 성길 씨의 집이 넘어지면 코 닿을 듯 맞붙어 있는 곳이니, 오해할 만도 했다. 고양이들은 마치 ‘저 집이 저 집 일 거야. 조심하자고!’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얘들아! 나는 돌 안 던진다고!”

아무리 살살 달래도 고양이는 “니야옹~! 너는 사람 아니냐?” 처음에는 의심을 풀지 않았다. 나는 성길 씨한테 다시 제안하였다. 좀 더 강력하게 말했다. 귀를 닫은 그에게 소리가 먹혀들길 바라며.

“싸장님, 새끼를 못 낳게 허는 수술을 시킬까요?”

‘싸장님’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떻게 된 게 그는 기면 기다, 아니면 아니다 확실하게 의사표시를 안 한다. 그런데 고개를 주억거렸다는 것은 ‘긍정’에 속하는 것이다.

나는 얼른 반응을 접수했다.

“오케이! 그럼 동물병원에 연락합니다!”     

정부에서 지원받는 하남 동물병원에 연락을 취했다. 마침 고양이들을 데리러 오는 사람이 이 동네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주인 성길 씨의 여동생 친구라고 했다. 관계가 좀 복잡한데, 뭐 그래도 아는 사람이라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일은 일사천리로 처리되었다.

    

어미 삼색이는 워낙 나를 잘 따라 쉽게 잡혔다. 그러나 그의 새끼들은 만만치가 않았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내 맘대로 살 거야!’ 기를 쓰고 튀었다. 결국은 둘이서 작전을 짰다.

어쨌든 성길 씨가 집 뒤편에서 고양이들을 몰고 오면, 나는 연탄창고와 내 집 사이로 나오는 퇴로에다 그물을 쳤다.

“자, 몰고 갑니다!”

성길씨가 전화로 알린다.

“예썰!”

나는 집중한다. 고로 잡을 것이다. 허리를 한껏 낮추고 뚫어져라, 고양이들이 오는 쪽을 본다.

“와라, 와라.”

나는 주문을 건다. 잠시 후 “야옹! 니야옹! 미야오!” 온갖 고양이 소리가 나면서 녀석들이 후다닥 뛰어온다.

“잡았다!”

그러나 시나리오처럼 되진 않았다. 고양이들은 하도 영리해서 그 막힌 퇴로에도 제 살길을 찾았다. 어떻게든 ‘구멍’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구멍’은 바로 ‘저쪽’, 성길 씨’ 쪽이었다. 우리는 몇 번을 실패했다.

“아따, 그것도 하나 딱딱 못허고.”

임무를 바꾸어 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위에서 내가 쫓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결국은 시행착오 끝에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획득했다.

“얘들아, 이게 이렇게 힘 뺄 일이냐!”

그렇게 잡힌 새끼 고양이 두 마리와 어미는 동물병원 차에 실렸다.  

‘미안허지만, 다 함께 살기 위해서야.’   

  

나는 고양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수술 후 고양이들의 귀는 달라져 있었다. 수놈은 오른쪽 귀 끝이, 암놈은 왼쪽 귀 끝이 잘려 있었다.

‘미안허다야.’

“니아옹!”

고양이들이 울었다. 자기들은 뭣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됐는지 알고 있을까?

“니아옹!”

나도 똑같이 그들의 소리를 흉내 내보았다. 

고양이들은 며칠 동안 나를 피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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