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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Feb 05. 2024

불량품들의 사계

개는 뛰고 고라니는 날았다 62

개는 뛰고 고라니 날았다   



       

갑자기 낙엽 밟는 소리가 요란했다. 소리 나는 쪽을 올려다보았다. 흰색 진돗개가 쏜살같이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뛰어다녔다. 직감적으로 진돗개가 무엇을 쫓고 있다는 감이 왔다. 첨 본 진돗개였다. 털이 깨끗해 주인이 있는 개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눈이 녹지 않아 산에 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북문 등산로는 원래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곳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개 주인처럼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이 동네 개들은 대부분 묶여 있다, 멋대로 돌아다니는 자유로운 영혼 ‘러키’도 아니다.  

     

쫓기는 것은 나무에 가려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산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어깨를 틀었다. 거의 날듯이 도망가는 고라니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백구야, 흰둥아, 대박아, 남한아, 산성아” 개 이름을 아무렇게나 불렀다. 그랬더니 진돗개가 내 쪽을 내려다보면서 머뭇거렸다. 한 번 더 불렀다.

“백구! 밥 주께 이리 와”진돗개가 고라니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는 사이 고라니는 눈앞에서 사라졌다. 고라니가 진돗개 눈에서 벗어났다는 말이 더 맞는 순간이었다.

“아이고 살았네!”

나는 숨을 크게 쉬었다. 개는 산 위쪽을 쳐다보며 ‘이게 뭐지! 속았나!’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더는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개는 산 아래 도로 쪽으로 내려갔다. 나는 그냥 기분이 좋아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산책로를 따라 올라갔다.     


정상쯤에서 이 동네 사는 아줌마랑 마주쳤다. 아줌마는 곰처럼 생긴 검은 개 목줄을 단단히 잡고 내려오고 있었다. 아줌마에게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했다. “개는 고라니를 잡을 수 없어요” 그 아줌마 말을 듣다 보니 고라니는 달린 다기보다 네 발로 날아올랐다. 내가 또 쓸데없이 오지랖을 떨었나? 진돗개가 신나게 돌아다니라고 그냥 둘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몇 년 전 내 차에 치여 로드킬 당한 고라니 생각이 나서 오지랖을 떤 것이다.


아까 진돗개가 고라니를 쫓던 곳이 내가 새끼 고라니를 묻었던 근처였다. 그 고라니가 환생한 것은 아니겠지.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먼저 간 강아지 산이와 솔이도 저렇게 돌아올 수만 있다면 아니 꼭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다시 볼 수 있다면... 상상하다 울컥했다.      


생의 이쪽과 저쪽 텅 비어있는 곳에 그리움이 쌓인다. 만일 그곳이 비어있지 않았다면 우주가 그 무거움을 어찌 다 감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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