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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Feb 13. 2024

불량품들의 사계

고라니 발자국에 꽃이 피면 67

고라니 발자국에 꽃이 피면


          

   

아침나절 눈을 맞으며 아이젠을 차고 산에 갔다. 퍽퍽 쌓인 눈 위에  짐승 발자국이  찍혀 있다. 산자락처럼 갈라진 발자국이었다. 발자국을 따라갔다.  

   

문득 이리 이사 오기 전 일이 생각났다. 남한산성에서 내려오는 길에 주말농장이 있었다. 이곳에서 처음 텃밭을 하기 시작했다. 방이동 집에서 14km 떨어져 있는 곳이다. 거의 매일 이곳 북문을 오르다시피 해 물 주고 가꾸기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농장에서 풀도 뽑고 거름도 주고 원두막에서 강아지 산이랑 해질 때까지 앉아있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아카시아 꽃이 눈처럼 피는 오월 중순이었다. 주말농장에서 방이동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일 차선 도로에 들어선 지, 십 10m쯤 지났을까. 자동차 본넷 앞으로 뭐가 부딪혀 튕겨 나갔다. 급히 도로 옆으로 차를 세우고 뛰어내렸다. 새끼 고라니였다. 나는 새끼 고라니를 끌어안았다.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내 뒤에 있던 차들이 빵빵거리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정신없는 것은 둘째치고 무서워서 어찌할 줄 몰랐다. 길 가던 아저씨가 고라니를 안고 길가로 나왔다. 아저씨는 나보고 하남시청에 전화하라고 했다.

나는 전화를 하고 고개가 쳐진 고라니를 보듬고 울었다. 시청에서 아저씨 한 명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왔다. 나에게서 고라니를 빼내어 쓰레기봉투에 쑤셔 넣었다.

“아저씨, 고라니를 어떻게 헐 건데요?”

“소각하죠”

“그럼 내가 데리고 가서 묻어줄게요”

“ 안 돼요!”

나는 눈물범벅인 채 사정을 했다. 그 사람은 내 진심을 알았는지 그렇게 하라고 했다. 고라니를 시청직원과 함께 내 차에 실었다. 주말농장으로 올라가서 삽을 차에 싣고 남한산성 북문으로 올라갔다.  

  

남한산성 북문으로 올라가는 길 오른쪽에 야트막한 언덕이 있다. 거기에는 햇빛이 오랫동안 남아있는 부드러운 잔디 묘가 있다. 봉분 근처에는 봄이면  양지, 돌나물, 제비꽃이 피었다. 하양 노랑 보랏빛은 실바람에 살랑거리고, 나는 묘 속 송장에 말을 걸고 쑥을 캐고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과 강아지랑 놀다 집에 오곤 했던 장소다. 고라니를 그 근처에 묻기로 했다. 설마 이곳까지 파헤쳐 집을 짓고 그러지는 않겠지. 요새는 자고 일어나면 산을 파헤쳐 아파트를 짓든지 길을 만들어버려 세상 어디에도 온전한 곳이 없다. 


무덤에서 조금 떨어진 곳인데도 사람들 발길이 잘 닿지 않아서인지 풀이 너무 많이 자랐다. 고라니를 차에서 내려놓고 삽으로 잡풀을 쳐내면서 올라갔다. 내려와서 고라니를 들려는데 힘에 부쳤다. 해가 질 무렵이라 길에 다니던 사람도 없었다. 그렇지만 내 손으로 고라니를 묻어야 한다는 생각에 젖 먹던 힘까지 짜냈다. 정말 번쩍 들렸다. 산이도 졸졸 뒤따라왔다.    


삽으로 흙을 한참 동안 파냈다. 고라니를 흙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흙으로 덮었다. 땅을 판다고 삽질을 했지만, 구덩이가 비좁아 다리가 삐져나왔다. 비라도 오면 흙이 아래로 쓸어내려 다리가 나올 것 같았다. 흙을 옆에서 퍼다 덮었다. 낙엽을 주워 모아 나뭇가지랑 섞어 눌러 놓았다. 봉분처럼 솟았다. 나뭇가지를 꺾어 칡넝쿨로 만든 십자가를 세웠다. 산이는 짖지 않고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우리는 손을 모으고 묵념했다. 산이랑 올 때마다 들리겠노라고 약속하고 내려왔다.   

  

어둠이 완전히 가라앉기 시작해 무섭기도 했지만, 내가 로드킬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차 안에서 울기 시작한 울음이 방이동 집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질 않았다.

그날 밤 가게 일을 다 끝내지 못하고 혼자 술을 마셨다. 새벽이 올 때까지 나도 강아지도 잠 못 들었다.    

 

산에 올 때마다 강아지랑 들러 기도를 했다. 고라니의 혼이 밤이면 무덤 속에서 걸어 나와 엄마를 만나 놀다가 흙 속으로 돌아가길 빌었다. 그리고 나를 용서해 주라는 말을 덧붙였다. 죽은 고라니와 시간을 보내다 산이랑 그 길을 내려오곤 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이곳 고골로 이사를 왔다. 이삿짐 정리를 하고 북문를 가려고 산으로 올랐다. 얼마 전까지 멀쩡했던 고라니를 묻은 주변에 소나무, 밤나무, 은행나무가 싹 베어졌다. 다람쥐도 자주 내려와 밤을 주워 먹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산을 깎아 판판하게 만들어 축대를 쌓고 있었다. 그 옆에는 어디서 실어 왔는지 바위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결국은 고라니 묻은 자리엔 길이 났다. 멀리서도 보이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 무덤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뛰어 올라갔다. 다행히 내가 놀던 무덤은 깨끗하게 벌초가 돼 있었다. 꽃들도 피어있었다.

고라니 뼛조각을 찾는 것은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철갑을 두른 소나무 한그루만 겨우 하늘을 떠받치고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제발 저 소나무는 살려두길 빌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뒤로 두고 산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내 기도는 얼마 뒤 뿌리까지 파헤쳐진 소나무를 보는 것으로 끝이 났다.     

고라니 무덤 자리에 농막이 지어져 있고 돼지감자와 호박 넝쿨이 가득 자라고 있다.

농막 하나 짓기 위해 이렇게 파헤쳐 놓다니. 하기야 땅만 있으면 나도 이동식 주택 하나 갖다 놓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이 떠올랐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나도 저런 꿈이 있었으니 할 말은 없다. 땅 없는 내가 문제지...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때론 참 무자비하다.  

   

발자국을 따라가다 멈췄다. 혹시 고라니 발굽은 아니었을까. 무심해진 요즈음 고라니 묻혔던 곳을 지나쳐 산으로 올라갈 때도 있다. 이제는 솔이도 산이도 내 곁에 없다. 밤마다 산을 내려오는 고라니의 발자국을 떠올려본다. 어쩌면  그 봄처럼 고라니가 지나간 자리마다 꽃이 필 것이다. 그럼 나는 꽃을 따라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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