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량품들의 사계 Feb 11. 2024

불량품들의 사계

유숙이는 66

박꽃처럼 하얗게 웃었다  3               

     

유숙이 첫 직장은 유치원이었다. 유치원 근무 15 일만에 회식을 하게 되었다. 회식 장소는 유치원 구내식당이었다. 유치원 원장에겐 남동생이 있었다. 박 대장은 그 남동생의 절친이었다.  박대장은 박꽃처럼 수줍어하며 피부가 뽀얀 유숙이를 보자마자 반해버렸다. 회식이 있는 날, 원장 동생이 친구 박대장을 불렀다. 유숙은 그때 속이 불편해 밥을 못 먹고 있었다. 원장 남동생이 옆에 앉아 있는 박 대장에게 말했다.

 “최유숙 선생님이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같이 나가 바람 쐬고 와.”  

   

“선생님, 차로 한 바쿠 돌까요?”

“아니에요. 잠깐 서 있다가 들어갈래요.”

“송정리 코스모스 길, 차로 금방인데 갔다 옵시다?”

유숙이는 꽃이라면 환장을 한다. 꽃이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가에 미소를 흘리면서 차 옆으로 뽀짝 다가섰다. 나, 가게 오픈 할 때도 유숙이는 한지로 직접 만든 장미꽃 백 개를 보듬고 왔었다.

“꽃이라고요?”

유숙이는 차를 냅다 타버렸다. 꽃에 홀려 버렸다. 박대장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그들은 광주 송정리 코스모스 길로 드라이브 갔다. 어두워서인지 코스모스는 보이지 않았다.

“송정리가 왜 이렇게 멀어요?”

“다 왔어요.”

어느 시골 마을에 밤중에 도착했다. 그들의 도착지는 영광 법성포에 있는 박 대장의 집이었다. 유숙이는 본인이 납치(?)되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전남 법성은 적산 가옥들이 많았다. 전형적인 일본식 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할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안으로 들어갔는데 할아버지도 계셨다. 박 대장 엄마와 아버지였다.

박 대장이 이 층으로 그녀를 데리고 올라갔다. 박 대장은 책을 한 권 던져주고는 일 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엄마 잘 데리고 있어요.”

박 대장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뭔 일이 다냐?”

박 대장 엄마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날부터 유숙이는 이층 집에서 일주일 동안 살았다. 할매가 속옷, 옷, 칫솔을 사 가지고 왔다. 그녀는 속없이 밥을 주면 잘 먹고 잘 잤다.  

박 대장은 주말마다 왔다.  

“나 집에 가야 해요.”

“내가 유치원에 말 다 해놨으니까 걱정 말고 쉬세요.”

친구와 박대장은 촘촘히 짠 각본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박대장은 올 때마다 유숙이 손도 안 만지고 책만 던져주고 말없이 돌아갔다. 동네 사람들은 놀러 와서 박 대장 엄마한테 한 마디씩 했다.

“아따, 이쁘게 생겼네. 성님은 좋것소!.”

유숙이는 이 말이 무슨 뜻인 줄 몰랐다.   

  

이렇게 3개월이 흘러가는 동안 유숙이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아버지가 행방불명 신고를 했다. 지방 신문에 광고도 냈다. 유숙이도 처음에는 뭐가 뭔지 몰랐으나, 차차 시간이 흐르자 겁이 났다. 둘째 언니 연애 사건이 기억났다. 언니 머리칼을 자르는 아버지의 화난 얼굴이 떠오르자 무서워 집에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유숙이 속도 모르고 할매가 날마다 동네방네 소문을 내 사람들이 유숙이를 보러 왔다.

“아들이 저렇게 이쁜 각시를 데리고 올라고 선도 안 보고 그랬구만.”

법성포 전체가 들썩들썩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세상은 좁았다. 유숙이네 마을 희순 언니가 시집와서 박 대장 집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 그동안 서로 엇갈려 모르고 있었다.    

 

박 대장은 누나들과 요량요량 구색 맞춰 광주에 세를 얻고 유숙이와 살림을 차렸다. 살림을 차리고서야 손만 꼭 잡고 첫날밤을 치렀다.

“손만 잡고 잤다고야?”

“그래야, 손만 잡았어야.”

“니가 마리아도 아니고.”

그런데 일 년 후 큰딸 세희가 태어났다. 시골집에서는 명절 때 유숙이가 죽었다고 엄마가 밥을 떠놨다고 했다. 집안사람들은 쉬쉬했다. 그 시절 이런 소문은 마을에서 떠돌다가 동네 밖으로 나오는 데 시간이 한참 걸렸다.      


그러던 어느 날 희순 언니가 애가 아파서 법성 시내를 왔다. 마침 유숙이도 시아버지 생일상을 차리러 법성 읍내 갔다 둘은 서로 마주쳤다. 희순 언니도 유숙이도 집에서 유숙이가 죽었다고 물 떠놓은 줄 모르고 있었다. 핸드폰도 없는 시절이고....


희순 언니는 친정집에 가는 길에 유숙이 집에 알려주었다. 유숙이는 세희 돌 지나고서야 집을 찾았다. 박 대장은 유숙의 집안에 발도 들여놓지 못했다.

“저놈이 누구인지 알고 결혼을 시키냐고.”

유숙 아버지는 법성 가서 박 대장 뒷조사를 하고 이상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지만, 끝내 아버지의 분은 풀리지 않았다. 뒤늦은 결혼식이 있었지만, 유숙의 아버지는 결혼식에 한 푼도 보태주지 않았다. 유숙의 아버지는 둘째가 태어나고서야 광주 신안동에 이 층 양옥집을 사줬다.     

유숙의 결혼 이야기는 드라마에나 등장할 법한 스토리이다. 지금 같으면 박대장은 납치범으로 몰려 뉴스에 나왔을 것이다.    

          

글을 마치고 유숙이한테 전화로 읽어줬다.

보태져 있는 것 있으면 빼께.”

“옴매매 이렇게 세세허게 다 써 부렀냐! 어쭈고 안 잊어먹고 다 있었으까.”

“있는 그대로 썼은께, 뺄까?”

“뺄 것은 없다마는...”

“근디 물어볼 것이 있어야?

“또 뭐야? 너한테 말 허기가 무섭다야.”

“진짜 손만 잡고 잤냐? 애를 세 명이나 낳는디.”

“그래야.

“아따, 그러먼 손 딱, 세 번 잡었네.

“시끄랍다야.  잔지도 하도 오래돼서 순서 다 잊어 먹어부렀어야.”
 전화기 너머 그녀의 웃음소리가 박꽃처럼 환하게 들려왔다.         

                                                   

작가의 이전글 불량품들의 사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