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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Feb 10. 2024

불량품들의 사계

유숙이는 65

강아지는 꽃이라는 말을   없다고 하더라 2 

    

“유숙아! 우리 솔이는 그림을 그리고 말도 해야.”

“...... 뭔 그래야. 진짜로야?”

“그래, 너만 알고 있어.”

오래전 일이었다. 내가 키우는 강아지는 코가 눌러져 있는 흰색 페키니즈다.   

   

나는 유숙이를 속이는 데 재미가 들렸다. 솔직히 다른 사람들한테 이런 말을 하면 도중에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다.

같은 고향에서 자라 초, 중 시절을 지나고는 각자 도시로 유학을 가서 간간이 소식을 들었을 뿐 보지 않고 지낸 시간이 훨씬 많았다. 다시 어른이 돼 친구한테 내가 믿을 수밖에 하는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신기한 일이지만 나를 무조건 지지하고 믿어준다.

사람이 사람에게 믿음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 줄 다들 알 것이다. 내가 어떤 불편한 일이 생겨도 나의 편이 되어 주는 사람. 내가 설사 사람을 죽였더라도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끝까지 믿고 지지해 줄 만한 친구. 나에게는 그런 친구가 몇 명 있다. 그중 한 명이 유숙이다. 물론 나도 누구에겐가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솔이가 말할 줄 안다고 유숙이하고 통화하고 난 뒤, 딱 일주일 뒤였다. 그녀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있잖아...”

“뭐가 ”

“사우나 언니들한테 물어봤는데 개는 절대 말을 못 한다고 하더라.”

“......? ”

나는 웃음이 나와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네가 얕은 짓을 안 하는 애라 니 말을 안 믿을 수도 없고.”

“정말 말 헌다니까.”

“그럼 수화기 갖다 대고 말을 하라고 해봐!”

“안 돼. 말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먼 우리 솔이 납치당해야. 얼마 전 숫자 아는 강아지 TV에 방송되고 나서 누가 데려갔다고 뉴스에 나왔어야.”

나는 전화를 끊고 내가 애한테 뭔 짓을 한 거야. 이걸로 엄청 심각하게 생각했구나

‘아니, 애를 세 명이나 낳았으면서.’

나는 그래도 솔이가 말할 줄 모른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났을까. 유숙이가 충장로에서 가을 축제한다고 나보고 내려와 거리에서 노래를 불러주라고 했다. 유숙이는 예술인 기획사 대표다.

나는 강아지 두 마리 중 말하는(?) 솔이는 인천 엄마 집에 두고 짖는 산 이만 데리고 서울서 광주로 내려갔다.

내려가다 체를 했는지 휴게실에서 심하게 토를 했다. 기운이 빠져 노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앵콜을 받지 못했다. 유숙이 실망만 시키고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나보고 중흥동 사무실로 빨리 오라고 했다. 산이를 데리고 사무실로 갔다. 사방 벽에 계란판이 붙어있었다. 연습실 같았다. 유숙 혼자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의자를 내주면서 벽 중앙에 앉으라고 했다. 나는 산이를 안고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문 뒤로 사라졌다. 십 분쯤 흘렀을까. 여인 여섯이 화려한 한국 무용 한복 입고 부채를 들고 쏟아졌다. 맨 뒤에 유숙이가 부채로 얼굴을 반 가리고 사뿐사뿐 걸어왔다. 화장은 언제 어느 틈에 했을까. 유숙이가 고개로 신호를 보내자 맨 앞에 여인이 화선무 국악을 틀었다. “옴매 이것이 뭔 일일까.” 나는 웃기기도 하고 당황도 하였다.

그녀들은 부채를 폈다 접었다, 버선발을 들었다 놨다, 반 바퀴 돌았다, 뒤로 갔다가 앞으로 갔다. 산이는 그녀들 옷자락이 펴질 때마다 짖었다. 컹컹 짖는 소리가 계란판을 타고 떨어졌다.  신경 쓰였다. 그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뱅그르르 돌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녀들 얼굴은 진지했다. 그녀들은 발뒤꿈치를 바닥에 붙였다가 뗐다. 부채들은 펴졌다가 접혔다가 흔들리다 모였다. 부채 하나가 펴지지 않았다. 숙련이 덜 된 부채 같았다. 부채들은 그 부채에 눈길도 주지 않고 자기 파트에 열중했다. 부채가 펴지자 마지막으로 둥글게 모여 부채 꽃을 만들었다. 부채 꽃은 파르르르 떨었다.

나는 정말 감격했다. 오직 나를 위해서 공연을 해준 것이다. 나는 일어나 온 힘을 다해 박수를 쳤다. “유쑥 이모 대단허요 멍멍” 산이는 짖으므로써 감사 표시를 했다.
 “지금 니 나이에 놀러 다닐 생각만 할 텐디, 장하고 이쁘다. 내 친구.”

공연을 끝내고 둘이 조선대 캠퍼스로 갔다.     

유숙이는 내가 혼자라고 산이를 내 아들 마냥 제 조카한테 대하듯 했다.

“산이 하드 하나 사줄까?”

마침 아이스께끼 통을 매고 가는 남자가 있었다.

“산이 하드 안 먹어야?”

그녀는 맛있는 것을 고른다면서 통속을 손으로 뒤적거려 메론 바 세 개를 샀다.

껍데기를 까더니 산이 입에다 댔다. 산 이는 “이게 뭐여? 이모!” 짖기만 했다. 유숙이는 산이가 먹지 않자 안타까워 어쩔 줄 몰랐다. 산이는 여전히 낯선 것만 보면 심하게 짖었다. 유숙이가 하드 껍데기를 조몰락거리고 있다가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산이는 그런 유숙이에게 눈을 부릅뜨며 짖어댔다. 그래도 유숙이는 놀래지 않았다.

나는 옷에 떨어뜨린 아이스크림을 물휴지로 닦고 있었다. 유숙이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할 말 있으면 해.”

나는 옷을 닦다 말고 말했다.

“있잖아 내가 다니는 사우나 .... 언니들이 너랑 돈거래 하지마래. 무슨 개새끼가 말 허냐고, 그러면서 너한테 필시 사기꾼이래.”

나는 킥킥거렸다. 그렇게 말한 후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가 정말 귀여웠다.

“그래서 내가 사기꾼이냐?”

“아니지. 진즉 말하려다 니가 섭섭하게 생각할까 봐 이제 말하는 거야... 시간도 지났고.”

그녀는 이제야 어렵게 그 말을 한다고 했다. 순진무구한 그녀는 자기도 알 것 다 안다고 한다. 유숙이는 그런 친구다

“유숙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마라. 나오면 복잡한 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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