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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레나 Feb 10. 2022

생애 첫 똥차 빨간색 포드 Taurus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


라스베이거스는 뉴욕이나 LA와 다르게 대중교통 시설이 발달되어 있지 않다. 버스는 있지만 거의 20분에 한 대가 올 정도로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한국처럼 내가 원하는 정류장으로 쭉 가는 버스가 없고 가로 세로 바둑판 모양처럼 쭉 직진하기 때문에 학교에 가려면 1시간 반 전부터 버스를 타고 3번을 갈아타야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처음 버스를 한 번 탄 적이 있었는데 처음 겪는 풍경에 너무 놀라서 버스를 다시 내려서 그 길로 그냥 한 시간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대도시의 버스나 지하철에는 동양인들도 몇 명 있겠지만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버스에는 동양 사람이 많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타자마자 사람들의 모든 시선은 나는 고개를 돌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위험함을 느끼고 중고차를 사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보통 유학생은 차를 당장 살 수 없기 때문에 학교 주변에 집을 렌트하여 사는 경우도 있고 홈스테이를 하여 데려다주시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5,000을 가지고 (한국 돈으로 환율을 적용하면 대략 580만 원 정도) 중고차를 보러 다녔다. 


지금에서야 나는 차를 운전해보고 잘 가는지 밀리지는 않는지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지만 그 당시의 나는 21살에 차에 대해 하나도 몰랐기 때문에 달콤한 말로 유혹을 하는 딜러들의 말을 다 믿었다. 그렇기에 미국에서 중고차를 사더라도 항상 갈 때에는 차에 대해 잘 아는 사람과 같이 가기를 추천한다. 나는 도움을 받아 차를 샀기 때문에 그래도 별 탈 없이 1년 반을 별 탈없이 잘 탔지만 내 주변 친구들이 산 중고차는 산 지 두 달 만에 엔진을 통째로 새로 사야 하는 일도 있었으며 브레이크 패드가 말썽이어서 다시 중고차를 또 산 친구들도 있었다. 


미국에 오겠다고 고집을 부려 온 나로서는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가 미국 갈 때 내가 번 돈으로 스스로 가자! 하고 번 돈은 600만 원이었다. 그렇게 비행기 값을 100만 원을 내고 수중에 남은 돈은 500만 원이 전부였다. 그렇게 해서 500만 원짜리 중고차를 찾는 기나긴 여정은 시작되었다. 미국에는 중고차 시장이 굉장히 커서 차만 알아보겠다고 다닌 곳이 6군데는 되었던 거 같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에 당첨된 내 첫 차인 포드 토러스는 2000년도 자동차였는데 내가 샀을 때가 2011년이라서 11살이 된 자동차였다. 중고차는 내가 색을 정할 수가 없어서 딜러숍에 나와있는 차로만 살 수 있기 때문에 내 토러스는 지금의 고급스러운 벌건데 색도 아닌 새빨간 빨간색이었다.




주인은 그동안 총 4명의 주인이 있었고 마일리지는 10만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 차였다. 그래도 그 당시에 나는 처음 운전을 할 수 있는 사실에 너무 기뻐 집 주변을 5분씩이라도 돌거나 운전 연습을 하러 조금씩 영역을 넓혀 나갔다. 내 토러스는 기아가 현재 벤츠처럼 운전대 뒤에 위치했는데 파킹과 드라이브로 세팅을 하려면 운전대 뒤에 있는 기아를 움직여야 하는데 굉장히 뻑뻑해서 항상 힘이 필요했다. 또한, 차 문을 열기 위해 버튼을 누르면 운전석만 열리기 때문에 친구들과 같이 타거나 어디 놀러 갈 때에는 내가 먼저 차에 타서 등을 뒤로 젖혀서 뒷자리 양쪽을 내가 직접 수동으로 열어줘야만 했다. 


나의 새빨간 토러스는 고속도로는 달리지 못하고 보통 도로만 달릴 수 있었다. 고속도로는 70마일 정도로 차들이 달리는데 한 번 토러스를 타고 프리웨이를 탔다가 속력이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아서 바로 다음 출구에서 내려서 다시 보통 도로로 빠져서 갔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끔 웃음이 날 정도로 생각이 나지만 그 당시에는 그 차가 너무 소중해서 행여나 주차를 잘못했다고 어디 실려가지 않을까 안절부절못하기도 하고 한참을 돌아가더라도 바르게 주차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래도 유학 생활 처음 운전하느라 운전하다가 보도블록에도 올라가기도 하고 후진하다가 기둥에 긁힌 적도 있는데 그러한 운전 실력으로는 정말 알차게 잘 탔었다. 가끔 나도 비슷한 차를 보게 되면 그때 처음 샀던 차 생각이 문득 나기도 한다. 


하루는 굉장히 웃음이 절로 난 날도 있었다. 친한 친구와 함께 장을 보러 가려고 마트에 가고 있었는데 중간에 방지턱을 보지 못하고 40마일의 속도로 방지턱을 넘어버렸던 것이다. 나의 토러스는 심하게 들썩 거리며 요동을 쳤고 '팍'이라는 소리가 들려서 나와 친구는 놀라서 차 안을 살펴보니 나의 백미러가 그 조그마한 충격에 뒷자리로 날아간 것이다. 나와 친구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웃으며 백미러를 다시 제자리에 끼어놓았으며 조금 가다가는 서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게 지금 2022년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도 좋은 차들이 많았어서 말도 안 되는 일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당시에는 문도 안 열리고 수동으로 열어줘야 하며 달달거리면서 달리는 할머니 같은 내 차가 싫었다. 처음엔 기뻤던 내 마음도 잠시 시간이 가면서 창피하기도 하고 엔진이 안 걸린다부터 시작하여 많은 불평들이 생기기 시작했었다. 사실 평소에도 차에 크게 흥미는 없어서 관심이 없기도 하였지만 사실 이건 나의 현실에 감사하지 못하는 행동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한국 유학생도 외국 유학생도 차가 없어서 걸어 다니는 친구들이 많았다. 돈의 문제보다는 사실 이제 고작 20살밖에 안 된 자식들에게 사고가 날지도 모르는 위험성에 차를 바로 사주는 부모님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통 1년 이상 자리를 잡고 다들 한 명씩 중고차를 사고 시작했는데 그에 비하면 빨리 살 수 있었던 나는 그 당시 불평불만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녔어야 했다. 왜 그 당시에는 현실에 내가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당연하게 가진 것에 대해 하나씩 꼬투리를 잡으며 불평불만을 했을까. 만약 토러스, 그 차가 없었다면 나는 40도가 넘게 올라가는 라스베이거스의 날씨에 30분 이상을 버스를 기다리거나 학교를 매일같이 한 시간이 넘게 다녔을 것이다. 또한, 장을 보러 가려면 친구들에게 부탁을 해야 하거나 택시를 타고 힘겹게 장을 보러 다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하면 나도 지금 현실에서도 불평불만을 하면서 내가 놓치고 있는 감사한 부분이 없는지 되돌아본다. 역시나 나는 지금 현실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지금은 미국에 자리를 잡는 과정이기 때문에 처음에 아파트를 렌트하며 살고 있는 부분도 불평불만이 있다. 반대로 생각을 해보면 나는 사실 지금 같은 시국에 남편과 직장을 다니며 나중을 위해 돈을 저금하고 있다는 부분도 감사해야 하는 현실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불평불만이 나올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내가 놓치고 있는 많은 부분이 있지 않을까. 나의 첫 번째 자동차였던 새빨간 토러스는 다시 한번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면서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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