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어항 속의 천적은 무엇일까?

은퇴를 앞둔 시점에서 쇼펜하우어를 읽고......

by yesse

인간은 긴장/고통과 권태/무료함의 양극단을 오가며 살도록 운명 지워진 존재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학창 시절은 시험과 성적 때문에 긴장과 고통을 느끼고 하굣길이나 주말이면 친구들과 수다 떨고 놀면서 권태와 무료함을 즐기는 시기입니다. 결혼하면 가족부양이라는 큼지막한 짐을 짊어지지만 아이들의 재롱과 성장을 보면서 여유로움을 찾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회사생활은 늘 긴장과 압박의 연속이지만 퇴근길 한잔의 술과 주말에 찾아오는 소소한 행복감이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생활전선에서 완전히 은퇴하기 전까지 내 느낌으로는 70%의 긴장과 30%의 권태사이를 오가면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제 은퇴를 얼마 남기지 않는 입장에서 보면, 은퇴 후 10% 이하의 긴장과 90% 이상의 권태로 구성된 제2의 인생을 자연스럽게 살아가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10% 이하의 긴장도는 너무 낮은 것이 아닐까?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와 베트남의 전쟁포로수용소에서 갇혀 지냈던 수감자들의 수기를 보면 인간이 극한의 긴장상태에 놓이게 되면 오히려 면역력이 높아지면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커진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석방되면 긴장도는 낮아지고 권태가 찾아오면서 그동안 강건했던 수감자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약해져 질병을 견뎌내지 못하고 죽거나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는 글들이 많습니다.

은퇴 후의 삶도 긴장도가 지나치게 떨어지고 권태가 인생을 압도하면 우리도 석방된 수감자들과 같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나약해지거나 무기력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항 속에 천적과 피식자를 함께 넣을 때 피식자의 생존율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천적이 있으면 피식자는 숨는 요령을 잘 터득하고, 영양섭취 효율이 증가하며, 번식 전략을 잘 구사하여 알의 생존력을 높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서 대전제는 어항의 크기가 적정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은퇴 후 천적을 몇 개 만들어서, 예를 들어 긴장도를 30%선으로 올리고 권태를 70%선으로 유지하면서 적절한 긴장과 압박을 줘야 건강히 살아갈 확률이 높을 것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천적을 이용하여 적절한 긴장도를 유지할지 고민 중입니다. 그런데 대전제는 어항의 크기가 적정한 수준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데, 이에 대한 저의 해석은 은퇴 후 누추한 삶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추한 삶 속에서 무슨 긴장과 권태를 따질 여유가 있겠으며, 내 어항 속에 어떤 천적을 넣을까 고민할 여지가 있겠습니까.

돌이켜 보면 긴장과 권태뿐만 아니라 인생 자체가 늘 밸런스와 세팅포인트를 찾아가는 게임이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