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까치 소리가 싫은 이유
아버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아버지는 좋은 곳에 계시지요.
1919년생인 아버지는 2009년, 아흔의 나이로 이 세상을 졸업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지내신 지도 어느덧 17년이 되었습니다. 여섯 해 전에는 어머니도 그곳으로 가셨습니다. 두 분은 잘 만나셨나요.
저는 1966년생입니다. 지금 예순입니다. 아버지가 예순이었을 때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습니다. 동네 친구들의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조금 멀리한 적이 있습니다. 피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습니다.
학교 체육대회가 있는 날이면 아버지나 어머니보다 누나들이 오기를 바랐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의 가정방문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아버지가 오시는 것도 싫었습니다. 아버지는 알고도 아무 말씀 하지 않으셨겠지요. 아들이 기죽을까 봐서였을 겁니다. 아니면 살림을 꾸리느라 잔소리할 여유조차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저에게 크게 화를 낸 기억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도 두 아들에게 거의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믿고 기다리는 법을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 같습니다.
아버지, 이제야 말씀드립니다.
저에게도 싫은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아침잠이 많던 저를 부르던 아버지의 목소리였습니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통나무 손수레를 밀어 달라고 하셨지요. 장작을 패서 땔감으로 써야 했던 그 시절, 이른 아침에 손수레를 미는 일이 그때는 참 싫었습니다. 지금은 그 기억이 아버지와 저를 이어 주는 끈이 되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성적이 오르자 이웃들이 아들을 칭찬했습니다. 아버지는 속으로는 기뻐하면서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와의 아련한 기억이 하나 더 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부산 동래의 미나리꽝에 간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간식으로 받은 단팥빵을 제게 주셨습니다. 그 빵 하나로 하루가 충분했습니다. 그 맛을 잊지 못해 지금도 통단팥빵을 가끔 사 먹습니다.
우리 집은 논농사는 없고 밭농사와 바닷일로 겨우 살았습니다. 빚은 늘어 갔고, 아버지의 걱정도 깊어졌습니다. 전후 사정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다 담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지금도 아침에 들리는 까치 소리가 반갑지 않습니다. 까치는 길조라 까치 소리는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뜻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는 달랐습니다. 까치 소리는 오후나 저녁에 빚 받으러 불청객이 온다고 예고하는 소리였습니다.
“농촌에 사는 사람은 농협에 빚이 없으면 부자란다.”
아버지가 늘 하던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농촌을 떠난 지 오래되어 잘 모릅니다. 지금도 농부들은 농자금으로 농협에 빚이 많을까요. 농가 부채 탕감이라는 말을 예전부터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좀 나아졌는지 궁금합니다.
어느 날부터 아버지는 고향 집 마루 앞에 나무 의자를 두셨습니다. 그 의자에 앉아 저를 기다리셨습니다. 듣기로는 아버지가 독자여서 자식을 많이 낳았다고 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여덟 남매 말고도 더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떠난 뒤, 그 나무 의자는 어머니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머니도 떠났습니다. 나무 의자만 남았습니다.
아버지,
그곳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작은누나, 동네 친구들을 만나고 계시겠지요. 덜 외로웠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다른 세상, 다른 곳에서 환생해 누군가의 아들로 살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아버지는 기록을 좋아했습니다. 가계부를 스무 해 넘게 쓰셨습니다. 빚만 남은 마이너스 가계부였습니다. 떠나신 뒤에야 알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의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하고 싶었던 일은 있었을까요. 가 보고 싶던 곳은 어디였을까요.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꿈에 오신다면 꼭 이야기해 주고 가십시오.
지금 저는 아버지 모습으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일찍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둘째 손자에게 아들이 둘이니 아버지께는 증손자들입니다.
2009년 아버지가 떠난 뒤, 제 마음을 겉으로 표현하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아버지, 마음 담은 편지를 오늘에서야 전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버지, 많이 사랑했습니다.
아버지를 꼭 한 번 안아 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셋째 아들이 늦은 인사를 올립니다.
# mbc 여성시대 2026년 2월 9일 10시 40분경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