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당신은 지독한 가난에서 나를 구제했습니다.

아내에게 전하는 바람의 소리

by 할슈타트

결혼한 지 서른세 해가 흘렀습니다. 세월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첫 번째 대학을 자퇴하고 두 번째 대학에 간 것도 어쩌면 당신을 만나기 위한 길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조금 길지만, 끝까지 들어주었으면 합니다.


80년대에는 조용필의 ‘단발머리’가 단연 최고의 인기 가요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둘다섯의 ‘긴 머리 소녀’를 즐겨 들었습니다. 가사와 멜로디가 비처럼 마음을 적셨기 때문입니다. 긴 머리는 그 시절 내 마음속 어떤 상징이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앞둔 어느 날, 통학버스에서 긴 머리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친구를 통해 쪽지를 몇 번 주고받았지만 인연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학생이 자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사를 갔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첫 번째 긴 머리 소녀는 기억 속에 남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대학 2학년 여름방학 전에 두 번째 긴 머리 소녀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여름방학에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의 씨앗을 싹틔우기 시작했습니다. 시골에서 편지를 보내고 기다리는 시간은 늘 설렜습니다. 조금이라도 답장이 늦으면 왜일까 궁금했습니다. 방학이 두 달이었기에 중간에 한 번은 만나는 약속을 했습니다. 우리만의 아지트였던 ‘화려한 목요일’ 카페는 이제 사라졌지만,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 시간들은 지금도 가장 반짝이는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우리는 같은 지역에 발령을 받아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당신의 둘째 오빠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1년 동안 서로 소식을 주고받지 않았습니다. 슬픔을 감당할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나는 다시 인연을 잇고 싶었습니다. 다음 해 6월의 어느 휴일, 학교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만나고 싶다고 썼습니다. 그 이후 우리는 빠르게 가까워졌습니다. 밤에는 주로 전화로 이야기했고, 토요일 오후에는 함께 집에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에서 만났습니다.


당신은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각자 집으로 가는 것이 아쉬워 서대전행 밤기차를 탄 적도 있습니다. 서대전역에 내려 다시 내려오는 기차를 기다렸다가 새벽 기차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지만, 그때는 젊었고 사랑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둘만 알고 있는 가장 행복한 비밀입니다.

1992년 2월 말, 우리는 교직 생활 2년을 마치고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했습니다. 나는 가난했던 집안 사정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전세금이 없어 시골에 계신 큰누나에게 돈을 빌려야 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우리는 현실과 마주했습니다.


전세금을 갚기 위해 1년 동안 두 사람 월급의 80퍼센트 가까이를 저축했습니다. 아이는 천천히 낳자고 했지만 계획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해 12월, 첫째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결혼도, 부모 노릇도 처음이어서 모든 것이 서툴렀습니다. 아이가 조금만 아파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전세금을 다 갚고 나니 삶의 중심은 아이가 되었습니다. 세 해 다섯 달 뒤, 둘째 아들이 태어났고 우리는 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부모가 되었습니다.


아이 둘을 키우는 방식의 차이로, 성격의 차이로 갈등도 있었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서른세 해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 역시 찰나처럼 느껴집니다.


세 해 전, 두 아들이 결혼해 독립했습니다. 집에는 다시 우리 둘만 남았습니다. 당신은 여섯 해 전, 나는 세 해 전 각각 교직을 마무리했습니다. 진주와 거창, 광주를 거쳐 지금은 수원에서 하루 스물네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손을 놓지 않고 함께 걸어와 주어 고맙습니다. 이제는 돈도 명예도 크게 중요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건강을 지키고, 가족과 좋은 기억을 쌓아야 할 시간입니다.


나는 두 아들에게 늘 말합니다. 명문대를 나오지 않아도, 지금 하는 일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면 된다고. 나와 두 아들 모두에게 아직 채워지지 않은 마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내 대답은 늘 같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아내와 다시 만나겠습니까?”

“네. 아내가 동의한다면 그러고 싶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둘이 서른세 해 이상을 더 살아내야 합니다. 예전에는 각자의 삶이 네모였다면, 이제는 서로를 감싸는 동그라미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손잡고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걸어가 봅시다.


지독한 가난에서 나를 구해 준 당신에게,

그리고 지금의 나를 함께 만들어 준 당신에게

고맙고, 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바람이 조용히 속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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